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창작 클럽 (103) 추석 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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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채비
김현숙
열 두개 방문이
일년에 한 번 꽃단장을 하였다
안마당, 바깥마당 할 것 없이
머리를 받치고 죽 드러누워
물 세례를 견디고
야무진 칼끝에 퉁퉁 불은 누더기를
때처럼 벗으며
시커먼 격자무늬 속살을 드러낸다
따가운 가을볕이
네모진 창살 구석구석을 훑자
몽당 빗자루 끝,
동동구리모 같은 풀을 바른 창호지가
이불 홑청 마냥 사뿐히 격자무늬 위로 내려앉는다
신작로 분홍 코스모스 꽃잎이
문고리 옆에 다시 꽃을 피우니
손수건만 한 창호지가 어느 새 그 위를 덮고
흰 수건 위로 꽃 자수가 선명하게 묻어난다
평생 먼지만 쓸어대던 수수 빗자루
갓 바른 창호지 위를 민망한 듯 지나가면
마침내 방 문 한 개가 끝이 난다
열 두개의 방문은 햇살조차 노곤히 지칠 때까지
코흘리개 동생의 조막손도 마다치 않고
방문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잠자리를 쫓는 누렁이만
하루 종일 지청구를 먹는다
얼음 갈라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팽팽한 연실이 바람을 가르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터지고
잔뜩 긴장한 창호지가 백지장이 되면
방문은 하나씩 제 자리로 돌아간다
익어가는 풀 냄새
활짝 물오른 코스모스는 창호지 사이로 꿈틀대는데
방문은 보름달이라도 품은 듯
밤새 하얀 빛을 낸다
추석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 후로도 한참을 어른들은 추석 채비에 바빴고
하릴없는 동생과 누렁이는 엉덩이를 실룩이며
고소한 냄새를 따라 다녔다
*** 시작 노트
추석이 다가옵니다.
마음은 벌써 내 생애 중 가장 즐거웠던 시절로 가 있습니다. 그건 그냥 추억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은
우물에서 퍼 올리는 진한 그리움입니다.
요즘은 명절을 앞두고 차례상 차리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버거워 하지만 옛날 어른들은 참 많은 것들을 준비하곤 했습니다.
집 단장부터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까지......
그 많은 것들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마음은 이미 풍요롭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먼 이국 땅에서 더구나 경기도 안 좋아 불안한 이 때, 오는 추석엔 가족 혹은 이웃들과 명절 음식과
즐거운 시간을 나누며 잠시나마 현실의 시름을 잊어보는게 어떨까요?
*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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