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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니 문화 연구원 [칼럼] 식민 지배의 발판이 되어준 ONRUST 온러스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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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역사 연구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976회 작성일 2023-02-20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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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 지배의 발판이 되어준 ONRUST 온러스트


조은아 /한인니문화연구원 자카르타역사연구팀장


바타비아의 해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자카르타의 북부 해안은 ‘뿔라우 스리부’ ‘천 개의 섬’(Thousand Islands)이라 불릴 만큼 많은 섬들이 모여 있다. 


마리나 안쫄에서 보트로 30여 분이면 그 수많은 섬들 중, 가장 가까운 몇 개의 섬들 중 하나 온러스트(Onrust)에 다다르게 된다. 


온러스트는 까빨섬(Pulau kapal)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17세기 이전에는 순다항의 Pasar Ikan으로의 신선한 수산물 공급처 역할을 하기도 했던 곳이다. 


17세기 이후 네덜란드 선박이 자주 방문하면서 온러스트의 평화로웠던 일상도, 섬의 운명도 바뀌게 된다. 그리고 350여 년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지배 그 첫발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다. 

 496a0dcdceb9ccebe1b09609c91435a3_1676909373_109.jpg▲ 온러스트 전경


자야카르타만(Teluk Jayakarta, 지금의 자카르타만 Jakarta Bay)은 반원 모양으로 서쪽 해변은 반튼에 남쪽 해변은 자카르타에 닿아있다. 또한 얕고 거친 파도가 없어서 해안에서 쪽배로도 갈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이 섬들은 고대 반튼(Banten)왕가의 휴양지이자 안식처였다. 평화로웠던 이 섬들에 외세의 배들이 드나들기 시작하고, 순다 왕국의 항구였던 순다끌라빠에 자야카르타라는 나라가 건국되면서 이 섬들은 반튼과 자야카르타 둘 사이의 첨예한 대립각 사이에 끼고 만다. 


반튼은 당연히 단 한번도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Onrust, Kelor, Sakit(현 Bidadari), Cipir 등의 섬들을, 자야카르타는 자신의 도시 앞 바다에 있으므로 자신들 소유라 생각했다. 


이 틈으로 VOC(네덜란드동인도회사)가 비집고 들어선다. 반튼도 자야카르타도 ‘이것은 내 땅이다’라고 쟁탈전을 벌여 승리를 하지 않는 이상, 이 섬들은 양 쪽 누구 한쪽에게서든 정박 허가를 받으면 그뿐이었다. 


1596년 네덜란드의 배가 처음 자야카르타에 당도했을 무렵의 자야카르타는 고작 300여 가구가 녹지대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배들은 부정기적으로 들러 식량과 아락(arak,쌀로 빚은 술)을 구입하기 위해 자야카르타 항구에 들리게 되는데 교역이 잦아지자 VOC는 이곳을 거점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VOC는 자신들이 사가지고 갈 물건들을 쌓아둘 창고 건축 허가를 미끼로 하기로 한다. 


VOC(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반튼에 먼저 낚시줄을 던졌다. 반튼은 흑심 가득한 외세가 원하는 것을 내줄 이유가 없었다. 


VOC는 자야카르타로 돌아선다. 1610년 11월, VOC의 L헤르밋(L. Hermit)은 반튼을 견제하던 자야카르타의 왕자에게 1,200real을 지불하고 목재 건축 허가와 벌목, 목재 운송 허락을 받아낸다. 


또한 동남아와 유럽으로의 긴 항해 후 장기간 머무르는 배들을 수리하고 보수한다는 명목으로 온러스트 섬 사용 승인을 얻는다. 


자야카르타 왕자의 입장에선 온러스트에 VOC의 창고를 짓는 것은 반튼에게 대놓고 ‘온러스트 섬은 우리 것’이라는 소유권 주장의 표시이기도 했다. 


1613년 온러스트는 VOC에 의해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고 1615년 작은 배 수리소와 창고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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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rust island by ABraham Storck, 1699

소탐대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큰 후회를 낳게 되는지 당시 자야카르타 왕자는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온러스트를 내어 준 것은 결국 VOC에 자야카르타를 정복할 수 있도록 대문을 열어준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자신들의 함대를 정비하고 보급품을 쌓아두고 VOC는 그렇게 차근차근 자야카르타를 집어 삼킬 야욕을 현실로 옮길 준비를 온러스트에서 시작한다. 


