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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215) 발리에 간 'K-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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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36회 작성일 2023-09-23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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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 간 'K-사람' 


조현영 


올해도 발리를 찾았다. 이번에는 한국의 친구들과 발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나는 그보다 며칠 먼저 발리로 가서 나홀로 벼르던 여행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작년에 서핑에 도전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올해는 혼자 돌고래를 보러 가기로 한 것.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일일 수 있겠으나 혼자 무엇을 실행하는 것이 아직도 낯선 나에겐 일종의 도전이다.


발리에 도착해서 만난 렌트카 운전기사는 다행히 한국말을 하지 못했고, 불행히 나는 인니어를 알아듣느라 혼자인 듯, 혼자 아닌, 혼자 같은 여행길이 됐다. 밝고 착하고 센스있고 수다스러운 기사 덕분이었다.


여러 번 갔던 발리였어도 혼자 떠나는 발리 길은 처음이어서 나름 설레었는데...뜻밖의 변수가 나타나 설렘은 반토막. 3분의 1은 못 알아듣는 와중에도 기사와의 수다는 유쾌했다. K-드라마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 드라마였는데 정작 나는 못 본 것이라 맞장구만 열심히 쳐주었다.

 

어디에나 퍼져있는 K(한류)는 나로 하여금 K-사람으로서 체통을 지키게 만들었다. 최근에 자주 발생한 외국인 관광객의 일탈 혹은 추태 문제들이 이슈가 되기도 했고.


첫 홀로 여행지는 로비나 비치에서 돌고래를 보는 것이었다. 로비나 비치까지 가는 길에 브두굴 사원에 들러 K-아줌마 혼자 둘러보고 사진 찍고 막 이러고 있는데, 히잡 쓴 여학생이 나에게 한국 사람이냐고 말을 걸더니 자기 일행들과 같이 사진 찍잔다.


(왜? 나 아줌만데? 한국 사람이라서?) 어리둥절했지만 거절하기가 애매한 상황이라 일단 최대한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장착하고 같이 찍혀줬다.


요즘같은 내 풍채로 보면 중국 아줌마 각인데...10여 년 전만 해도 현지인들은 내가 살 좀 빠졌을 때는 일본 사람, 살 좀 찌면 중국 사람으로 알아봤었다.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 이는 별로 없었다. 이제는 K의 영향으로 나는 비로소 한국 사람이 된걸까?


드디어 돌고래 투어. 새벽 5시 반의 바다는 해뜨기 전 그저 깜깜했다. 바람소리 파도 소리만 들릴 뿐. 이런 바다를 본 적이 있었던가…검은빛 바다위를 밤배 저 밤배 무섭지도오오 않은 가봐 한없이 흘러가아아네…저절로 오래 전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K-옛날사람이었다.


이 낯선 곳에 혼자여서 좋지만 또 혼자라서 싫은 사춘기같은 변덕스런 마음이 불쑥 올라온 것을 모른 체 하며 구명조끼부터 내놓으라고 선장을 졸라댄 거 빼고는 깜깜한 바다 앞에서 내 상태는 괜찮았다.


돌고래를 찾는 배의 선장은 능숙하게 돌고래들이 지나는 길을 찾아다녔다. 한 배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다른 배들이 우르르 함께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내적 경쟁심을 유발하는 돌고래의 행적을 쫓아 한 시간 반 남짓 모닝 숨바꼭질을 했다. 


스치듯 돌고래 무리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곳에 사는 생명체를 보는 일은 경이로웠다. '너희가 사는 그 세상은 어떠신가. 내 눈에 보이듯 그렇게 매끄럽게 자연스럽게 세련되게 어우러진 세상이신가...' 이렇게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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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로비나에서 만난 돌고래 (사진=조현영) 


친구들과의 '만남' 

발리에 도착한 친구들과 만났다. 내가 준비한 일정 중에는 선셋 크루즈가 있었는데, 오후에 배를 타고 근처 바다에 떠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배 위에서 식사와 라이브쇼를 즐기는 프로그램이었다. 


배 타기 전 대기실에서 탑승자들에게 꽃 목걸이를 나눠주던 직원이 있었다. 대뜸 내 친구 중 한 명이 그녀에게 "Are you ARMY?" "네~ 저 아미에요" 이러더니 둘이서 알던 사람마냥 이야기를 나눈다. 중년의 아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아미끼리는 다 통한다나...한국에서 온 내 친구가 발리 현지인과 아미로 통할 줄이야...조금 신기했다. (아미는 BTS 팬클럽 이름)  


선상에서 식사하는 동안 라이브 밴드가 나와 노래와 연주를 했다. 귀에 익은 한국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이~마안남은~' 아저씨들 10년도 더 된 레파토리는 여전하네.. 친구 중 한 명이 불려나가 마이크를 잡고 '만남'을 불렀다. 


"핸드폰 후레쉬 켜!"  

내가 말하자 우리 5명은 일제히 핸드폰 후레쉬를 켜고 만남 리듬에 맞춰 좌우로 흔들며 따라 불렀다. 우리 건너편에 있던 서양인 노부부가 우리 모습을 보고 즐거워 하더니 본인들도 따라했다. 이런게 K-응원이랄까.


식사 시간이 끝나고 선상에서 '캬바레 쇼'와 디스코 타임이 있었는데 중간에 '강남스타일'이 나오자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우리는 열심히 환호하고 신나게 박수치고 분위기를 띄우며 K-아줌마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 자리에 있던 서양인 현지인 할 것 없이 강남스타일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발리 바다 위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듣는 K-pop이라니..새삼스러웠다.   


흥겨운 시간이 끝나고 돌아갈 시간, 유럽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나에게 또 물었다. 한국 사람이냐고 같이 사진 찍어줄 수 있냐고... 한번 해 봤으니 이번에는 여유로운 미소 장착 후 찰칵. 나 또 K-사람 인증 받았다. 


아, 내 아미 친구는 아까 그 아미 직원을 찾아 마음이 담긴 팁을 전했다. 이건 K-팁.


자카르타에서도. 

자카르타 시내 커피숍에서 한 현지인 젊은 여성이 나를 보는 시선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나에게 접근해 말을 걸었다. K-언어(한국말)로 한국 사람이냐는 것이다. 그녀의 한국어는 유창하진 않았지만 열심히 독학하고 잘 써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말투였다. 


그 마음이 저절로 느껴져 정성스레 한국말로 대답하고 칭찬도 듬뿍 해주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그녀는 나에게 아파트 마케팅 전단지를 어색하게 건네주고 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어를 잘 하는 현지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배우기 쉽지 않은 내 나라 말을 인도네시아 사람이 저렇게 잘 한다는 것이 신기했고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미디어에서 보고 듣던 것 보다 한류가 더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우리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사람들을 구별하기 쉽지 않듯이 저들도 한국, 중국, 일본 사람을 구분하기 쉽지 않을텐데...


최근 현지인들이 나를 'K-사람'으로 한번에 알아보게 된 것은 내가 더 한국 사람처럼 보여서라기 보다 그들의 K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고 확장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 잘 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지인과 이런 얘길 나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말 조심히 써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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