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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니 문화 연구원 [제10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최우수상 (재인니 재인니한인회장상) / 홍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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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기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447회 작성일 2019-11-0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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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최우수상 (재인니 재인니한인회장상)
 
오랜 시간 흘러서 만난 오늘
       
홍윤경 (Pleats Kora Indonesia 대표)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때론 시행착오 속에서 아파하고, 때론 일상이 주는 소소함에 만족하면서 나는 내 날들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내 삶의 날들은 몇 가지 키워드로 남아 나의 일상 속에서 늘 함께한다. 그 키워드는 내 삶의 시행착오를 통한 깨달음의 단어들이기도 하다. 소소한 일상, 마음 속의 가족, 들뜨지 않은 온유함, 함께 하는 사람들, 그리고 살아 있는 역사. 이 단어들을 내 삶의 단어로 만나기까지 나는 여기 저기 이 나라 저 나라를 참 많이도 흘러 다녔다. 어느 나라를 가든 난 그곳의 사람들과 역사에 먼저 눈을 열고,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나에게 역사란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이니까. 그래서인지 나는 어느 나라를 잠깐 출장을 가든, 한가한 여행을 하던 지금 내 발이 딛고 있는 이 나라에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박물관을 먼저 찾아가 만난다. 지금은 화석처럼 박물관 한 자리에 우두커니 소리 없이 남아 있지만 옛 그림들과 조형물들 그리고 옛 사람들이 애지중지 사용하다 간 물건들이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들은 나에겐 흥미롭고 즐거움으로 가는 통로들이다. 그리고 현재 이곳에 남아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반드시 연결되는 질긴 고리들을 그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박물관에는 모든 개개의 사람의 이야기와 그 역사의 향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오래전 만들어 갔던 이야기와 아직 만들어 가야 할 이야기는 오늘도 유유히 흘러간다.
 
인도네시아는 내가 살아가는 6번째의 나라이면서 가장 사랑하는 나라이다. 처음부터 인도네시아가 이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한 3년 즈음 살고 난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지쳐있었다. 일상을 벗어나지 못한 어느 평범한 날의 하늘이었다. 시끄러운 시장 통에서 장사꾼들이 외치는 소리. 질긴 더위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급히 다른 목적지로 가기 위해 탄 바자이의 소음 속에서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었다. 양 쪽 길 가로수 사이로 들어온 그 하늘은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깨달은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뱉은 한 마디. 아 행복하다. (그 시절 내 상황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행복의 기준과는 아주 동떨어진 그런 상황이었다) 놀라웠다. 행복하다니. 열대우림의 나뭇가지들 사이로 갑자기 내린 반가운 소나기처럼 행복은 그렇게 내게 엄습해왔고, 인도네시아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이제는 사랑하는 제 2의 모국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네시아가 따스함으로 다가오니 내 눈을 돌려 인도네시아를 다시 볼 수 있었고, 그 때부터 난 인도네시아의 박물관이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소를 찾아 쉼을 가지게 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열고 보니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장르의 재미있는 박물관들이 있고, 마음을 울리는 여러 곳의 문화적인 장소가 있었다. 그곳들은 여기저기 사람 안에 스미고 흘러서 가만가만 그들의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적도의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8월의 어느 날 한인니문화연구원에서 개최하는 문화탐방으로 인도네시아 국립갤러리 박물관을 찾았다. 그곳에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를 관통해 흐르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고 또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작가들이 그들의 삶을 오롯이 화폭에 담으며 많은 얘기들을 남기고 또 남겼다. 그들이 들려주고 싶어 하는 이야기들이 한 폭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간절히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을 원했던 작가 수조요노 (S. Sudjojono). 그는 조국의 앞날을 아프게 희망하며 그의 마음만큼이나 크고 웅장한 화폭 가득 그가 그토록 원하는 조국의 미래를 담았다. 두 소년이 저 멀리 인도네시아 조국의 산천을 바라보고 있다. 작가의 섬세함과 열망은 그 두 소년의 눈빛과 어깨 그리고 손에 반영되어 인도네시아의 자립과 번영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 속의 두 소년들이 두런두런 주고받는 얘기가 들리는 듯하다.
 
