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필묵연 自筆墨緣 [고국 나들이] 적도의 묵향 고국나들이를 준비하며/ 추산 박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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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산 박도연(酋山 朴道淵) / 2008년 자카르타 서쪽 Cikarang 지역에 정착 요식업 소양강을 운영하고 있다. 사명감 투철한 부부의 운영으로 예약하기도 어려운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2016년 자필묵연 찌서당 회원으로 서예에 입문했다. 대한민국서예대전에 무려 9회 연 입선, 서울서예대전 입선과 특선 다수로 초대작가가 되었다. 문인화 학습에 열심인 부인 모경 아사와 부부 조화 취미를 즐기고 있다.
적도의 묵향 고국나들이를 준비하며
추산 박도연
인도네시아와 한국 간에는 해상로라는 해류가 흐르는 바닷길이 있다. 무동력 뗏목으로 오가던 물길이다. 이 해류는 일 년에 한 번씩 방향을 바꿔 흐른다. 한국의 남해에서 뗏목을 띄우면 우리 부부가 이웃들과 즐겁게 여행했던 수마트라섬 Medan에 보름여 만에야 닿는다 하니 참으로 먼 길이 아닐 수 없다. 2008년 우리부부는 7시간여 비행으로 휘익 인도네시아로 날아왔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입장이었으니 그 옛날 6세기 때 해류의 바닷길을 따라 오가던 사람들보다 생각은 더 많았을 것이다.
▲ 백운선생 시/ 2025년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작
인도네시아 Cikarang 지역에서 <소양강>이란 이름으로 요식업을 꾸려온 지 이제 17년이다. 돌아보면 한반도에서 인도네시아로 흐르는 물길처럼 굽이굽이 사연이 많다. 쓸라치면 할 이야기가 산더미다. 우리 부부는 젊어서부터 요식업에 뜻을 두었다.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둘이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그만 천직이 되고 말았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아내 설하당이 진하게 흘린 땀방울이 그 바탕에 있다.
▲ 和氣致祥(화기치상)/ 온화한 기운이 일어나면 상서로움이 다다른다.
올 부터는 성가한 아들 부부가 합류했다. 귀한 선물 손자까지 안고 왔다. 나눠지는 시대에 우리는 합쳤다. 복작대며 사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 가족의 문화가 아닌가 싶다. 이로 인해 설하당은 역할이 더 많아졌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삶을 즐기려면 아들 부부가 잘 이어받는 것이다. 우리 부부의 오랜 경험이나 노하우에 아들 부부의 젊은 감각이 더하면 변함없는 호응이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래저래 아내는 요즘 매우 분주하다. 때로 손자도 안고 싶고 아들 내외의 안정적 정착을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들에게는 소양강 운영의 세세한 부분을 전수하는 일에 소홀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사이 즐거움을 감추지 못할 일이 생겼다. 가족이 합치고 얼마 아니 되어 며느리가 둘째 임신을 알렸기 때문이다.
▲ 목은 이색 시구/ 天地無涯生有涯(천지무애생유애) 浩然歸志欲何之(호연귀지욕하지)/
천지는 끝이 없고 삶은 유한하니, 호연히 돌아갈 마음 어디로 가야하나.
나는 2016년부터 서예에 입문했다. 낯선 땅에서 붓을 잡고 먹을 갈며 써 내려간 내 시간은 내게 큰 위로이자 쉼이 되었다. 음식점 한쪽 작은 방에서 시간이 날 때면 먹을 갈고 붓을 잡았지만, 그 시간은 내개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보게 하는 넉넉한 시간이자 명약이었다. 집에서도 밤중에 잠에서 깰 때면 옳거니 하고 서재로 옮겨 붓을 잡기도 하는데, 그 때 마음에 드는 한 점이라도 얻을라치면 그야말로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 석희박 시/ 2024년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작
이렇게 필묵은 늘 내게 위로가 되었는데, 때마다 행복한 결과도 안겼다.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수 차 입상이란 성과를 선물했고, 서울서예대전에서는 초대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때마다 전개된 자필묵연 정기전은 물론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도 끼게 했다. 그리고 이번에 맞이하는 <적도의 묵향 고국나들이 Ⅲ>에 설하당과 함께 부부가 참여하니 과연 고국나들이 답지 아니 한가.
