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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41)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뉴노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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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613회 작성일 2020-05-2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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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와 공존하는 뉴노멀 시대
 
 배동선 /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정상적이라는 의미의 노멀’(Normal)이 새롭다는 뜻의 뉴’(New)와 만나 ‘뉴노멀’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마음 한 켠에 퍼뜩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그게 절대 정상일 리 없잖아!’ 뉴노멀 시대란 얼마전까지만 해도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던 상황을 정상적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이상한 시대를 말한다. 이번 뉴노멀 시대에 우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게 뭐 대수랴 싶다. 북한은 물론 역사상 몇 번씩이나 전쟁을 벌였던 이웃 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살아가는 한민족에게 평화 공존은 운명적 특기 아닌가? 더욱이 우리 개개인은 명칭만 그렇게 붙이지 않았을 뿐, 사실 수많은 뉴노멀의 단계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대체로 보호본능 충실한 가정과는 전혀 다른 세계인 학교에 적응해 이 사회의 기준과 굴레와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 뉴노멀과의 첫 번째 조우였던 것 같다. 군과 회사에서는 소신과 정의감 따위보다는 타인과 부하들을 부려 먹는 처세술과 뻔뻔스러운 책임 전가가 매정한 조직사회에서 유려하게 살아남기 위한 발군의 능력으로 인정받는 뉴노멀을 경험한 이들도 장담컨데 적지 않을 것이다. 책임감을 배우게 되는 결혼생활, 스스로 생각하던 것과 달리 자신이 사실은 그리 대단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마침내 깨닫고야 마는 중장년의 걸림돌들도 언제나 새로운 환경들이다. 더욱이 동포사회의 교민들이라면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인도네시아란 뉴노멀에 적응하고 체화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번 뉴노멀 시대도 새롭게 제시된 기준에 적응해 가는 또 하나의 챕터에 불과하다.
 
한편 ‘바이러스와의 공존’이라는 언급에서 인류가 이번 팬데믹을 통해 얼마나 집단적 겸손함을 터득했는지도 새삼 느낀다. 늘 도전과 극복의 대상이었던 자연에 모처럼 공존을 선택한 점에서 그렇다.
 
물론 그게 바이러스와의 공존이 아니라 공해가 사라진 맑은 하늘과 깨끗한 해변과의 공존이었다면 더욱 좋을 뻔 했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넘게, 이젠 되돌려 놓을 수도 없을 만큼 지구를 훼손한 후에야 한 두 사람의 사상가나 정책결정자가 아니라 전 인류적 차원에서 자연과의 ‘공존’을 생각하게 된 것은 이번 바이러스 사태가 가진 일말의 순기능일지도 모른다.
 
조꼬 위도도 대통령이 2020년 5월 24일 보고르 대통령궁 앞뜰에서 이슬람력 1441년 이둘피트리 기도를 드리고 있다. 대통령궁에서 이슬람 사제와 대통령궁 관계자와 널찍이 띠어 앉은 채 드리는 예배는 뉴노멀의 한 풍경이다. 자카르타 이스티끌랄 대사원에서 수십만 명이 개인 깔개를 다닥다닥 붙여서 동시에 기도하고 기도문을
소리내 읽는 풍경은 더 이상 노멀이 아닌 상태이다. [사진: 조꼬위 공식 페이스북]
 
 
감염대국이 되어버린 미국과 러시아, 물밑에서 창궐하는 감염병을 애써 무시하며 코로나 승리를 선언하고 방역규제를 해제한 일본의 모습에서 선진국 또는 강국이란 명칭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새삼 깨닫는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다. 5월 25일 일본의 불가사의한 방역성공 발표를 우리가 우려하거나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다. 1억 26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일본은 국가적으로 이제 국민 개개인의 면역력에만 의존하는 코로나 실험실이 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정말 감염병을 극복해낸다면 더없이 축하할 일이지만 일본에 흔한 종말론적 영화나 만화에서처럼 무능한 극우정권이 국가를 처참한 파국으로 몰고간다 해도 그것대로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천년 넘게 이웃국가들을 침범하고 괴롭혔던 한 민족은 그렇게 그들 나름의 뉴노멀 시대를 맞는다.
 
우리도 우리만의 뉴노멀 시대를 개척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뉴노멀은 소외된 이들에게 보다 큰 배려와 응원을 담은 것이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몸이 아파도 회사 출근해서 죽으라는 상사의 악다구니를 더 이상 들을 필요 없는 세상, 학교폭력이나 직장 갑질 사건의 당사자들을 비대면으로 갈라놓는 효과적인 기술 발전 같은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속히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뉴노멀이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르바란을 맞으며 두 달 넘게 보건긴급사태 선언과 대규모 사회적 규제조치(PSBB)를 실시했음에도 수치상 도저히 코로나 확산이 억제되었다고 보기 힘든 인도네시아에서도 6월 4일 두 차례 연장된 자카르타의 PSBB 조치가 끝나면 곧 정상 생활로의 복귀가 서서히 시작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어차피 경제를 언제까지나 묶어 둘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경제 재개 시점이 감염병 절정기와 겹칠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존을 그렇게까지나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인도네시아의 뉴노멀은 그렇게 찾아올 모양이다.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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