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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창작 클럽 (8) 전설과 함께 한 치악산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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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창작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82회 작성일 2017-10-2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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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과 함께 한 치악산 등반
 
최우호
 
 

지금 고국 땅은 단풍이 절정을 이룬 말 그대로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자카르타에서 생활하며
Tangkuban perahu에 익숙해진 나에겐 3년 만에 맛보는 반가운 가을의 정취다.
 
늦은 오후에 도착한 치악산. 에어컨 바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시원하고 상쾌한 산바람이 온몸을 휘감자 흐뭇한 내 입술에선 휘파람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붉게 물든 치악산 초입부터 구룡사까지 1KM 남짓 금소나무 길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쉴 새 없이 사진기 셔터를 눌렀다. 금소나무길 곳곳에서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사진 속에 새기려는 연인들과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저마다 사진 찍기 좋은 명당을 선점하느라 분주하고, 우리는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발걸음을 늦추다보니 안 그래도 짧아진 해가 어느새 서쪽으로 더 기울어진 듯 하다. 
 
1984년 12월 31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치악산은 원래 동악명산, 적악산으로 불렸으나, 상원사의 꿩(또는 까치)의 보은전설에 유래해 꿩치(雉)자를 써서 치악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치악산에는 유명한 절이 두 곳 있는데 바로 상원사와 구룡사이다.
 
상원사의 전설은 어렸을 때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은혜를 갚은 까치의 이야기다. 경남 의성 출신의 한 사내가 서울에 가기위해 원주시 신림면 부근을 지나던 중 커다란 구렁이가 꿩을 잡아먹으려는 것을 보고 활로 구렁이를 쏴서 꿩을 구해주고 다시 서울을 향해 가던 중 해가 저물어 한 집에 들르게 된다. 하얀 소복을 입고 그를 맞이하는 어여쁜 여인의 친절에 하룻밤 머물게 되었는데 잠을 자던 선비가 답답함을 느껴 일어났더니 커다란 구렁이가 그를 칭칭 감고 낮에 당신의 활에 목숨을 잃은 구렁이의 부인이라 밝히며 남편의 복수를 하겠다고 한다. 선비가 기지를 발휘해 꿩의 목숨도 귀하다며 반박하자, 그렇다면 동이 트기 전에 이산에 있는 절에서 종이 세 번 울리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동이 트기 전에 종이 울릴 수 없다고 판단한 나그네가 낙담하며 동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종이 세 번 울리고 구렁이는 사라졌다. 나그네가 신기하여 종이 울린 절에 가보니 종 밑에 꿩 세 마리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고 한다. 나그네는 꿩의 보은에 깊이 감명 받고 그 절을 크게 고쳐 짓고 상원사라 명명하고 꿩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적악산을 치악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오직 1300M에 달하는 정상을 목표로 치악산을 오를 땐 지명의 유래도 알려고 하지 않았었다. 오늘만큼은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무르는 곳이라는 영화의 대사를 떠올리며, 또 어렸을 때 자주 듣던 구전동화도 떠올리며 치악산의 정상 비로봉이 아닌 9마리용의 전설이 있는 구룡사로 향했다.
 
치악산은 가장 유명한 비로봉(1282M)을 비롯해 1000M를 넘는 고봉들이 장장 14KM에 달하는 산맥과 유사한 형태로 이어져 치악산맥으로 불릴 정도이며 산 곳곳에 산사와 산성들이 많아 관광객들이 ‘치악산에 왔다가 치를 떨고 간다’고 할 정도로 산세가 웅장하고 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나도 겨울에 눈 덮인 명산들을 많이 올라봤지만 아이젠이 없어서 정상 등반을 포기한 산은 치악산이 유일하다. 한라산을 제외하고 설악산, 태백산, 오대산, 함백산 등 겨울 산행에서 아이젠을 착용해본 적이 없으나 치악산 등반 때 산중턱에서 아쉬움을 달래고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 그때도 이번과 같이 구룡사 탐방로를 통해서 올랐었는데 그때의 아쉬움을 멋들어진 단풍으로라도 달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구룡사에 도착하니 산사 입구에 200년 된 단풍나무가 웅장하게 관광객들을 반겨준다. 보호수로 지정된 이 나무의 웅장함이 사진에 담기지 않아 멀리서도 찍어보고 가까이서도 찍어보다가 결국 현대 기술은 아직 한참 모자란다고 푸념을 하며 구룡사 안으로 이동했다.
 
구룡사라고 한자로 쓰인 현판을 본 여자 친구가 아홉 마리 용이 살던 곳이라고 설명하더니 왜 아홉구를 쓰지 않고 거북구를 쓰냐며 난감한 질문을 해온다. 원주에 머무르며 본인을 데려온 엉성한 가이드를 철썩 같이 믿는 눈치다. 대답을 회피하고 조금 더 걷자 구룡사의 전설이 쓰인 비석이 보였다.
 
구룡사의 전설은 이러하다. 1300년 전 구룡사의 자리는 연못이었다. 신라시대 때 의상대사가 연못에 사는 9마리의 용들과 도술대결에 승리하여 용들을 몰아내고 연못을 메워 대웅전을 짓고 구룡사를 건설했다. 구룡사의 현판은 아홉구(九)자 대신 거북구(龜)를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조선시대 때 옛 명성을 잃고 점점 쇠퇴하면서 거북이의 기운이 절을 살릴 것이라 하여 거북구로 바꾸었다고 한다.
 
전설에 대해 확실히 알기 전에 여자 친구에게 9마리의 용들이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어서 구룡사가 아닐까라고 추측을 얘기했던 터라 서로를 바라보며 두 눈만 깜빡이다가 결국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구룡사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면 이름처럼 전설속의 9마리의 용들이 꽤 중심적인 역할을 할 줄 알았는데 도술시합에서 져서 쫓겨났을 줄이야.
 
전설의 내용이 어찌 되었건 아름다운 풍경과 재밌는 전설이 함께한 치악산 단풍놀이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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