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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77) 나의 바틱 사랑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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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7,239회 작성일 2021-05-1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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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틱 사랑 30년

사공 경(자카르타 한인니문화연구원장)
 
한세24초대전 바틱 전시회, 가나인사아트센터(2016.6) (사진=사공경)
 
 
1. 바틱은 사랑이다

오늘 밤은 Ibu Ari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
 
“긴 시간과 반복된 작업을 필요로 하는 바틱은 사랑 없이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합니다. 옛날에는 바틱은 사고 파는 상품이 아니라 만드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고 말했지요. 인생의 중요한 때에 그에 맞는 의미의 바틱 문양을 입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바틱은 상품이 아니라 사랑이 분명합니다.

절절히 선을 이어 무늬를 넣고 있는 바틱 만드는 여인은 깊은 눈에 긴 머리 묶어 올리고 영혼의 옷, 철학의 옷을 만들고 있습니다. 바틱은 사랑입니다. 바틱 여인은 사랑으로 만든 옷을 입고 사랑으로 옷을 만들고 사랑 때문에 살다 사랑 때문에 죽을 것이니까요. 가슴을 태우며 갈망하는 사랑이 아니라 치맛단이 길어 넘어질까 안타까이 기다릴 줄 아는 숨죽인 사랑이랍니다. 바틱 만드는 여인이 몰입하는 아름다움은 분명 거룩함입니다. 정직하게 사랑하고 지혜롭게 사랑하는 바틱 만드는 여인의 천천히 견고하게 움직이는 손끝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인도네시아에서는 생일이나 특별한 날 혹은 결혼식 때, 부모님은 직접 그린 바틱을 자녀들에게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예를들어 임신 7개월째는 태어날 아이가 높고 고결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도 물리요(Sido Mulyo)문양 바틱을,태어날 아이가 사랑받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시도 아시 (Sido Asih) 문양 바틱을, 아이가 고상하고 순결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시도 루후르 (Sido Luhur) 바틱을 선물을 한다.

결혼식 날, 신랑 신부는 시도 묵띠 (Sido Mukti)문양을 입는다. 이 문양의 의미는 부유한 삶을 살고 영광스럽게 된다는 의미이다. 양가 부모는 뜨룬뚬(Truntum)문양 바틱을 입는다. 이 문양은 사랑과 인내를 상징한다.
 
       
 
 
2. 바틱으로의 입문

1990년 8월. 야자수나 바나나, 자바원인을 떠올리며 인도네시아에 왔다. 또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외국 가요 소개에 나오는 ‘벙아완 솔로(Bengawan Solo)’도 잠깐 떠올렸다. 허나 공항에서 나를 맞이하는 것은 다양하다 못해 당시로서는 복잡한 문양의 바틱이었다.
 
모든 문화는 자연을 바탕으로 한다. 바틱은 더운 날씨에 최적의 옷이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문양은 인도네시아의 강렬한 태양과 아름다운 자연과 여유로움과 잘 어우러졌다. 바틱의 바탕을 꽉 채우는 것 또한 인도네시아의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가을, 겨울이 없는 이곳은 여백의 미 보다는 채움의 미가 더 자연스러웠으리라.

이후 30년 동안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이곳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예식이나 특별한 행사에 전통의상을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전통의상을 즐기는 것을 보았다. 아니다.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김치가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유럽 사람들이 치즈가 없으면 살 수 없듯이, 그들의 유전인자에는 이미 바틱인자가 내재하고 있었다.
 
세계명품이라 할지라도 거의가 프린트 제품이다. 천연염색으로 그려넣는 바틱(batik tulis)은 화학염료의 옷, 프린트 옷과는 느낌이 달랐다. 또한 바틱은 다른 명품과 다르게 손으로 그린 색상이 깊고 풍부했다. 바틱 뚤리스는 단순히 그려넣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말람을 입히고 고도의 기술로 배합된 염료로 여러번 염색하고 삶기 때문이라는 것을 직물박물관이나 바틱 공방, 전통 바틱 생산지를 수없이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많은 바틱에 관한 책과 자료를 접했는데, 첫 번째 만난 책이 ‘Batik, The Soul of Java’ (by Fred W. van Oss)이었다. 두 번째 만난 책이 Batik Fabled Cloth of Java(by Inger McCabe Elliott,1984) 이었다. 제목만도 가슴을 울렸다. 바틱(Batik)은 ‘인도네시아 직물의 대명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영혼” “전설(우화)”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책이나 자료에는 ‘바틱은 직물 중에서도 쉽게 문화와 천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 주고, 자바인의 생활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Cirbon Trusmi 마을 바틱 공방(사진=사공 경)
 
3. 직물박물관 산책
 
바틱을 알고 싶어서 직물박물관과 무기 선생님(Pak Mugi)의 공방에 자주 들렀다. 그러던 중 1998년 직물박물관에서 후에 부관장을 역임(2009년)한 바 있는 Ibu Ari를 만나 친분을 쌓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Ibu Ari는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다. 중부 자바의 전통 가옥인 조글로(Joglo) 스타일로 만들어진 바틱 공방에서 그녀는 섬세하고 정교한 동작으로 바틱을 가르쳐 주었고, 꿈꾸는 듯한 눈동자로 문양의 상징을 설명해 주었다. 그들의 바틱(문양)은 우주관과 철학, 식민지 시대의 문화, 새로운 이념을 받아들이는 포용성까지 보여주며 한없이 느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끔 Ibu Ari에게 인도네시아에 대해 물으면, “구루 사공, 바틱을 알면 인도네시아가 보여요. 인도네시아 문화의 깊이를 알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구루 사공’이라고 불렀다. 당시에 나는 “Jakrta International Korean School, JIKS”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었다.

