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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니 문화 연구원 [제10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학생부 대상(주ASEAN 대사상) / 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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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기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604회 작성일 2019-10-0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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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학생부 대상(주ASEAN 대사상) 소설부문 
 
 
날아라 라플레시아 
 
이정원 ( Bina Bangsa School Semarang Junior College 1 )
 
 
뭐가 됐건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버리고 나면 혹시 필요해질까? 지금 버릴 때는 좋지만 나중에 필요해지면 이건 못 구하는 거니 집도 크고 아직 이사 예정도 없으니 서랍에 일단 넣어두자. 나는 방이 쓰레기통이 되어가지 않도록 조심한다. 엄마 눈에 띄지 않게 서랍에 차곡차곡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을 숨겨 놓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것들이 서랍에 들어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온 일기장, 일일수첩, 영화표나 여행 다녀온 친구들이 준 열쇠고리나 한국에서 가져온 문구용품들, 동전 지갑 양말 등등   난 왜 신지도 않는 양말을 모으는건지 나도 이해할 수 없다.  해마다 많은 것들이 추가되고 있다. 1년마다 서랍들은 다시 정리했다.
 
아빠를 따라 인도네시아에 왔지만 아빠는 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가셨다. 엄마는 나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여기 남았지만 난 안다.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좋지 않음을. 그리고 아직 이혼이라는 걸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여기서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대학을 가거나 한다면 분명히 이혼을 하실 거다. 엄마는 친가 쪽 할머니 할아버지와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으셨다. 아빠와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하셨다고 들었다. 그러나 결혼 허락을 받기도 전에 내가 생겨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경우였다. 엄마는 시집살이도 엄청 힘들게 하셨고 또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내가 나와 버려서 더 미운 털이 박힌 경우였다. 할아버지는 종종 내 앞에서 “제사 똑바로 지내줄 놈은 하나 있어야 하는데… 쯧쯧쯧 “하시며 혀를 차셨다. 아빠도 처음에는 어떻게든 부모님과 엄마의 사이를 좋게 만들려고 노력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중간자의 역할을 포기하셨다. 보통 수준은 가볍게 넘어버리는 까칠한 엄마의 성격과 서로 너무나 다른 환경으로 그 간격을 좁히기가 힘드셨을거다. 거리라도 좀 멀리 있으면 나을까 싶어 한국에서 좀 벗어나 보자고 생각해서 여기 왔는데 생각보다 아빠 사업이 잘 안되신거다.
 
난 초등학교 4학년에 인도네시아로 왔는데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하니 다시 한국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처음에 인도네시아에 와서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 영어를 많이 접해보지 않고 온 상황이라 아이들과 의사소통도 안되고 혼자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점심시간, 브레이크 시간이 너무 싫었다.  그러나 이 삼일 정도 지나고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이 나름 아이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는지 같이 먹자고 하는 아이들이 생겼고 친한 건 아니지만 숙제를 알려주고 인사하는 정도의 친구는 생겼다. 그렇다고 내 속얘기를 할 그런 정도의 친구들은 아니다.
 
여기 여자애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뭐가 그리 다들 잘났는지 본인 자랑하기만 바쁘고 SNS에 사진 올리는 데만 집중한다. 하나같이 본인은 왕자, 공주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대접받는 것에 너무나 익숙한 아이들 뿐이다. 거기다 해외 여행은 또 얼마나 자주 나가는지 나는 2년 반 동안 한번도 못 가본 한국을 무슨 본인들 친척집 방문하는 것처럼 왔다 갔다 한다. 갈 때마다 다들 나에게 한국가면 어디가 좋은지,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계속 물어보더니 3년 째가 되니 이제는 묻지 않는다. 그리고 궁금해한다. 넌 한국 사람인데 왜 한국에 가지 않느냐고? 그러게 나도 진짜 가고 싶다고. 하지만, 이런 맘을 얘기할 수도 없고. 다들 누구에게나 그들만의 사정이 있는 거란다 얘들아.
 
