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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122) 교도 민주주의 시기의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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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0,705회 작성일 2020-01-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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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 민주주의 시기의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
거듭된 개편, 조정 그리고 국립 인도네시아 은행의 제 1부처가 되기까지
 
 
김성석 / UPH 경영학부 교수
 
인도네시아사에서 교도 민주주의의 시기라고 불리는 1959-1965년 사이의 시기에는 의회민주주의가 많이 후퇴되는 시기로 평가된다. 그러나 여러 측면에서 다양성에 대한 포용성을 보여주는 인도네시아의 국민성이 있었기에 이런 시기가 가능했던 것 같다. 종교와 공산주의,그리고 민족주의가 함께 인정되고 경쟁하는 나사콤(Nasakom)체제가 교도 민주주의 시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경제적 지향점이 다른 이 세가지 세력이 경쟁하는 가운데, 실제로 실행된 경제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나사콤 체제 안에서의 경제는 ‘교도 경제’라 불리는 체제였다.
 
부디요노는 그 체제를 ‘핵심 경제 분야에 대한 확고한 명령과 규정에 따라 국가 경제를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체제라 (Boediono, 2016) 정의한다. 이런 시기에 중앙 은행은 어떻게 조직되고 국민경제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교도 민주주의 시기의 중앙은행의 변천 과정과 ‘교도 경제’에서의 역할을 알아보고자 한다.
 
I. 교도 경체 체제
 
독립 초기 지지 부진하던 인도네시아 경제는 1957년부터 시작된 네델란드 민간 자본의 국유화를 단행함으로 인해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었지만, 인도네시아 경제 상황은 매우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며 약화 일로의 길로 들어선다. 1950년대 말에 이르러 인도네시아 국내 정치 상황의 변화로 인한 수카르노가 부상하고, 수카르노는 1945년 헌법으로의 복귀를 선언한다. 1945년 헌법 체제로의 복귀는 수카르노 대통령에게 많은 권력을 주게 된다. 수카르노는 주어진 권력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소위 교도 민주주의 체제로  또한 인도네시아 경제를 교도 경제 체제로 이끌어 나아가게 한다.
 
부디오노 (2018)는 ‘새로운 나사콤 체제 내에서 교도 경제 체제의 부상은 무엇보다 1950년대에 보여주었던 인도네시아 국민 경제에 있어서의 정부의 방향성과 관리 실패라는 인상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보여 주었던 높은 경제 성장으로 보여준 계획 경제의 성공은 인도네시아 지도자들 특별히 수카르노에게 계획 경제의 큰 매력을 갖게 하였다.
 
이 ‘교도 경제’ 체제에서 국영 기업은 이 체제 아래에서 경제의 주축이었고 모든 산업 부분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국영 기업은 정부 예산과 은행권의 지원을 받았다. 은행권은 확고한 일원화된 자금 공급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결국 ‘하나의 은행’ 체제로 재편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으로서의 정책 독립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정부의 경제 정책을 시행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Speech of Soekarno, photo © merdeka
 
2. 오늘도 개편 중인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
 
정부의 중앙 은행 정책 결정에의 개입은 처음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의 성립 때부터 열려 있었다. 1950년대에 증가 일로에 있던 재정 적자를 위한 자본 조달 등에 대한 정부의 압력에 대해 중앙 은행은 저항할 만한 어떠한 위치도 없었다. 1957년에는 심지어 재정 적자 등에 관한 법적인 안전 장치 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재무 안정성을 지키는 역할을 하던 중앙 은행의 역할은 1958년 2월 수마트라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과 관련하여 샤리푸닌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장의 직위를 사임하고 두 명의 정부 각료가 통화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됨으로 더욱 약화된다 (Arndt, 2007).
 
교도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인도네시아의 발전을 위해 1959년 8월 15일에 국가 계획 위원회가 구성되고, 1960-1969년에 이르는 국가 발전 계획이 입안 된다. 국가 발전 계획안은 1960년에 임시로 구성된 국회를 통과하고. 이 국가 발전 계획에 따라 거의 모든 정부 조직이 변화를 하게 되는데,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과 은행권들도 ‘교도 경제’ 체제를 위해 조직과 체제를 계속해서 변화해 나가게 된다.
 