 
“ 형 우리나라는 이제 어디로 갈까?
“ 음… 우리나라는 우리가 늘 꿈꾸어 왔던 대로 서로 나눠주고 함께 행복한 그런 나라로 나아갈 거야”
 
너무나 큰 화폭이라 그 거리만큼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들리는 이야기를 뒤로하고 발길을 옮기니 재미있는 그림 세 점이 내 시선을 왼쪽 오른쪽을 바쁘게 움직이게 한다. 세 작가의 작품을 한 주제에 담아 40년대 50년대 60년대의 인도네시아 경제발전상을 나타내는 그림 세 점. 배치도 재미있지만 그림이 남겨주는 여운이 인상에 남는다. 재래시장을 모티브로 그들 작가는 그 시대상을 너무나 처연하게 그려냈다.

1940년대 아직은 네덜란드 식민지배 하에서 인도네시아 여인들의 고단한 삶이 드러난다. 어두운 색들이 저마다 한숨소리인 듯 신음소리인 듯 흘러 다니고 그림의 여백이 마치 나에겐 그들의 텅 빈 일상을 드러내는 듯했지만 시간은 흐르고 삶의 길은 소리 없이 이어져 60년대의 여인들은 웃고 있다. 그들의 옷차림은 화려해졌고, 여인들의 자세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 쭈그리고 웅크렸던 40년대를 넘어서 적당히 살집도 붓고, 당당히 서서 돈을 흔들며 웃고 있는 여인들의 표정에서 살짝 설익은 욕심도 보인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컬러에 흰색과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주어 곧 어둠을 뚫고 찬란한 빛으로 나아가는 듯한, 한 꽃 그림 앞에 나는 멈추어 섰다. 인도네시아에 살면 제법 익숙하게 보는 꽃. 이곳 사람들의 삶과 죽음과 언제나 함께 한다는 꽃 캄보자. 어찌 이 그림 앞에선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나른한 평온함과 수줍은 따스함 그래서 대체적으로 착할 수밖에 없는 심성들이 이 꽃에 묻어나 있다. 발리에 가면 가는 곳 마다 관광객들을 환영하는 의미로 꽃다발을 만들어 걸어주는데 바로 이 캄보자 꽃이다. 그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어두운 색채들로 화폭 가득 쓸쓸하고 먹먹한 향기를 드러내고 있다. 얼마나 많은 눈물과 웃음이 좌절과 절망이 그리고 새로운 희망이 함께 했을까? 이 그림에는 고르고 또 고른 숨처럼 간결한 시가 한 편 적혀 있다. 시인은 말한다. 삶과 죽음은 반복되는 것이라고.
 
 
전시장 쪽을 돌면 한 점씩 자화상과 초상화가 가지런히 걸려있다. 작가 하리자디 수마디자자 (Harijadi Sumadijaja)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 작가는 누가 봐도 나, 예술가예요. 나, 좀 시대를 별나게 사는 남자예요 하는 듯한 옆모습으로 살짝 예술가 특유의 건방짐과 낯가림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덜컥 내 가슴을 내려앉게 만든 그림 한 점. 남자의 눈이 너무 아프다. 잔뜩 충혈된 그 눈은 너무 먼 곳을 보는 것 같다. 아파서 너무 아파서 피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이 초상화는 한 세대를 너무나 찬란하고 뜨겁게 살다 요절한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문학가 Chairil Anwar (차이릴 안와르)를 그린 것이다.
 
박물관 큐레이터는 설명한다. 이 그림은 보는 거리에 비례해서 다가오는 감정이 다르다고. 모처럼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 되어 멀찍이 서서 팔짱을 끼고 한 참을 멍하니 본다. 아... 모르겠다. 그가 뭘 말하고 싶은지? 무엇을 나에게 알리고 싶은 건지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엔 성큼성큼 그림 가까이 다가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림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기도하고, 코를 대며 냄새도 맡아 본다. 난 정말 예술적 소양이 없구나. 도대체 무엇을 느끼라는 것일까? 왜 가까이에서 감상하면 할수록 그림이 더 잘 보인다고 했을까? 포기하고 돌아설까 하다 초상화 주인공인 시인의 눈길이 닿는 그 곳에 서 보았다. 아, 그가 생전에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그냥 가슴으로 알게 되는 순간 좌절과 절망의 나날 속에서 불면으로 밤을 지새우며 온 몸으로 그가 쓰는 그 글을 앓았구나. 그의 하루하루가 어떠했는지 그 몽환적이고 고독한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충혈된  그의 눈은 조국의 현실과 그 조국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한 젊은 문인의 비루한 날들을 너무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1960년대의 시대상과 정치상황을 회화적으로 풍자한 그림 앞에서는 대한민국의 한 시절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진다. 삼원색의 현란함이 주는 강렬함이 그러했을까?
한 나라의 기득권이라는 것이 이런 것임을. 언제나 그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 권력에 집착하는 집단의 광기는 빨간 파랑 녹색의 개들이 화폭 여기저기를 어지럽히고 있었고, 힘없는 민중들은 그저 그 자신들과 그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하얀색의 거위로 표현해 놓았다. 화가의 기발한 발상과 풍자에 경의를 표한다.
 
