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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코로나 시국에 여행…그리고 정신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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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21-02-18 00:28 조회 7,6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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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에 여행…그리고 정신승리
 
조현영 
 
I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인 작년 11월에 인니 관광청이 주관하는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죽어가는 국내 관광산업에 조금이나마 불을 붙여보고자 인니 관광청이 방역 여행이라는 컨셉으로 준비한 여행이었다.
 
이 시국에 소심한 내가 낯선 이들과 4박 5일의 여행을? 깃발만 안 꽂았을 뿐 줄지어 다니는 단체관광 패키지 아니겠나 싶어 시큰둥하다가 여행지를 알고 나서 무조건 데려가 달라고 아양을 떨어댔다.
 
무거운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 여행지는 바로 동누사뜽가라 플로레스 섬 라부안 바조(Labuan bajo)와 발리(Bali)였다. 가보고 싶다고 혼자 훌쩍 가볼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데려가 준다는 사람 있을 때 따라나설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심지어 내돈내산도 아니요 2020년 답답했던 한 해가 끝나가는 마당에 이런 행운이라니 놓쳐서는 아니 되었다.  
 
이름으로만 들어서 알고 있던 플로레스 섬, 언제라도 좋은 발리라니. 막연하나마 플로레스 섬에서 느낄 수 있는 대자연과 바다를 상상하며 집콕에서 벗어날 기회에 감사하며 모든 여행이 그렇듯 준비과정은 여행 못지않게 즐겁지 않은가. 너무 상상하고 준비에 집중한 나머지 여행 당일엔 진이 좀 빠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II
그리하여 내가 가 본 인도네시아 중 가장 먼 곳으로 떠났다. 내가 살던 곳과 다른 하늘, 다른 공기, 다른 풍경은 내가 아닌 듯 많은 생각을 잊게 해주었다. 이 맛에 여행하는 거지. 멋진 사진 찍겠다고 깊숙이 넣어 챙긴 카메라를 꺼낼 타이밍을 기다리며…
 
카메라를 꺼낼까 말까 주춤거리는 동안 일행 중 일본 기자 두 명의 손에는 이미 DSLR 카메라가 떡하니 들려 있었다. 카메라는 내 것 보다 훨씬 좋았고 (풀바디에 아빠백통까지), 장비 들고 있는 폼이 아주 자연스러웠으며 주변을 의식하지 않았다. 어...나도…주섬주섬 가방을 헤집어 카메라를 꺼내려다가 괜히 따라하는 것 같고 뭔가 찌질해 보여서 아무렇지 않은 척 막, 핸드폰으로 막, 그냥 찍었는데 머릿속은 좀 복잡했다.
 
(내 카메라가 어때서? 똑딱이로도 잘만 찍고 다녔는데 뭐가 문제임? 짐 풀고 찬찬히 찍으면 돼, 급한 건 핸드폰으로 찍으면 되지, 요새 폰카가 더 잘 찍혀. 장비빨 세운다고 결과물이 다 좋은 것도 아니더라고, 나는 나만의 느낌과 갬성으로 찍잖아, 카메라 좀 쳐진다고 꿀리지 말란 말이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일에 나는 혼자 정신승리하며, 그동안 흘러가버린 풍경은 내 눈 속에도 담지 못했다.
 
III
코로나 때문에 관광지는 망해가는데 코로나 덕분에 관광객은 여유로웠다. 어딜가도 사람이 없으니 온통 우리들 차지였고, 떠밀려 다니지 않아서 줄을 서지 않아서 좋았다. 게다가 팸투어를 주관한 인니 관광청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황제 여행이 따로 없었다.
 
코모도 섬의 핑크비치에 닿았을 때도 그늘 하나 없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 핑크빛 모래와 그 위에 동물 발자국, 분홍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우리 일행뿐이었다. 좁게 깊이 패인 동물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저쪽 멀리서 두 소년이 걸어온다.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다.
 
여행 중에 예상치 않은 곳에서 마주치는 뜻밖의 만남은 알 수 없는 설렘으로 다가와 심장을 뛰게 한다. 나는 그 설렘의 만남이 발자국의 주인이자 네 발 달린 짐승이며 그걸 발견한 나는 화들짝 놀라 자빠져 내 심장이 궁광거릴 것이라고 상상했으나 뜻밖에 두 소년의 출현에 나는 그저 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피부는 검게 그을려 눈이 더 또렷하게 닮은 두 소년은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나 손에 든 것들을 핑크빛 미래 아닌 모래 위에 펼쳐 놓았다. 조개껍질로 만든 그릇 몇 개와 나무로 깎아 만든 코모도 인형, 자석 팔찌, 누가 봐도 프라스틱 진주목걸이 였다. 그것들을 본 나는 그 옆에 쪼그려 앉아 흥정을 제대로 해 볼 작정이었다. 내 손에 무엇이 들리든 아니든 나는 20만 루피아 까지는 기부하는 마음으로 그들 손에 돈을 쥐어줄 작정이었다. 내가 잃을 수 있는 한도를 정해 놓았기에 한껏 여유로왔고 그들을 내치려고 한다거나 바가지 쓰지 않겠다는 안간힘 따위에 힘을 쓸 필요가 없었다.
 