직물박물관은 1976년에 영부인 띠엔 수하르토 (Tien Soeharto)에 의해 개관하게 된다. 띠엔(Tien) 여사는 바틱에 애정이 많아 바틱 디자인에 새로운 패션을 시도하였고, 정계 부인들의 중요 모임에 단체복을 만들어 입도록 제안하였다. 바틱의 4대 생산지 중 하나인 솔로의 망꾸느가라 (Mangkunegara) 왕궁에서 자란 띠엔 여사는 바틱이 왕궁에서 발달한 고귀한 직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1970년대 중반에 현대직물이 보편화되면서 전통직물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 전통직물애호가협회(WASTRAPREMA)와 당시 산업부의 직물 부장인 사피운(Safioen)이 인도네시아 전통직물을 보존하자는 운동을 펼쳤고 1972년, 긴 소매의 바틱을 공식적인 행사에서 남성 정장으로 인정하는 조례를 만들어 공표한 알리 사디낀(Ali Sadikin)주지사가 직물박물관 개관에 적극 협조해 주었다.

2000년 11월 21일 직물 박물관의 주 전시관 오른쪽에 바틱 갤러리관 준공식이 있었다. 갤러리 관은 우아한 고대 분위기를 자아내며, 인도네시아 전 지역에서 가져온 바틱을 전시하고 있다. 개관식 때 전통직물애호가협회, Yayasan Mitra Museum Indonesia와 협력하여 바틱 디자이너 이완 띠르따(Iwan Tirta)의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2010 작고한 바틱 디자이너 이완 띠르따(Iwan Tirta, (1935.4~2010.7))는 7080년대에 새로운 분야의 바틱 디자인을 개척한 예인이었다. 패션쇼에서 만나는 그의 작품은 언제나 대담하고 강렬했다. Iwan Tirta가 쓴 “Batik A Play of Light and Shades”(1996)를 나는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는 1966년, 처음으로 Silk Batik을 시도함으로써 고품질 Batik을 생산하게 된다. 그는 다양하고 풍부한 디자인, 고도의 염색기법과 기술적인 완성도로 인도네시아 Batik을 세계의 정상에 올렸다.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사진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994년 APEC 정상회담 때 보고르 궁전에서 고 김영삼 대통령과 21개국 정상들이 그의 Batik 셔츠를 착용하고 손을 흔들며 찍은 사진이다. 고 수하르토 대통령의 빛나는 ‘바틱 외교’의 한 장면이 연출되었고, 그는 세계적인 바틱 예술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 1994년 APEC 정상회담 때  Iwan Tirta Batik을 착용하고 있는 정상들(구글 이미지)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한 바틱은 수많은 장인의 혼이 담긴 예술품으로 인정받아 2009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1년 후인 2010년 10월 2일에 Yayasan Batik Indonesia와 협력하여 문화 관광부 장관인 제로 와찍(Jero Wacik)이 직물박물관의 바틱 갤러리관을 보수하여 재준공식을 올리면서 유도요노 대통령은 10월 2일을 ‘바틱의 날’로 선포했다.
 
바틱 갤러리관 앞에는 아주 오래된 나무가 있다. 마음껏 푸르르고 마음껏 시들었던 이 나무처럼 전시된 바틱은 흐르는 세월의 흔적으로 더 아름다워 보인다.
 
4. ‘자바의 영혼’에서 인도네시아 문화의 아이콘으로
 
▲바틱은 문양을 변형하기 쉬워 무한한 문양을 만들 수 있다 (사진=사공 경)
 
바틱은 ‘자바의 영혼’에서 인도네시아 문화의 아이콘으로 진화 발전하였다. Ibu Ari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바틱은 적도의 더운 날씨에 적합하며 문양을 변형하기 쉬워 문양 만들기가 무한하며, 경제적 가치가 있다. 인도네시아 군도의 수많은 종족이 나름대로 독창성을 살릴 수 있는 문화적 토대가 되었다고 답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정치의 변화와 무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말레이시아와의 문화 갈등으로 자국문화 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고, 역대 대통령들의 바틱 사랑으로 정부가 정책적으로 바틱 문화 발전에 앞장섰기 때문이리라.
 
기원전부터 시작된 인도네시아 바틱 문화는 전통이라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시공을 초월하는 생명력을 지니고 진화 발전하고 있다. 한 점 가감 없이 오랜 세월을 전해 내려온 여러 지역의 전통 문양과 누산따라를 아우르는 ‘바틱 인도네시아’, 그리고 현대적 감각의 문양이 서로를 물들이면서 그들의 역사와 무역의 형태, 인생관, 문화적 배경이 내재해 문화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이처럼 인도네시아 문화의 보물창고가 되어 현대와 만나며 역사의 진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울예술대학교 초대전 바틱 전시회(2016.6)에서 바틱 실습을 하고 있는 직물박물관 Ari 부관장 (사진=사공경)
 
 
*참고문헌
국제학박사학위논문, 인도네시아 바틱: 지역문화에서 국민문화로 확대 (이지혁, 2014)
Batik, Fabled Cloth of Java, by Inger McCabe Elliot (1984)
Batik: A Play of Light and Shades by Iwan Tirta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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