2시간 남짓 그림 하나하나와 인사하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국립갤러리를 무엇인가에 홀린 듯 흘러 다닌 오후 갤러리 문을 나서며 내가 만난 것은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소소한 기쁨으로 그 날들을 견디어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각자의 역사를 그리고 시대의 역사를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 그 이야기는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도 아니며, 막연하게 와 닿는 먼 훗날 이야기도 아닌 바로 오늘 이곳의 이야기였다.
 
나라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나라의 주권을 위해 죽어가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더 당당한 나라로 발전해 가길 바라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빼앗고 지키려하고, 각자 주어진 대로의 운명을 치열하게 살다가 간 자들이 딛고 선 이 땅의 이야기였다.
 
인도네시아 땅의 이야기들은 대한민국 땅의 이야기와도 닮아 역사의 무서운 무게감을 안고 이곳에서 만나 마침내 하나가 된 듯 느껴졌다. 그리하여 마음에 불편하거나 거부감 없이 담담하게 이방인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각인되는  오늘 하루는 인도네시아의 하루도 대한민국의 하루도 아닌 그냥 우리의 오늘 하루였다.
 
보잘것 없고 평범한 일상들이 흘러 흘러 우리네 삶이 되고, 우리네 삶들이 꾸역꾸역 흘러서 역사가 되고, 그 역사는 또 휘몰아치며 흘러서 지금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오늘이 되는구나. 그림이 내게 읽어준 이야기는 내가 손꼽는 다섯 키워드 단어들이 다 들어가 있는 우리들의 오늘이었으며 지금 내가 여기서 맞이하고 있는 오늘 하루는 그저 우연히 뚝 떨어져 생긴 하루가 아니라 그 옛날 누군가의 눈물과 아픔과 땀방울과 핏방울이 모여서 만들어진 귀한 하루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하는 긴 하루였다.
 
다음 문화탐방을 기대하며 국립갤러리 문을 나서는 인생의 한 날 내 소풍의 날에 잘 놀았다는 충만감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 행복하다... 중얼거려보았다.
 
 
[최우수상 홍윤경 수상소감]
 
 
어릴 적, 햇살이 부서져 들어오는 다락방에 숨어서 방학이면 종일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글이 주는 알 수없는 신비감에 빠져들어 어느덧 내 꿈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찬란했던 꿈은 몇 번의 신춘문예 탈락이라는 아픔을 안겨주었고, 능력이 부족하다는 좌절감으로 몇 번 주저앉았다. 억지로라도 잊고 싶었던 이루지 못한 상처와 글앓이를 했던 세월의 흉터는 스스로에게도 잊혀 가는 못난 기억으로만 남았다.

오랜 외국 생활로 학창시절 사용하던 한국 집의 방과 물건을 정리하면서 몇 천권의 책은 지역 도서관과 지인들에게 기증하고 아프게 썼던 습작 원고지 뭉치들은 태워버렸다.
그 후 그저 짧은 삶의 단상들이 떠올라도 흘려버리고 말았고 무엇인가를 긁적인다는 것 자체와 너무나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어느 날, 인도네시아를 너무도 사랑하는 지인께서 나의 상처를 아시고 인도네시아에서 살아가는 일들을 글로 한 번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손사래 치며 극구 아니라 하는 나에게쓸 수 있는데 안 쓰는 것도 교만이라고 하셨다. 그 말은 충격이었다.
 
오랜만에 글이 오래 묵은 아픔이 아닌 잔잔함으로 다가와 마음이 평온했다. 그런데 이렇게 최우수상까지 주시니 괜히 부끄럽고 먹먹하다. 이젠 가슴에만 적지 말고 틈틈이 떠오르는 단상들을 기록해봐야지 하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부족한 글 읽어 주시고 최우수상까지 주시는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무엇보다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자극을 주신 지인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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