이번 고국나들이 전시가 우리 부부가 취미생활의 성과를 함께 나누며 작은 행복을 확인하는 일일 것이 확실합니다. 찌서당의 일원이자 가족과 같은 이웃들과 함께하는 나들이여서 더 행복한 여행이 되리라 믿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2025년 가을 소양강 작은 서실에서 추산 박도연
[아호 이야기/ 인재 손인식]
오래 숙성된 술향기처럼, 만물을 포용하는 산처럼
박도연 도반은 십여 년 전 서예에 입문하며 필자와 인연을 맺었다. 인도네시아 찌까랑에서 한국 음식점을 경영하며 한국인들에게 한국의 맛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음식 한류에 공헌한다. 그를 위해 지은 아호가 바로 酋山(추산)이다.
▲酋山
酋는 본래 ‘묵은 술’, ‘오래된 술’을 뜻한다. 단순히 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우러나는 깊고 원숙한 맛을 가리킨다. 무르익음, 성숙함, 완성됨의 뜻도 그 안에 담겨 있다. 山은 두말할 필요 없는 자연의 상징이다. 우뚝 서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마침내 모든 것을 포용하고 생성하는 자연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술과 산, 두 글자의 만남은 추산 박도연 도반의 삶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그는 평소 술을 즐길 줄 알고 사랑하는 애주가다. 술을 통해 인생의 향취를 깊이 음미할 줄 아는 참다운 애주가로서 고사 속에 등장하는 시인 묵객의 향기가 난다. 독서를 좋아하는 그는 산도 좋아한다. 한 때는 매주 일요일이면 산악인들 대열에서 항상 앞장서서 대자연의 기상을 온몸으로 즐겼다. 더불어 골프를 통해 여유와 집중을 조화시키며 삶의 균형을 다져왔다. 이 모든 기호와 행적이 酋山이라는 아호 속에 응축되어 있다고 하겠다.
▲朴道淵印
그러므로 필자는 작호자로서 酋山이 단순히 정겹게 또는 고상하게 부르는 호칭을 넘어 그에게 하나의 기원이자 모토가 되리라 생각한다. 술이 오래 숙성될수록 그 향이 더욱 깊어지듯, 그가 하는 일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무르익어 그가 바라는 바가 원만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뜻도 담겨있다. 대지가 산을 굳건히 받쳐내듯, 그에게 서예가 더러 삶을 위로하는 든든한 기둥이 된다는 것이 안내자로서 기쁘다.
▲ 추산
▲박도연
추산께서는 이미 서예를 통한 성취가 적지 않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 더욱 정진하시어 일취월장 명작들을 생산하실 것을 바라고 믿는다. 붓끝에서 피어나는 먹빛이 잘 숙성된 술의 향처럼 은은하기를 바란다. 한 획 한 획은 산맥처럼 굳셀 것과 작품은 명가의 조각품처럼 멋질 것을 믿는다. 세월과 더불어 원숙해지는 것이 예술이다. 그가 삶과 예술 속에서 성취를 이루어낼 그 길에는 그의 짝 모경(牟坰) 아사도 있어 보고 느끼기에 더욱 좋다.
▲樂山水
문인적 아취와 요리를 통해 실험과 창작을 즐기는 모경께서는 문인화 학습으로 부군 추산과 궁합을 맞추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함께 등산하고 함께 골프도 즐긴다. 바라건대 때를 정해 멋진 부부 서화전을 펼칠 것을 권하며 추산 박도연 도반의 아호기에 붙인다.
-2025년 9월 빗소리가 어둠을 재촉하는 저물녘에 산나루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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