구체적으로 보면 단 두 개의 조문으로 되어 있는 1960년 제 9호 대통령령은 국가 발전 계획에 따라 중앙 은행의 조직과 업무를 개편하도록 명시한다. 이로 인해 중앙 은행의 독립성은 더 많이 약화된다.  정부의 개입의 증가와 중앙 은행의 독립성의 약화는 1962년에 이르더 더 심화된다. 제 3차 ‘일하는 내각’에서 정부의 재무 관련 부서들이 재편이 되는데, 그 중에 중앙 은행도 포함되게 된다. 당시 중앙 은행장이었었던 수마르노는 중앙 은행의 장관으로 임명된다.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 장관으로서 그는 중앙 은행의 모든 인력과 기관들을 장악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통화위원회는 폐지되고 통화정책에 대한 결정권이 내각으로 넘어 간다. 이와 함께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의 위치도 정부의 재정 정책을 실행하는 정부의 기관으로 변화되게 된다. 수카르노 대통령이 중앙 은행으로서 가진 고유 업무에 대한 직접 통제권을 행사하게 되고,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은 그 독립성이 점점 더 약화된다.
 
1963년에는 ‘일하는 내각’이 두번 재편되는데, 1963년 11월에 내각은 제국주의에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을 모토로 재편되게 된다. 이는 당시 1960년부터 시작된 이리안 자야의 독립 문제를 둘러싼 네델란드와의 외교적 갈등과 전쟁 뿐 아니라 영국으로부터 말레이시아의 독립과 관련된 국제적인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네델란드와 영국 등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로 간주하고 이미 이리안 자야에서는 네델란드와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고 칼리만탄 북부지역에서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새롭게 재편된 내각에서 경제 관련 부처는 재편과 함께 은행과 민간 자본 정비를 담당하는 새로운 부가 설치된다.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이 이 부서에 속하게 되는데,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은 이제 국책과 민간 은행 조정 장관과 민간 은행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처럼 1960-1965년 사이에 중앙 은행의 구조는 반복적인 개편과 확대 그리고 재편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반복적인 개편과 확대는 무엇보다 중앙 은행의 담당 업무가 점점 많아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각 부처 간의 협력과 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로 은행의 은행과 최후의 대출 기관으로서의 중앙 은행의 역할과 업무에 적응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셋째로 이러한 변화는 교도 민주주의 시기에 어느 분야에서나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지나친 정치 논리에 대한 조직 개편과 확대 재조정 등이라 할 수 있다.
 
 
3. 결국은 ‘하나’의 은행 (Bank Tunggal)으로
 
지속적인 중앙 은행의 조직 개편과 확대 등은 결국 1965년에 이르러 모든 국책 은행을 하나의 은행으로 통합하는 하나의 은행(Bank Tunggal)이라는 체제로 재편된다. ‘교도 경제’의 기치를 실행하기 위해 1964년에 이르면 이리안 자야를 포함한 인도네시아 전지역의 국영과 민영 은행의 대표자들이 참가하여 협동과 가족주의에 기치 아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은행권의 임무를 수행하는 기반으로써 ‘투쟁 은행(Bank Berdjoang)’의 원칙이 만들어진다. 참석자들은 은행은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는 금융 기관이 아닌 혁명을 위한 도구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달리 표현하자면 은행의 임무를 정부가 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돕는 것으로 조정한 것이다. 이를 위해 특정한 산업 부분을 지원하도록 국책 은행 간의 업무가 분담되어졌는데, 이는 각 은행의 전문화와 은행 간의 통합의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다.
 
