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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단 인사치례, 소통,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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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1건 조회 8,933회 작성일 2015-04-30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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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빈 | 자유기고가
 
 
Mo ke mana? (어디가?)
dah makan belum? (밥은?)
 
Formal하지 않고 구어체에 가깝지만, 결코 생소하지는 않은 문장임이 분명하다.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살면서 여러분들이 자주 들었던 말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두 문장은 내용상의 의미를 가진다기보다는, 입에서 뱉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basa-basi이다. 이 basa-basi는 사전적으로는 빈말, 또는 형식적인 표현에 가까운 말을 의미한다. 하지만 같은 인사치례라 할지라도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는 그 목적이 전혀 다르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처음 얼마동안은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과도한 관심과 친절함이었다. 처음 몇 년은 주택단지에 살았던 터라 동네 주변을 걷는 일이 잦았는데, 데면데면한 사이이거나 심지어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눈만 마주치면 사람들이 ‘어디가?’, ‘잘 지냈어?’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 때마다 어떻게 대답할지를 몰라 눈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피하듯이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사람들이 왜 저럴까 딱히 의문을 갖지 않고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아마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분명히 겪어봤을 것이고, 반응도 필자의 것과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오지랖에 가까운, 그야말로 안하느니만 못하는 인사치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또 솔직히, 안 궁금하고 앞으로도 안 궁금하다. 우리 사회가 삭막하고 나 갈 길 바쁜 것도 있지만, 우리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보기를 전혀 꺼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반드시 알려줄 필요는 없다. 굳이 목적지를 알려주고 싶지 않다면 그냥 ‘거기로(가는 중이다)’라고 대답하면 된다. 그러나 이 대답 역시 우리의 관점에서는 성의가 없는, 오히려 물어본 이를 무안하게 할 소지가 있는 답변일 수 있다. 왜냐면 정말 어디 가는지 궁금해서 물어봤을 것이며, 적어도 그에게 저 답변은 몰라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어본 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손을 흔든다, 잘 가라는 인사는 덤으로.
 
앞서 언급했던 대로 그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이 어디 가는지가 중요한 것도, 상대방이 어떻게 대답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볼 수 있고, 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수 있다. 그보다는 그저 말을 걸었고, 인사치례일지라도 그 상대방이 하나의 소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소통 문화이다. 목적지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것은 이 소통이 쌍방향이며, 개인 의사를 존중하려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배려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통은 열린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엘리베이터, 정류장과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도 우리 소통꾼들의 뻔뻔함은 여전하다.
 
 
 
Mo ke mana? (몇 층?)
dah makan belum? (밥은?)
 
장소가 다르지만, 저 문장은 묘하게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어색한 이 공간에서 스마트폰의 존재에 감사하며 소통을 완곡하게 거절한다는 이어폰에 의지하는 우리와 정말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인사치례로 끝나는 우리나라의 빈말과는 달리, 인도네시아의 basa-basi는 인간관계를 더욱 견고히 하고자 하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배려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시 말하자면, 인사치례로 하는 인사일지라도 상대방에게 먼저 말을 걸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있는 것이다.
 
다음에 연락하자.
밥 한 끼 꼭 먹자.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이 두 문장이면 충분하다. 그야말로 인사치례인 소통이 아닌가. 그렇다고 이 소통이 잘못됐거나 이상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소통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저마다 수용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창고에 주어진 공간만큼만 물건을 쌓을 수 있는 것처럼, 꽉 차 있는 공간에 새로운 인간관계가 들어오려면 이유야 어찌됐든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것은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가고 빈자리가 나야 비로소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으며, 그렇게 그 공간이 유지된다고 본다. 따라서 사람마다 그 용량이 다른 것은 당연하며,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이는 우리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적어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는 이 인간관계에 대한 공간적 접근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한정되어있는 공간에서 닫힌 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활짝 열린 모두를 담고자 하는 소통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가끔, 아주 가끔은 우리들도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이어폰은 가방에 넣어 두자.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우리의 목적지나 안부를 묻는 소통꾼들에게, 경계심을 풀고 ‘그냥’ 대답해보자. 눈웃음은 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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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님의 댓글

프레드 작성일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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