일행이 나의 흥정의 현장을 찍는 줄도 몰랐다. 
 
내가 여유롭게 소년들의 말을 받아주는 것으로 우리의 흥정은 시작되었다.
 
-아줌마, 이것 좀 사 주세요. 네? 이거 자석이 들어있는 건강 팔찌고요.. (소년은 최대한 힘없는 목소리로 눈빛으로 내게 측은지심을 유도했다.)
-응, 그러니? 너 네 여기 살아? (안그래도 이 아줌마가 사 줄거야, 나랑 조금만 노닥거리다가 돈 가져가면 된단다.)
-아니요, 저쪽 코모도 섬 안에 살아요.
-아, 그래? 여기까지 돈 벌러 오는구나. 많이 팔았니?
-아뇨 (더 힘 빠진 목소리)
-알았어, 이 자개 그릇은 얼마니?
-1개 30만 루피아예요.
-으응? 얼마? 30만 루피아? (내가 잘못 들었나? 3만루피아 아니고? 이거 발리가면 널렸어 얘)
-맞아요, 1개에 30만 이예요.
-어우야~ 너무 비싸다 얘, 깎아줘. (예상밖의 비싼 가격에 내 본분(?)을 잊고 진짜 흥정하기 시작)
-얼마하고 싶은데요? (오호..먼저 선 긋지 않으시겠다?)
-그냥 저 작은 거 2개 20만에 해주라
-안되요, 아줌마…2개 40만 주세요...
-(당황하지 않고 치고 빠지기 ) 음..그러면, 내가 물건 안 사고 너네 사진 찍은 값으로 10만 룹 줄게. 나 사실 이거 필요 없거든.
-(진짜 고민1도 안 하고) 그럼 그냥 2개 20만에 주세요.
-(이야..너는 여기까지 흥정을 예상하고 있던거야? 너네들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하하하아…알았어. 여기 20만룹 주고 나 2개 가져간다아~~
 
나의 각본대로 되었다. 돈 주고 일어서는데 한 녀석이 볼멘 소리를 한다
 
-아줌마, 그릇은 얘 꺼에요. 내 꺼는(자석팔찌) 안 사줘서 난 돈 못 벌자나요.
 
(이건 또 뭔 시츄? 너네 형제 아니었어? 그걸 왜 나한테 따지는거니, 더 안 사줬다고 따지면 안되능거 아니지 않니이이? ) 돌발 상황이다. 저 아이들을 생각하면 공평하게 해주는 게 좋겠는데 내가 가진 예산은 이미 다 써버렸다. 다시 쪼그리고 앉아 타이르듯이 말했지만 나는 조금 떤 것도 같다.
 
-(그릇 한 개를 내려놓으며) 그..그러면, 아줌마가 이거 하나만 가져갈게, 팔찌 팔았다 치고 둘이 사이좋게 10만룹씩 나눠 가져, 그럼 괜찮지?
 
두 소년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끄덕...마치 내 제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주겠다는 듯이..
(뭐지 이 띵한 느낌은.)
 
두 아이는 주섬주섬 짐을 싸서 내 앞에 섰을 때 그 표정 그대로 왔던 길로 되돌아 갔다. 두 아이 뒷모습을 보는데 환청이 들린다. (형아, 오늘 호갱님 제대로 만난거 같아.)
 
' 형아, 오늘 호갱님 제대로 만난거 같아,같아,같아....'
환청이 들렸던 두 소년의 뒷모습을 내가 찍어두었다.
 
관광객이 끊겨 기념품 하나 팔지 못하는 아이 앞에 관광객으로 나타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라고 나는 또 그렇게 정신승리 하며 자개그릇 하나 들고 핑크비치를 떠났다.
 
코모도 국립공원을 돌아보고 나오던 길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샀다며 일본 기자분이 코모도 목공예품을 보여준다. 내 자게 그릇보다 몇 배는 크던데 그걸 20만 루피아에 샀다고 하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말했다.
 
-나까무라(가명)상, 바가지 썼네요.하하
 
나도 옆에서 말없이 웃었다. 하하하...적어도 난 바가지는 아니라며.. 기부한 거라며…
 
 20만 루피아 짜리 자개 그릇...아, 고급져..또 한번 정신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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