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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80) 자카르타의 디아스포라, 끄망(Ke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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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746회 작성일 2019-03-2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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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의 디아스포라, 끄망(Kemang)
 
노경래
 
 
주방에서 바로 나온 그는 앞치마로 손의 물기를 닦으며,인사말 없이 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는 레스토랑 종업원이 가져온 시가에 불을 붙였다. 그의 이름은 앤드류(가명). 자카르타 끄망(Kemang)에 있는 한 레스토랑의 오너이자 주방장이다. 몇 년 전에 내 영국인 친구가 매주 토요일 오후에 다니는 럭비 동호회에 따라 갔다가 그를 처음 만났다. 이후 서너 번 그가 운영하고 있는 이 레스토랑에 들렀다. 그럴 때 마다 그는 주방에서 나와서 흡연석과 비흡연석 중간에 위치한 바(bar)로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늘 프리미어 리그를 중계하는 텔레비전을 볼 수 의자에 앉아 그가 마시다 남겨 놓은 싱글 몰트 위스키인 맥캘란을 나에게 권해 주었다.

나는 그가 내 또래의 스코틀랜드 출신이며, 호주에 있는 광산 회사에서 일하다가 인도네시아 한 광산으로 파견되었고, 이후 호주인 와이프와는 이별한 후 광산 일을 그만두고 친구와 함께 지금의 이 레스토랑을 인수하였으며, 열 다섯 살 연하의 인도네시아인 부인을 만나 애들을 두게 되었다는 사실을 점차 알게 되었다. 맥캘란 서너 잔을 마신 데다 스코틀랜드의 명문 셀틱 FC에서 활약했었던 기성용까지 이야기가 번지자 개인사까지 털어 놓았다. 
 
- 요즘 손님은 좀 있느냐? 
“그저 그렇다. 그렇지만 이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종업원 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위로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 하루하루 일과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야 한다. 이건 내 와이프의 지상명령이다. 그 이후 빠사르 밍구(Pasar Minggu)에서 싱싱한 식재료를 구입하고, 아침을 먹은 후 오전 10시쯤 레스토랑에 도착한다. 밤 11시 정도에 집에 들어간다.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따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제 부는 바람과 오늘 부는 바람이 조금씩 다르다. 작은 차이에 감사하면서 지낸다.”
 
 
-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자신만의 철학이라고 할까?
“손님은 최대한 세심하게 편하게 모신다. 손님은 그의 일생과 같이 오기 때문이다.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지 않는가? 손님 별로 취향을 잘 모르니 기본적으로 양념을 강하게 하지 않은 음식을 제공하고, 손님 각자가 테이블 위의 소스를 사용하여 요리를 완성하도록 한다.”

- 왜 끄망에서 레스토랑 운영을 시작했는지?
“친구 따라 강남 왔다. 이곳은 내가 잘 만드는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랑 불레(Orang bule)가 많다는 말이다. 지금은 오랑 꼬레아(Orang Korea)가 더 많은 것 같다. 이제 소주 장사하는게 더 남는 장사가 될지도 모르겠다(웃음). 피부색과 말이 다른 사람끼리 함께 어울려 사는 곳이 아름다운 곳 아닌가? 끄망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끄망이라는 지명은 과일 망고의 일종에서 유래한다. 이 망고는 동남아 열대우림이 원산지이며, 침수지나 습지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망고 등 과일 나무가 많았던 끄망은 자카르타가 남부 지역으로 점차 발전됨에 따라 원래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끄망 지역 좌우로 두개의 강이 흐른다. 깔리 끄루꿋(Kali Krukut)과 깔리 맘빵(Kali Mampang)이 지금의 라구난(Ragunan) 동물원 인근 지역에서 흘러내려오다 가똣 수브로또(Gatot Subroto)에 있는 포시즌 호텔 인근에서 합류한다. 이 강 사이의 지역은 원래 네덜란드 한 지주가 소유하고 있었다. 이 지주가 본국으로 돌아간 후 19세기말에는 2명의 토착민이 이 지역을 소유하였다. 1950년대 이전만해도 끄망까지의 접근로가 없었으나, 1958년경에 가똣 수브로또 장군이 잘란 끄망 라야(Jl. Kemang Raya)라는 비포장 도로를 개설하였다. 