난 학교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손을 들고 대답을 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험을 보면 성적은 어느정도 유지한다. 몰라서 대답을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한다는 건 여러가지 유리한 점이 있으니까. 그래서 집에 오면 복습은 꼭 한다. 프로젝트 수업을 하거나 할 때 나와 하고 싶어하는 애들이 있을 정도다. 오히려 한국애들 하고는 사이가 어색하다. 그들이 보기에는 내가 이상하겠지 여자애가 춤도 못 추고 아이돌도 싫어하고,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당연히 살집이 있는 편이고 외모에 관심도 없고.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외모가 수준 미달이라 미리 포기했다고 해야 하나? ‘라플레시아 꽃’ 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꽃은 꽃인데 냄새도 괴상하고 덩치만 크고 생긴 것도 어찌 그런지 딱 나 같다. 이번생에서 외모는 포기. 애들끼리 돌아다니며 쇼핑하는 것도 싫다. 그러고 보니 내가 싫어하는 게 많았네!
 
일부 현지 애들보다 더 답 없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살고 있는 많은 한국 사람들… 여기 한국 사람들은 모든 기준이 돈 인 듯 싶다. 한국에서 평범하게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를 다녔더라면 알지 못했을 일들을 여기와서 눈치로 또는 한걸음 떨어져 있어서 알게 되고 보게 된 것들이 많다. 한국 사람들이 특히 더 싫어진 건 아빠가 한국으로 나가시고 난 이후다.
 
너네 아빠 사장이야?  뭐 만드는데? 이런건 함부로 질문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문장이 아닌데 여기 사는 한국인들은 처음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아버지 뭐 하시는지 물어봐서 집집마다 얼마나 사는지 순위를 매겨서 분류하려고 하는건지 원. 너무 예의가 없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시기 질투가 심하다고 아주머니들 얘기할 때 듣긴 했는데 여기 살다보니 한국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남 잘 되는 걸 못본다. 애가 공부를 못하면 공부 못한다고 험담, 잘하면 공부만 잘하지 싸가지가 없다고 험담한다. 돈을 펑펑 쓰면 남편이 이런데까지 와서 힘들게 번 돈을 부인이 생각없이 써버린다고 헐뜯고 돈을 아껴쓰면 나중에 죽을 때 후회한다고 인생 뭐 있냐고 여행도 다니고 명품도 사고 좀 꾸미고 먹고 싶은 거 먹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업이 잘 되면 좋겠다고 부러워하면 될텐데 세금 왕창 맞지 않게 조심하라느니 한국으로 돈을 미리 보내 놔야 한다느니. 참 어이가 없다. 꽃게들이 한 통에 넣어 놓으면 밖으로 나가려는 다른 꽃게들을 끄집어 내린다는데 전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우리 아빠처럼 잘 안돼서 한국으로 가신 경우에는 더 심하다. 골프나 치고 직원들에게 회사일 맡겨 놓으니 잘될 리가 없다느니, 왜 같이 안 따라가고 여기 남았냐느니 개인적인 질문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신다. 그때마다 엄마는 내 핑계를 대며 얘 지금 한국가면 이것도 저것도 안돼서 힘들다고 여기서 아직은 잘하고 있으니 졸업하고 들어갈 거라고 매번 같은 답으로 입막음을 하신다. 그러냐고 잘했다고 애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지 라고 말씀하셨던 아주머니들. 우리집 대문을 나가시자 마자 무슨 부귀 영화를 보겠다고 그것도 딸 키워서 … 에휴 나중에 뒤통수나 맞지 말아야 할 텐데. 서로 흐뭇한(?) 표정으로 (왜냐하면 심심하던 일상에 씹을 가십거리가 생긴게 기뻐서?) 걱정 아닌 걱정을 하시며 가셨다.
 
