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니 문화 연구원 [제14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청소년부 대상] 삶의 끝에서 발견한 새로운 시작 /강동진
페이지 정보
본문
제14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청소년부 대상- 주ASEAN 대한민국대표부 대사상
[여행수필] 삶의 끝에서 발견한 새로운 시작
Awal Baru yang ditemukan di Ujung Kehidupan
강동진 (Springfield School - Raffles Hills Campus, 11학년)
“거기가 어디야? 들어는 봤는데.. 글쎄”
“뭐 굳이 그런 곳까지 가려고...”
토라자로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했던 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10년 이상을 산 친구들도 어디에 있는지조차 잘 떠올리지 못하는 곳, 토라자. 그곳으로의 출발은 정말이지 험난하다 못해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어느새 고난으로, 고난은 또다시 충격으로, 그리고 그 충격은 새로운 생각으로....
토라자로 가기 위한 출발점인 마카사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사기를 당했다. 마카사르 공항에서 토라자로 가기 위한 슬리핑버스를 예약했는데 오지 않았고, 바리바리 싼 짐들과 한국에서 온 사촌 동생까지 주렁주렁 달고 우리 가족은 공항 앞에 버려졌다. 내가 아는 인도네시아인들은 늘 웃음을 머금고 친절이 배인듯한 모습만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 속에 있던 나는 도착하자마자 길바닥에서 버려진 상황이 너무 화가 나면서도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부모님이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공항 앞에 경찰서를 찾아가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너는 자카르타에서 왔으니 거기서 해결해’라는 말은 곧 그냥 참고 넘기라는 말과 같았으니…
“모든 ‘얻음’에는 비용이 필요하다”라고 서로를 다독이며 공항 앞 냄새나는 호텔에서 1박을 하고 새벽에 버스를 타고 토라자로 향했다. 마카사르에서 100킬로정도 남짓되는 거리. 우리나라였으면 3시간이면 될 거리였지만 열악한 도로 탓에 장작 10시간을 걸려 어둑해서야 토자라에 도착했다. 자도자도 숲속인 도로를 지나.
인도네시아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다큐멘터리에서 본 토라자. 어찌보면 우리 가족을 이곳으로 이끈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인도네시아에는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부족들이 참 많다. 그 중에서도 토라자는 깊은 산 속에 둘러싸여 물리적 접촉이 힘든 그야말로 독특한 부족이었다. ‘토라자’라는 말의 뜻도 ‘높은 곳의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 장면 가운데에 와 있는 내 모습이 정말 비현실적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었다.
토라자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남부 고산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그들만의 역사와 전통이 아직까지 너무나 잘 보존되고 있는 도시이다. 대부분이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르게 토라자 주민의 대부분은 기독교 신자이며, 심지어 그들의 고유 언어마저 가지고 있어, 토라자에 방문했을 당시 인도네시아 말도 영어도 잘 통하지 않았다.
도시에 처음 도착한 인상은 도시 자체가 그야말로 큰 무덤 같았다. 어디를 가도 무덤이었다. ‘론다 고대 묘지’, ‘깔림 부앙 보리 무덤 단지’ 그리고 토라자에서 가장 유명한 ‘께떼 께슈’ 등 모든 관광지가 무덤이었고 심지어 무덤이라고 해서 관이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돌 틈에, 나무 틈에, 동굴안에 그냥 관을 얻어 놓는 정도였다. 그 관들은 시간이 지나 썪어 해골이 드러나고 그 해골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아무렇게나 그렇게 놓여 있었다.
무덤을 계속 돌아다니다 보니 삶과 죽음, 그리고 자연은 그냥 하나였다. 여행 내내 내가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정의했던 '죽음'이라는 뜻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죽음은 두렵고 힘들고 슬픈 것이었는데, 토라자에 있는 내내 여기 저기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는 무덤과 해골 등은 그냥 죽음마저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게 만들었다.
토라자는 특히 독특한 장례 문화로 유명하다. 사실 우리 가족이 토라자를 방문한 이유도 믿기지 않겠지만 이 장례식(Rambu Solo’)을 보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부족과 나라에서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화장을 하거나 땅에 매장을 하지만 토라자는 달랐다.
토라자 사람들은 죽음을 삶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래서 토라자에선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바로 장례를 치르지 않고 죽은 사람을 방부처리(미라화)하여 장례 비용이 모일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모인 장례 비용으로 최대한 많은 물소를 구매한다. 이는 2-3년 이상이 걸릴 만큼 오래 걸리기도 하다고 한다. 내가 토라자를 방문했을 당시는 코로나가 끝난 2년이 지난 시점이었으나 코로나가 유행했을 당시 세상을 떠난 사람의 장례를 그제서야 치르기도 할 정도로 토라자 사람들은 이 전통을 매우 엄중히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를 지키며 사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는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마침 장례식(코로나로 사망한지 2년이 지난 사람의 장례)을 치르는 날이라 가이드를 통해 장례식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장례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물론 우리 같은 외국인들도 흔쾌히 출입을 허락했다. 우리는 한국인을 좋아하는 돌아가신 분의 딸에게 고맙게도 차와 전통 음식도 대접받으며 그들의 장례식을 함께 했다.
