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창작 클럽 (100) 아침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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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산책
글과 사진 / 조연숙( 데일리인도네시아 편집장 )
사박사박. 아침햇살이 쏟아지는 나무 사이로 걸어간다. 짙은 녹색 나뭇잎과 고동색 가지 사이로 햇살이 넘쳐난다. 풀잎 위에 맺힌 이슬방울이 바람에 통통거리고 탁구공 만한 빨간 야자열매가 초록색 풀밭에서 구르기를 한다. 핑크색 바나나꽃이 커다란 나뭇잎 사이로 수줍게 보인다. 슬라맛 빠기~, 굿모닝~, 안녕하세요~.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아침인사가 공중으로 흩어진다.
몸에 딱 붙는 운동복을 입고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달리는 사람들,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부, 골든리트리버를 앞세우고 힘겹게 걷는 아주머니,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쓰르르 쓰르르 야자나무 빗자루가 아스팔트 도로를 스치는 소리와 함께 길옆으로 모이는 낙엽들, 쏴아아~~~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자동차를 덮은 하얀 거품이 씻겨내려간다. 스쳐가듯 달리는 자전거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산책로에 사람 수만큼 멍멍이도 있는 것 같다. 최근 수년 사이에 종교나 종족에 상관없이 애완견을 키우는 집이 부쩍 늘었다. 길에 개똥도 생겼다. 처음 인도네시아에 왔을 때, 길에 쓰레기는 많아도 개똥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슬람에서 개를 금기로 여겨서 전체적으로 개를 기르는 집이 별로 없어서란다. 다만 힌두교가 우세한 발리 지역이나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는 개를 볼 수 있었다. 개를 끌고 나오는 사람은 주인보다는 가사도우미인 경우가 많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애완견이지만 한국처럼 개와 주인이 친밀하게 교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점점 마당이 줄어든다. 길옆 공터에 새 집이 하나씩 세워지는데, 넓은 정원은 좁아지거나 없어지고, 주차장은 땅위에서 땅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땅값은 저렴한 반면 건설장비와 자재비가 비싸서 건물을 위로 높이는 비용보다 땅을 사서 옆으로 넓히는 비용이 저렴하다고 했는데, 이제는 아닌 것 같다. 대지에 꽉 차게 건물을 짓는다. 해가 바뀌면서 집 모양도 바뀐다.
갈증을 날려주는 담백한 야자수. 아침산책의 마지막 순서다. 2.5킬로미터가량 걸어서 도달하는 아침시장(Pasar Pagi)에는 한 푼도 안 깎아 주는 과일장수, 험상궂게 생긴 고기장수, 파리 쫓기의 달인 생선장수, 주변의 분주함과 동떨어져 보이는 잡화상 등 작지만 뭔가 있을 건 다 있다. 손님은 아침 장을 보기 위해 나온 사람들과 우리처럼 산책 나온 길에 들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오늘 먹을 만큼, 들고 갈 수 있을 만큼만 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에서 비스듬하게 쏟아지던 햇살이 없어졌고, 뜨거운 열기가 공중에 가득하다. 지지베베 시끄럽던 새들의 지저귐이 잦아들고, 딱.딱.딱. 딱다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가 들린다. 출근 시간이 지나서인지 길에 차도 줄었다. 보라색 나팔꽃과 주황색과 노란색이 섞인 헬리코니아(Heliconia), 노란색 난꽃(Anggrek), 빨간색 히비스커스(인도네시아 이름; Kembang sepatu)들이 생기를 뿜어낸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됐다.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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