인도네시아로 파견된 VOC 4대 총독 얀 코엔 (Jan Pieterzoon Coen,쿤 총독)은 자야카르타를 VOC의 식민지로 만들 야심으로 배 수리소와 조선소 이외 식민지에서 실어나를 전리품과 보급품 등을 쌓아둘 창고, 선원들의 숙소, 병원 등등을 건축하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믿을 만한 중국인 가족을 온러스트에 상주시켜 관리 감독하도록 하기도 했다. 오랜 항해한 후 자바해로 돌아온 선박들을 몇 개월 동안 관리하고 도킹과 수리를 해야 했다. 병원을 지어 병든 선원들도 돌보고 그들을 위한 숙소도 필요했다.


1618년, 반튼과 손 잡은 토마스 데일의 영국 함대가 섬 주위에 자주 등장하자 VOC는 외부 세력으로 부터 자야카르타를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이번에는 함대를 집결 시킨다. 


반튼은 VOC를 견제할 목적으로 영국과 손 잡았지만 이것 또한 VOC로 하여금 온러스트에 병사를 집결시키고 무기를 설치할 아주 좋은 핑계를 주게 된 셈이었다. 


이 핑계를 놓칠 수 없었던 VOC는 선박을 수리하는 동안 그들의 재산인 배들과 그 안의 화물을 보호한다며 포대를 설치하고 포병을 배치한다. 무기를 쌓아두고 전쟁을 준비한다.


쿤 총독은 자신들의 야욕의 방향으로 움직여주는 반튼과 영국 세력에 감사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로써 VOD의 선박들은 언제든 자야카르타 해변으로 달려가 전쟁할 수 있도록 온러스트를 요새화하게 된다. 


1619년 쿤 총독은 자야카르타를 보호해 주기 위해 정박해 있던 것으로 꾸며온 온러스트에 쌓아둔 무기와 포탄으로 결국 자야카르타를 ‘바타비아’로 자신의 무릎 아래 놓게 된다. 온러스트는 바타비아로 가는 길목이자 보급로였다. 


큰 함선은 바타비아의 해안에 직접 배를 댈 수 없었으니 온러스트는 바타비아가 훤히 보이는 가까운 거리에서 작은 배로 이동도 편했고, 바타비아로 들어가는 모든 배를 감시할 수 있었다. 배의 정박, 보관, 수리 및 선원들의 병원과 숙소까지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어 놓았으니 어찌보면 이 곳이 바타비아의 최전선이었으리라. 호시탐탐 바타비아를 노렸던 다른 약탈자을 방어하기에도 온러스트는 바타비아의 성벽보다 최적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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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러스트 자카르타만 by G.van Keulen1728


1728년 G.van Keulen의 자카르타 앞바다 지도를 보면, (이미 쿤 총독이 자야카르타를 점령한지 100여년이 지난 후에 만들어진 지도이지만) 당시의 온러스트의 입지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다. 


지도는 지금의 딴중 빠시르 해안(Tanjung Pasir Beach, 지금의 수까르노핫타 국제공항의 북쪽)에서부터 안쫄(Ancol) 까지의 자카르타 만(Jakarta Bay)의 모습을 바다의 깊이, 모래톱과 산호초들이 위치, 배의 이동 경로까지 상세히 표현하고 있다. 


그 지도에서 볼 수 있듯, 자카르타 만은 육지 가까이 넓은 부분에 걸쳐 모래톱이 형성되어 있어 대형 선박이 직접 배를 댈 수 있는 부분은 바타비아의 이깐 빠사르가 최적이었다. 


그 부분에 포대와 경비선들이 집중 포진되어 있고, 일반 선박은 그곳에서 작은 배로 물건과 사람을 옮겨 바타비아로 연결된 수로를 따라 시내로 이동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바타비아의 이깐 빠사르는 바타비아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바닷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온러스트Onrust, 찌비르Cipir(예전 Kulper섬), 비다다리(Bidadari) 등의 섬들이 자카르타 만의 대문지기 역할이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계급 사회는 그곳에도 존재했다

1699년 당시의 온러스트의 상황을 보여주는 모형이 지금도 자카르타 해양박물관에 있다. 