먼저 그 마을의 대장이 작은 의식을 치르고 지금까지 돈을 모아 구매한 여러 마리의 물소들을 넓은 공터에서 도축시킨다. 물소는 죽은 사람이 저승에 가는 것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물소의 구매는 매우 중요한 장례의 한 요소였다. 그리고 도축된 물소 머리는 토라자의 전통가옥인, 배를 얹은 듯한 독특한 지붕 형태를 닮은 ‘똥꼬난(Tongkonan)’에 매달아 두는데, 머리의 수가 많을수록 가문의 위세와 자부심을 상징한다.
물소를 포함하여 돼지, 염소 등도 함께 잡기도 하며 도축된 가축들은 장례 주최자가 방문객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고기를 나누어 주고, 가죽은 다시 판매한다고 한다.
하지만, 장례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라화된 시체를 관에 넣고 절벽이나 바위틈에 관과 비슷한 크기의 구멍을 내어 관을 보관해 두었다가 보관된 미라는 유족들에 의해 2년의 주기로 세상 밖으로 다시 나와 그들의 고향 마을을 산책하듯이 돈다고 한다. 이는 ‘마네네(Ma’nene)’라고 불리는 사후 추모 의식으로, 토라자의 전통적인 축제 중 하나이다. 죽은 이의 영혼은 신체를 떠났지만 완전히 사라진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가족과 함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이 의식은 가문의 번영과 안전, 그리고 결속과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의미로 진행된다. ‘마네네’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모이지만,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아직 한 달 정도(보통 8월 말경에 열림)가 남아 있어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사실 나에게 토라자의 장례식(Rambu Solo’)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 황소보다 더 큰 소들의 목 아래부분(경동맥)을 그들의 전통칼로 한번에 내려치고 나면 소의 목 아래 부분에서는 엄청난 피가 쏟아져 내린다. 어떤 소는 칼을 맞고도 가만히 있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또 다른 소는 장례식장을 마구 뛰어다니다가 맥없이 쓰러지기도 했다.
눈 앞에서 20여 마리의 물소들이 도축되어 쓰러지는 장면은 한동안 기억에 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그 쓰러진 사체 옆에서 해맑게 웃으며 죽은 소들의 부속물을 줍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 오랜만에 만난 듯 너무나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마을 사람들은 내가 알던 장례식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런 장면들이 너무 어색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죽음에 고정관념과 같은 너무 강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라온 문화와 비교해보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면, 토라자의 문화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연한 삶의 일부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방식은 분명히 차이가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사랑하는 가족을 기리고, 잊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이라는 의식을 통해 가족과 공동체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것. 혼란스러웠으나 우리 가족은 여행 내내 죽음의 의미,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차이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던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또 인정하고 있었다.
토라자 여행을 하기 전과 후는 많이 달랐다. 도착하자마자 사기를 당해서 내내 화가 나 있다가 죽음이라는 나에게는 꽤나 거대한 물음 앞에서 우리 가족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숙연해지고 차분해져 갔다. 생각해 보면 인도네시아에서 지냈던 3년은 내게 정말 좋은 기회였다.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고 너무나 다양한 문화, 그리고 그들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법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좋은 기회였다. 물론 부모님을 따라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들의 방식이나 태도가 답답하고 힘들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순간들마저도 ‘그들다운 모습’이라 여겨져 어디를 가든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인도네시아에 오기 전에는 ‘다양성’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가볍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곳에서 접했던 수많은 언어와 민족, 종교 그리고 여기서 만난 사람들에게 듣고 경험한 여러 이색적인 문화들을 접하며, 이전에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였던 다양성과 그 안에서의 공존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번 토라자 여행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특별한 경험을 통해, ‘다양성’뿐 아니라 우리 가족과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이 세상에는 수없이 다양한 삶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나는 한국인으로서, 또 나만의 성격과 장점을 지닌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분명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지금 이곳에서의 시간들은 오래도록 의미 있는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일 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토라자에서 본 장면들이 보았던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누군가의 장례식, 다양한 형태의 무덤들, 위풍당당했던 ‘똥꼬난’, 그리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적막한 풍경까지. 가는 길은 너무 험해서 지치고 특별히 유명한 음식도 없고 그 흔한 ‘맥도날드’ 하나 없는 진짜 시골이었지만, 토라자 여행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부모님은 그때 토라자에서 마신 ‘토라자 커피’가 인생 커피라며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 어른이 되어 다시 토라자를 찾아, 부모님처럼 나만의 인생 커피를 맛보고 싶다.
********
수상소감/강동진
한인니문화연구원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을 준비하며 ‘토라자’뿐 아니라, 지금까지 여행했던 많은 장소들과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년 동안 여러 곳을 여행하며 경험하고 배웠던 소중한 기억들과 그때의 감정을 잊고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공모전은 그런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낯선 곳을 다니며 인도네시아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어울리는 법도 배웠습니다. 이런 값진 경험의 기회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생각과 특별한 기억들을 한인니문화연구원 문학상이란 무대에서 나눌 수 있어 감사하며,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배움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 다음글[제14회 인도네시아이야기 일반부 대상] 까시 이야기/ Kisah Kassi / 조은아 25.11.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