1970년대 들어서는 정부에서 끄망을 주거지용으로 개발하였다. 끄망은 자카르타 다른 지역에 비해 초목이 무성한 전원이었고 구릉지도 좀 있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시원하여 외국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사했다. 더구나 이곳은 자카르타 상업중심지역인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과의 접근성이 좋아 외국인들이 특히 선호하였다.

오늘 날 끄망에는 멋진 식당, 갤러리 등이 즐비하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활동적이며 오랜 역사를 지닌 개인 미술관인 에드윈 갤러리(Edwin’s Gallery), 양치식물, 빤단, 코코넛 등으로 잘 꾸며진 정원에 세계 각국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정원 속 박물관(Museum di Tengah Kebun)’, 지중해 스타일과 알함브라 궁전 건축양식이 돋보이며 민화풍의 화가 수깜또(Sukamto)와 본니 스띠아완(Bonny Setiawan)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두타 파인 아트 갤러리(Duta Fine Arts Gallery) 등이 대표적이다. 지근거리에 있는 이 갤러리 모두 30년 이상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문화예술이 있는 끄망이 사람들을 소통하게 만든다. 

[두타 파인 아트 갤러리]
 
그러나 끄망은 콘텐츠가 많은 것에 비해 도로 등 인프라가 형편없다. 끄망은 1998년에 자카르타 주정부에서 현대식 상업용지로 변경하는 계획을 발표한 이후 주거지가 대부분 요식업 및 소매업으로 변경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끄망의 메인 도로인 잘란 끄망 라야가 주변 상업용 건물의 모양새에 걸맞지 않게 형편없게 되었다. 그래서 정신줄을 놓고 끄망 거리를 걸으면 하수구에 발이 빠지기 십상이다.

끄망은 또한 자주 침수가 되는 지역으로 낙인 찍혔다. 끄망은 깔리 끄루꿋과 깔리 맘빵이 불과 약 1km 거리를 두고 위치에 있는데다가 이 강둑의 녹지를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건물들이 많아 우기에는 상습적으로 침수되고 있다. 원래 깔리 끄루꿋의 강폭은 20m였는데 이런 불법 건축물들로 인해 현재는 강폭이 4m~5m 밖에 되지 않게 되었다. 이 건축물들 중 소유권이나 건축권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분명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불법적으로 발급받았을 것이다. 끄망의 침수는 인재(人災)이다.
 
[리뽀몰 끄망앞을 흐르는 깔리 끄루꿋]
 
자카르타 어느 지역보다도 끄망에 외국인이 많이 살지만, 앤드류 자신은 정체성 혼란을 겪을 때가 많다고 한다. 자신은 유창하게 인도네시아어를 구사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그를 보면 바로 영어로 말한다고 한다. 물로 그는 인도네시아어로 답한다고 한다. 

- 끄망에 오래 살았지만 여전히 디아스포라라고 느끼는지?
“현대인들은 모두 디아스포라가 아닌가? 끄망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인생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 있다. 끄망은 나의 두번째 고향이다. 그래도 정말 고향 생각이 절로 날 때는 아무런 생각없이 시거와 맥캘란 서너 잔과 더불어 프리미어 리그를 집중해서 본다.” 

- 와이프가 무슬림이라고 들었는데…
“앞으로는 그런 거 묻지 마라. 와이프는 충실한 무슬림이다. 나도 무슬림으로 개종했다.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지는 않지만, 이슬람이 강조하는 평등과 사랑을 믿는다. 종교가 무엇이냐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중요하지도 않고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 호주에 있는 가족은 잘 지내고 있는지?
“가끔 연락한다. 전처와는 오랜 친구처럼 지낸다. 전처로부터 얻는 아들은 장성하였다. 호주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아들은 일 년에 한 두 번 자카르타에 와서 우리 집에서 머물다 간다. 몸에 문신을 하고, 프로골퍼 리키 파울러가 쓴 스냅백(일자 챙 모자)을 즐겨 쓴다.” 

- 일상의 사는 나름의 철학이 있는지?
“일 마치고 돌아갈 가족이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무엇보다 몇 년 전 친딸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를 입양했는데 건강하고 밝게 자라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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