난 엄마도, 아빠도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아빠를 따라가지 않고 여기 남은 건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째는 물론 엄마 때문이다. 내가 간다고 하면 엄마 입장이 곤란해지니까. 엄마도 엄마의 미래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시니까. 둘째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 때문이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한번도 쓰지 않을 것들을왜 이렇게 많이 과목으로 정해서 애들을 괴롭히는지. 아이들에게 과목 선택권과 선생님 선택권을 준다면 좋을텐데.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한국으로 가도 딱히 좋을 게 없어서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게 그렇게 싫지 않다. 지금 한국을 가도 친구들을 사귀는 건 어려울 듯 싶다. 초등학교 때 부터 친해온 애들끼리 중학교까지 이어지는 게 다반사기도 하고 여자 아이들은 특히 오래된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앞으로 인도네시아에 있을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졸업할 때까지 라고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런걸까? 어느 책에서 봤는데 기간이 한정되면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암 환자들은 어떻게 보면 축복이라고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어서. 말되는거 같다. 나도 어떻게 어디서 살지는 모르지만 현재에 집중하고 싶다.
 
책을 보다 보니 잘 죽기 위해서도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했다. 난 멋있게 죽어야 하므로 죽기 전까지 내자신의 수준을 상당히 많이 올려놓고 싶다. 뭔가 학술적으로 멋진 발견이나 논문이라도 쓴다면 금상첨화 일텐데. 그렇다면 대학을 가야하나? 대학을 가야 공부다운 공부도 하고 멋진 남자를 만나 연애도 하고. 그러나 절대 결혼은 하지 않을 거다. 나의 DNA를 후대로 전하는 도구는 되지 않을 거니까. 도킨스는 너무 냉정하다. 그래도 생긴 게 멋있어서 봐준다.
 
학교 시험이 끝나고 애들은 다들 여행을 가는데 난 갈 데가 없다.  집에 있는 게 딱히 싫은 건 아닌데 상대적 박탈감이랄까? 어디라도 가고 싶은데….
스마랑 (SEMARANG)기차역에서 솔로(SOLO)가는 기차를 탔다. 무작정. 기차는 3시간 정도를 달렸다. 앞 뒤가 서로 마주보게 배치되어 있는 좌석은 등받이가 90도라 불편했지만 사람들 구경하기는 좋았다. 창가에서 지나가는 풍경은 별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사람 구경이 훨씬 재밌다. 애기들은 어느 나라던지 귀엽다. 작은 애기를 안고 있는 엄마가 나보다 어려 보인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여긴 일찍 결혼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솔로 기차역은 스마랑 보다 훨씬 깨끗하고 멋진 듯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딱히 갈데도 없고 팝미(POP MI)를 하나 먹고 아무데나 가보자 싶어 버스를 탔다. 행선지가 딱히 없어 경치만 보고 가는데 옆에 히잡 쓴 언니가 말을 건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웃는다.  오 코레아. 어디 가냐고 해서 갈 데가 없는데 스마랑 돌아가는 기차가 내일 새벽이라 버스를 알아보려 한다고 하자, 본인 집에 가서 하루 자고 가라고 한다. 정말? 그래도 돼?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고, 언니를 따라 무조건 버스에서 내렸다.  인신매매일 수도 있지만 뭐 나 팔아봤자 얼마나 나온다고 싶기도 하고. 집을 떠나 모험을 한다는 기분이랄까? 책에 나오는 주인공이 된 거 같아 기분이 꽤 좋았다. 커다란 몰 뒤에 본인이 사는 꼬스(kos)가 있다고 했다. 부모님은 족자에 산다고 하며 솔로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했다. 졸업하면 초등학생을 가르친단다. 좋겠다. 뭔가 할 일을 정했다는게. 난 뭘해야 할지 아직 뒤죽박죽인데… 대학생 언니랑 꼬스에서 들어 가기 전에 포장마차 같은데서 대충 저녁을 때웠다. 소또랑 토끼고기 사떼도 엄청 먹었다. 인도네시아 음식이 의외로 맛있는 게 많다.
 
