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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단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을 영원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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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가워 댓글 0건 조회 5,723회 작성일 2014-06-2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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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후면, 우리 민족의 아픔이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인 6.25이다. 일본의 야만적인 강점과 수탈에서 벗어난지 5년도 되지 못한채, 우리나라는 서로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를 향해 원치 않은 살생을 해야만 했다.
 
  6.25전쟁(=한국전쟁)의 발발 배경은 사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자주적인 독립전쟁을 통해 독립을 하려 계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합군들은 우리나라를 패전국의 식민지로 인식하고, 우리나라를 신탁통치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의 희생양으로서 남북을 가르고 독자적인 정부 수립을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자치적인 조직이 있었지만, 미군정은 받아주지 않았고, 좌익과 우익의 다툼은 극치를 달렸다. 김구 선생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1948년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남한만의 정부를 수립하였고, 그 이후 북한도 북한만의 정부를 수립하였다.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우리는 이승만 정권의 압력으로 친일파를 숙청할 수 없어 해방된 식민지로서 명분을 내세울 수 없었고, 이승만의 무력 북진정책은 미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게 군사물자를 많이 지원하지 않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에치슨 선언’을 하고 나서, 북한은 소련에게 비밀리에 지원받은 군사물자를 토대로 남침을 시작하였다.
 
  6.25의 결과는 비참했다. 양국의 사상자는 셀 수 없이 많았고, 3년 동안의 전쟁으로 많은 건물들이 부서져 소위 후진국의 대표적인 예를 보여 주었다. 전쟁의 결과는 원점으로 돌아와 38선에서 휴전을 했으며, 전쟁 중 미국과 소련은 당시 냉전체제때 발명하고 만든 무기들을 우리나라 땅에서 서로를 향해 아주 신나게 쏴댔다. 즉 6.25전쟁의 애초 목적인 ‘통일’은 어디론가 없어져버리고, 그냥 많은 사상자와 건물파괴, 영토 폐허 등 우리에게 여러 아픔을 남기고 갔다.
 
  아직도 남한과 북한의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연평도 포격, 천안함 사건등 아직도 무력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계속적인 평화통일을 추구하고 있다.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 ‘포화속으로’ ‘고지전’등 많은 6.25전쟁의 영화를 만들고 많은 문학작품을 토대로 전쟁의 비극과 아픔을 보여주어서 6.25 전쟁의 안타까움을 국민들에게 새겨주고 있다.
 
  초등학교때부터 ‘통일 말하기 대회’에 수시로 참가한 나는 누구보다도 6.25전쟁의 아픔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의 이유를 인지하고 있었다. 6.25전쟁 자체로도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6.25전쟁이후 너무나도 많은 서양 문화의 주입으로 우리나라 고유 문화가 많이 파괴된 것이 무엇보다도 가슴아프다. 항상 입고 다녔던 한복은 이제 일반 길거리에서는 너무나도 보기 어려워졌으며, 많은 외래어가 한글을 파괴 시켰다. 그 외에도 많은 문화 파괴 때문에 우리나라의 정체성이 너무나도 흔들리고 있다.
 
  6월 25일이 되면 나는 항상 5분동안 묵상을 하곤 한다.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외에는 다른 아픔과 민족의 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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