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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55) 대나무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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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584회 작성일 2020-09-10 09:59

본문

대나무 숲에서
 
최장오
 
 
댓 잎이 연 초록 치마처럼 흔들릴 때 댓 숲으로 가라
 
댓 숲이 침묵하면 참새조차 숨을 죽인다
가만히 귀 기울여 봐
마디를 키우는 소리가 들릴 꺼야
공명을 채워 부러지지 않도록 휘어지는 연습을 하는 거지
 
댓 숲이 비를 맞으면 마디마다 슬픔이 차곡차곡 쌓인다
가만히 발걸음 멈춰 봐
텅 빈 대나무 속에서 옅은 울음이 들릴 꺼야
슬픔을 삭혀 공명을 채우는 거지
 
댓 숲에 바람이 불면 댓잎은 옅은 치마처럼 펄럭인다
가만히 그를 만져 봐
잎새가 전하는 떨림을 느낄 꺼야
청년의 푸른 핏줄처럼 의연하게 단련하는 거지
 
정오의 해가 입 맞춤 할 때 댓 숲으로 가라
 
댓 숲에 가면 통통하고 익어가는 소리가 들릴 꺼야, 가만히 들어봐
대나무 크는 소리야
 
어린 죽순이 쭉쭉 뻗어 일생에 최고 높은 곳까지 올라가지, 왜 인지 알아
지가 구부러질 수 있는 한계를 가늠하는 거지
 
죽순이 삐죽삐죽 겁도없이 커 가다가 작아지지, 왜 인지 알아
행간에 의미를 숨겨 넣듯, 마디마다 내실을 다지는 거지
 
댓 잎이 검푸른 파도처럼 흔들릴 때 댓 숲으로 가라
 
아침처럼 고요한
일몰처럼 묵직한 침묵이 있다
거기 꽉 찬 침묵이 있다
검푸른 빛으로 익은 마디마다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진=Pixabay, Jason Goh )
 
***시작노트
 
대나무의 의연한 자태와 올곧음에 한동안 마음을 준 적이 있다.
대나무가 주는 ‘대쪽 같은 기개’라는 강한 이미지에만 눌려 있던 편견을 벗어버린 시간이었다.
인고의 세월을 견디는 그의 숨소리를 듣다 보면, 세상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듣는 자세와
호흡하며 함께 어우러지는 넉넉함도 느낄 수 있다.
사철 푸르고 곧은 기개를 갖기 위한 노력이 죽순부터 다져지듯, 스스로의 단점을 극복하며
강직하게 자라고 한계를 가늠하여 오만해지지 않는 그런 삶은 내가 내내 배우고 싶은 모습이다.
 
 
*이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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