방에 들어가 히잡을 벗은 언니의 머리는 검은 흑발에 어깨를 넘는 완전 공주 머리였다. 이쁘게 파마까지했는데 이렇게 예쁜 머리를 왜 히잡을 쓰는거야?  음~~ 글쎄 어렸을 때 부터 써온 거라… 그렇구나 날씨도 더운데 왜 머리에 히잡을. 히잡을 써도 그렇게 덥지는 않다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히잡의 좋은 점은 일단 얼굴이 작아 보이고 계란형으로 보인다는 것이 아닐까? 히잡을 쓰니 미용실 갈 필요는 없을 듯 싶은데 또 파마는 하고 남보다 본인의 만족으로 하는건가? 의문점이 점점 늘어난다.
 
잠시 후 언니는 기도 시간인데 기도를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내가 나가 있어야 하나 아님 그냥 방에 있어도 되나 물었더니 내 맘대로 하란다. 난 기도하는걸 보고 싶다고 했다. 하얀 천으로 머리 부터 발 끝까지 온 몸을 덮고 한 쪽 방향을 향해 연신 기도를 하며 절을 했다. 기도가 끝나고 언니에게 물었다. 뭘 위해 기도하는거야? 뭔가 바라는게 있어? 언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냥 살아있기에 하는 거란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것. 여기에 태어나 살고 있음에 감사하는거란다. 뭘 해달라고 들어달라고 기도하지는 않는 단다. 갑자기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꽤 괜찮은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내가 살아있는 게 그렇게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게 아닌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나 하고 불평만 했는데 약간 반성이 되었다.
 
언니와 우주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우린 우주에서 보면 티끌 같은 존재라고. 그런 티끌이 만날 수 있는 건 범 우주적으로 우리가 하나로 연결된 존재일거라고. 버스에서 뭔가 느낌이 왔다고 했다.  와우! 이건 뭐지? 그런데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다. 밤새 잠을 안 자고 우린 수다를 떨었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언니도 스마랑에 한번 놀러 오겠다고 언니 친구들도 많이 있다고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언니는 다시 기도를 하고 난 기차역까지 택시를 타고 다시 기차를 타고 스마랑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정말 우린 우주에서 보면 하나로 연결된 존재일까? 외계에 인간보다 더 과학 문명이 발달한 생명체가 있을까?  갑자기 우주를 가보고 싶어진다. 죽기 전에 할 일이 한가지 더 생겼다.
 
친구들과 여행 어땠냐고 물으시는 엄마에게 재밌었다고 하고 난 다시 서랍에 기차표와 대학생 언니가 준 그림카드를 깊숙이 정리한다. 다시 일상의 시작이다. 루틴으로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이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나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살집이 있고 외모가 조금 떨어지는 High School 학생이다. 못생긴 ‘라플레시아’가 조금씩 꽃 피워 한달 동안 커다란 꽃을 피우듯 나도 나중에 ‘라플레시아’ 처럼 큰 꽃을 피우기 위해 인도네시아에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평범한 학생이다.
 
 
[학생부 대상 이정원 수상 소감
 
 
“축하합니다.” 라는 수상 소식을 듣기 전까지 이 소설은 제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저만의 놀이방이었습니다. 혼자만의 놀이방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합니다. 
 
다른 식물에 기생해서 산다는 열대의 꽃 “라플레시아”. 인도네시아에서 버티고 살아야만 하는 덩치도 크고 이쁘지도 않은 그 친구(소설 주인공)는 본인을 “라플레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겉은 평범하지만 깊은 속마음과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그 친구에게 점점 매력을 느꼈습니다. 많은 것이 다르지만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며 서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인생과 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큰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고 올해로 10회를 맞이한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에 이름이 오를 수 있다는 것에 환희를 느낍니다. 이 상을 제 글쓰기의 원동력으로 삼아 더 재미있고 유익한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또 저의 소설을 뽑아 주신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담당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상 받는 것을 누구보다 기뻐해 주실 저의 부모님께 사랑하고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형, 항상 사랑하고 응원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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