1965년 수카르노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인도네시아 은행권은 정부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하나의 은행’으로 재편될 것을 천명하게 된다. 대통령은 이는 재무와 은행 관련 정의
시책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한 조치이며, 정부의 투쟁 계획의 성공적인 실천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라 말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계속되는 중앙 은행의 개편과 재편 확대와 함께 일반 국책 은행과 저축 은행 등이 통합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1965년 6월 국립 일반 은행, 국립 저축 은행, 국립 인도네시아 은행이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안에 통합되었다. 그러나 ‘하나의 은행’의 설립으로 만들어진 통합은 더욱더 확대되고 전체 은행을 말그대로 하나의 은행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하나의 은행’ 사업으로 국립 인도네시아 은행(Bank Negara Indonesia)이 성립된다. 이 은행은 국책 은행으로서 화폐의 발행과 유통, 중앙 은행, 그리고 일반 은행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하나의 은행의 구조에서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과 다른 국책 은행들은 각각 서로 다른 부서로써 역할을 하게 된다. 국립 인도네시아 은행은 그 각각 국책 은행들의 역할에 따라 5가지 부서로 나누어지는데,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은 제1부서의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다. 형식적으로 하나의 은행으로 통합되었지만 여전히 각각의 부서의 이름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고유의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하나의 은행’ 구조 속에서 국립 인도네시아 은행의 제 1부서로서 중앙 은행의 고유 업무인 화폐발행권과 유통에 대한 업무 이외에 국영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뿐 아니라 정부 예산 이외의 필요한 자금을 정부에 지원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하나의 은행’의 시책 안에서 중앙 은행을 포함한 모든 국책 은행은 혁명의 도구, 다시 말하면 정부의 도구로써 역할을 하도록 방향 지워졌다. 모든 은행은 정부 사업들에 자본을 보달하는 일종의 개발 은행이 되었다. 1950년대 인도네시아 민간에게 자본을 조달하던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1960년대에는 정부의 사업들에 자본을 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은행’은 계획대로 잘 이행되지는 못하였다. 예를 들면 각 국책 은행의 은행장들을, 중앙 은행에서 이사들이 되게 하고자 하였지만 실행되지 못하였다. 국립 인도네시아 은행의 제1부서로서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은 여전히 기존의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의 건물에서 본래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처럼 실제적인 통합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은 각 국책 은행에 관한 서로 다른 규정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조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실제 적용과 실행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도네시아 국내의 정치 상황의 변화, 곧 1965년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반란의 도모 실패로 인해, 교도 민주주의가 막을 내리게 되고, 인도네시아 중앙 은행은 또 한번의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면 독립적인 금융 정책이 아닌 정부의 정책을 시행하는 역할을 했던 이 시기의 인도네시아 경제는 어떠했을까? 1950년대 다수의 계획 경제가 보여주었던 그런 성과가 인도네시아에서도 나타났을까? 전혀 그렇지 않아보인다. 국민 총생산은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
 
반면에 1961년 통화량은 41%가 증가하였다. 계속해서 1962년에는 101%, 1963년에는 94%, 1964년에는 156%, 그리고 1965년에는 282%의 기록적인 통화량의 증가를 가져왔다. 거의 모든 통화량의 증가는 정부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Arndt, 1960). 급격한 통화 증가로 인한 피해는 초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나 인도네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게 된다. 인플레이션은 1961년에 95%, 1962년 156%, 1963년 129%, 1964년 133%, 1965년에는 600%에 이르게 된다(Arndt, 1960).
 
또 한번 인도네시아 정부는 1959년에 이르러 지나친 인플레이션 등을 이유로 500 루피아를 50 루피아로, 1000루피아를 100 루피아로 바꾸는 90% 액면가를 감소시키는 화폐 개혁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런 경제 지표는 당시 정치가 주도하는 경제라는 특수한 상황이 이끌어낸 종합적인 결과이다. 동시에 특별히 그 시기에 있었던 이리안 자야와 말레이시아를 둘러싼 국제적인 문제, 유엔과 국제 통화 기금의 탈퇴 등으로 인한 대외적인 문제의 영향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금융 정책이 가능성이 없었던 중앙 은행도 이러한 경제적 결과에 일정한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참고도서
Arndt, H. W., (2007) Economic policy making in Indonesia, 1950-1957, Eds by Glassbuner, B., in The Economy of Indonesia: Selected Readings, Equinox Publishing. 359-395.
Boediono, (2016), Ekonomi Indonesia: dalam lintasan sejarah, Bandung, Mizan Pustaka
History of Bank Indonesia https://www.bi.go.id/en/tentang-bi/museum/sejarah-bi/bi/Pages/historybi1.aspx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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