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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0) 플로레스해의 붉은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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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099회 작성일 2017-11-1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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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레스해의 붉은 고래
                                                           
김현미
 
 
“자. 이틀후에 떠날꺼야. 비행기, 배 예약 알아서 하고, 엄마는 이틀동안 일정리 할께.”
 
일.일.그리고 일로 이어진 일상으로 내몸에 고단한 냄새가 난다는걸 알아차렸을 때 저지르지 않고는 브레이크를 걸수 없다는 생각이 났고, 바로 딸에게 전화했다. 야~~호를 외치며 딸은 알아서 하겠노라고 세시간후 BCA 통장번호를 보내왔다.
 
가끔 모든 것의 시작은 입금으로 시작 된다고 생각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들의 엉킨 실타래가, 그 애매한 망설임이 입금으로 가위로 뚝 잘린듯 명확해졌다. 스케줄 확정이 되었으니 이틀간 달려보자. 빠샤!
 
발리를 경유해서 Labuhan Bajo 공항에 이르렀을 때, 이미 나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프로레스 섬들의 신비로움에 아침에 머물던 세계와는 다른 세상에 서 있었다.
 
그 날의 바다엔 플로레스 섬의 연두빛과 하얀구름 묻힌 바람과 눈부신 투명햇살을 머리에 쓴 세 사람이 있었다.
 
 
배는 Padar Island 에 먼저 도착해 우리는 트래킹에 올랐다.
 
딸은 사진을 제대로 담아보겠다고 벼르며 벅찬 숨을 고르며 올라갔다.
 
난 사진 찍는건 관심없다. 이 순간의 가슴 벅찬 공기만 응축해서 내 기억에 넣고 싶다.
 
붉은 산호조각이 부서져 흰모래와 섞여 핑크빛을 낸다는 핑크비치는 인터넷의 절묘한 찰나의 수간보다는 심드렁 했으나,  난 내가 좋아하는 불가사리를 맘껏 구경했다, 세사람은 나를 위해 온갖종류의 불가사리를 잡아서 해안가에 놓아주었다. 남편은 20대의 뻥 가득한 약속을 이 날 지켰다. 그렇게 바다의 별을 따다 주었다.
 
배에서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하늘 한편에서 번져오던 붉은 빛이 바다로 번지더니 끝내는 내가 보는 세상을 다 삼키고, 나는 플로레스해의 고래에 삼켜져 그 거대한 붉은 내장속을 들여다 보았다. 붉은 위액이 한쪽에서 퍼져나와 우리를 녹일것만 같은 두려움이… 순식간의 일이였다. 이런 석양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곧 그 붉은 고래의 뱃속에서 고요히 앉아 깊은 호흡으로 내 앞에 있는 우주와 마주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품으면 그렇지 않던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고, 깊은 호흡으로 서로가 되는, 깊은 신뢰가 주는 그 먹먹하고도 진한 평화로움을 오래, 오래도록 느꼈다.
 
붉은 기운이 지난 자리. 박쥐섬의 박쥐들은 맹그로브 숲에서 일제히 날아오르고, 그 섬뜩한 소음조차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들은 소금처럼 흩뿌려진 밤하늘과 함께 별이 되고 밤이 되었다. 그 곳엔 그것 뿐. 이.였.다.
 
새벽이 왔다. 파란 목덜미을 한 공작이 붉은 꼬리깃털을 날리며 날아 올랐다.
 
코모도 섬에서 본 코모도는 가이드에 의해 억지로 걸어나온 관광용으로 길들여진듯 무심 했으며 (실제로 야생의 코모도의 서식지는 따로 있다고 전해들었다), 오히려 잎에 매달린 저 달팽이는 내 기억의 노랑조각으로 박혀있다.
 
15인용배에 여행객3명 스탭4명 , 비용에 대한 효율을 따지자면 아주 비효율적인 여행지라 할수 있겠다. 배안에서의 식사는 맛있었으나, 그 맛을 유지 하기 위해서는 음식조리장은 안보는 것이 나은 방법이었고, 샤워는 선반하나 안 달린 화장실에서 수압 약한 화장실용 젯워셔로 해야했다. 급한 예약, 날짜조정 불가능한 일정으로 배의 컨디션까지 모두 챙길수 없었던 상황은 진심 어린 유쾌함을 가진 가이드 대니로 녹아내렸다. 무엇보다 선상에서의 밤은 이 모든 비효율을 무의미하게 하였다. 날것이 주는 이 펄떡이는 생명력은 늘 가공하고 각을 맞추어 공간을 익히는 일을 하는 나에겐 아주 특별한 재료가 될것이다.
 
짐을 꾸리면서 잠깐 이불시트를 챙겨갈까…고민하는 사이 딸이 옆에서 더러우면 더러운대로 자야지. 그래야 여행이지. 엄마 그런거 챙기지 말자. 역시 세뇌 시킨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정작 나는 내 신념에 녹아 들지 못했다. 벌레에 놀라지 말자고 다짐을 하고 다짐을 해도 안된다.
 
가끔 형체를 알수 없는 짐들이 산더미 같은 덩치를 하고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올때, 나는 섬에 가고 싶다.  아무도 없어서 좋은, 오롯이 내안에 집중함으로 불안함을 흘려 보낼수 있었던 그 곳. 여행자로서의 삶을 계획하고 있지만, 오롯이 우리만 존재했던 핑크비치는 아름답기 그지 없었지만, 그 플로레스해의 따스하며 서늘한 물빛이 그립기도 하지만, 여기서 한해를 살수 있을까 생각하면 , 난 다시 사람들 속 SAWANGAN A-15호 에서 살고 싶을 것이다.
 
언제가 되면 또 입금을 시작으로 섬을 갈것이고, 입금을 시작으로 일을 더 벌릴 것이고, 입금을 시작으로 강의를 들을 것이다.
 
가끔 수정되지 않는 신념은 똥고집으로 변질 될수 있으니, 사진 찍는건 관심 없다는 내 신념(?)에 꼬리를 달아야겠다. 사진 찍는 내 수고가 번거로운 것이고, 남이 찍은 사진은 환장하게 좋아한다. 그러니까 얌.체. 인 것이다. 딸의 수고로 그 고스라한 시간을 다시금 되새김질하며 행복하다.
 
천둥 같았던 기억의 한조각을 6개월이 지난 지금 꺼내 보다니…다시 번쩍이며 쿵쾅거린다.
멋.찌.다.
 
*** footnote
유년시절 할아버지가 철제캐비넷에서 가끔 꺼내 주시던 비릿한 철내음 가득한 눈깔사탕 처럼… 불편함을 감수하고 기꺼이 한입 깨물고 싶은 위로의 맛이다.
 
*Photo by Kim Hee Yun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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