이 섬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다. (지금은 허물어져 그 기초만은 볼 수 있다). 3개의 기중기, 풍차를 이용한 2개의 제재소, 화약 저장소, 선박 수리에 필요한 목재 보관소 등과 일본산 구리, 초석 및 주석과 같은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지역을 위한 화물들이 특수 창고에 저장, 관리되었다. 150여 명의 VOC 용역들과 200여 명의 노예들이 그곳에서 일했다. 


온러스트의 조선소는 기술적인 면에서 잘 갖추어져 있었다. 영국, 유럽, 중국 뿐 아니라 이 곳을 지나는 각국의 함선과 선박들이 이곳에서 수리/정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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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박물관의 온러스트 모형


시간이 흘러 온러스트의 모든 시스템이 자리를 잡아가고 자야카르타는 바타비아가 되고 온러스트섬은 더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온러스트에 거주하는 기술자들과 지배자들은 육지의 고위 관리들이 그러했듯 하층 노동자들을 많은 사적인 사업에 이용했다. 


네덜란드에서 꽤 자주 수입해야 하는 고가의 재료, 예비 부품 및 도구의 상당량이 시장에서 재판매되어 공무원들의 주머니를 채웠다. 


그 예로 온러스트의 책임자였던 Baas Cornelins Willemsz de Vogel은 1737년에 60,000 플로린을 네덜란드로 송금했지만 그의 급여는 한달에 130플로린에 불과했다. 단순 유추 만으로도 가늠할 수 있는 이러한 종류의 절도는 바타비아에선 일반적이었고 이후 자카르타가 된 이후에도 계승되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임스 쿡 선장은 온러스트의 배 목수들을 ‘동양 최고의 유능한 공예가’라고 칭송했다. 온러스트의 목수들은 1770년 세계 일주를 하던 중 온러스트에 머물렀던 제임스 쿡 선장의 배 Endeavor를 완벽하고 훌륭하게 수리 작업을 수행했다.


18세기 중반 이 작은 섬에는 목수, 대장장이, 돛 제작자, 풍차 기술자 등 200여 명의 VOC가 고용한 인력들이 일했다. 그들은 보통 5년 계약을 체결하고 온 전문 기술자들이었다. 다른 일용직 노동자, 노예들도 바타비아에서 매일 도착했다. 근처 찌삐르Cipir섬에 고용된 사람들도 온러스트에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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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러스트에 복원되어 있는 풍차 


또한 VOC 소유의 약 300여 명의 노예(여성과 어린이도 포함된)와 도주한 선원, 강제 노동을 선고 받고 사슬에 묶여 일하는 범죄자들도 있었다. 


500여 명의 단순 고용직 인력들은 기술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다. 그들은 그 작은 마을에서 주인을 위해 이익을 내야 했다. 노예들 중 속련공들은 좋은 대우를 받기는 했지만 누구도 자유롭게 바타비아에 나갈 수 없었다. 보통은 6개월에 한 번 3일 정도의 자카르타 휴가를 허락 받았는데 월급의 대부분을 3일 휴가에 다 썼다고도 전해진다. 


반면, 온러스트의 사람들은 부지런히 열심히 일해야 했다. 그들의 숙소는 늘 붐볐다. 노예와 범죄자들은 더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 

- 다음 편에 계속


5b4219fa945f1f5badde598507c8dcf2_1676909593_8107.jpg ▲하지 검역소 시절 공동 식당으로 쓰였던 건물 - 온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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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러스트에 남아있는 묘지들

 5b4219fa945f1f5badde598507c8dcf2_1676909634_1297.jpg ▲온러스트에 남아있는 1800년대 병원


참고문헌

Historical Sites of Jakarta / A. Heuken SJ

Onrust; Saksi Pertumpahan Darah dalam Berbagai Rangkaian Sejarah / Kompasiana.com

Batavia – Onrust Island / Spiceislandsblog

서부 자바의 오래된 정원 / 사공경

Pulau Onrust / https://encyclopedia.jakarta-tourism.go.id


< 풍운의 섬 ‘온러스트’ -2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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