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필묵연 自筆墨緣 [고국 나들이] 상처는 모래에 은혜는 대리석에 새기며/ 이촌 강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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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 강윤석 / 1956년 경기 광주 태생이다. 2008년 여행을 인연으로 2009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하여 현재 PT. platech mold Indonesia를 경영 중이다. 2021년 서예에 입문, 오직 성실한 노력으로 자필묵연 정기전에 꾸준히 참가했으며,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 2회, 서울서화대전 입선 2회, 특선 1회의 괄목할 성과를 올렸다.
상처는 모래에 은혜는 대리석에 새기며
이촌 강윤석
6.25 전쟁 끝나고 몇 년 뒤다. 경기도 광주군 실촌면 열미리 66번지 강씨 집안의 4대독자인 부모님 슬하에서 내 고고성이 울려 퍼졌다. 농사가 전부인 가난한 농부 집안의 장남, 이런 배경, 그러니까 전후 베이비붐에 합류한 사람들이라면 저마다 곱씹을수록 뭔가 끌려나오는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 三峰 鄭道傳 詩句(삼봉 정도전 시구)/ 2025년 서울서화대전 특선작
迢迢風共遠(초초풍공원) 아련히 바람과 함께 멀어지고
漠漠雨相連(막막우상련) 아득 아득 비와 서로 잇대기도 한다.
亦解尋逋客(역해심포객) 숨어사는 선비 찾을 줄도 알아
朝來入洞天(조래입동천) 아침에 큰 하늘로 떠오는 구나.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부모님이 소를 팔아야 학비가 마련된다는 것을 알았다. 삼성에 공채시험에 합격은 농사 일 하기 싫은 것, 어떻게든 가난을 대물림 받기 싫다는 것 등 몇 가지가 버무려진 결과다. 삼성 근무는 많은 것을 배우는 시기였다. 주경야독 대학을 마친 때다. 그러나 내 갈망이 향하는 대로 이직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쉬운 일 있으랴. 막힘과 뚫림이 거듭되는 속에 인도네시아 공장 설립으로 이어진 것은 지금 생각해볼 때 괜찮은 인연이었지 싶다.
▲ 절임 장천비
나는 “받은 상처는 모래에 기록하고 받은 은혜는 대리석에 새겨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명언을 늘 마음에 담고 산다. 경영 일선에서 산전수전 겪은 내 희로애락을 다 대변하는 말이지 싶어서다. 상처는 얼른 씻어버리고 은덕은 오래오래 잘 새길 것을 다짐한다. 이 명언을 인재 손인식 선생께서 ‘傷受刻沙 恩德銘巖(상수각사 은덕명암) 여덟 한자로 바꿔 휘호하셨는데 나는 이 작품을 곁에 두고 늘 완상한다.
▲ 衆力移山(중력이산)/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면 산도 옮긴다.
흔히 말하는 기대수명, 전문가들은 기대수명을 충족하기 위해 생애설계를 잘 하라고 강조한다. 기대수명을 위해서 첫째는 일이 있어야 한다. 둘째가 돈, 셋째는 건강해야 한다. 건강이 셋째지만 사실 건강을 잃으면 일도 돈도 다 잃는다. 나는 70객이지만 다행이 일이 있다. 취미까지 있으니 오직 건강 나이에 전념해야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 무엇보다 절실하다.
인도네시아와 인연이 특별해진 것은 이번 고국나들이를 있게 한 서예다. 비교적 늦게 시작한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서 좋은 점도 많다. 이전에 푹 빠져 살았던 골프도 이젠 몇 가지 이유로 시들하고 일요일이면 힘차게 내딛던 산행도 멈춘 상태다. 그런데 서예는 집과 회사, 심지어 출장지에서도 틈이 나면 즐길 수 있으니 좋다. 하물며 가족처럼 마음을 나누는 서예 이웃들로 인해 늘 파안대소 할 수 있어 참 좋다.
▲ 黃粱一炊夢(황량일취몽)
/ 인생의 덧없음과 영화의 헛됨을 꿈속의 한 순간과 비유한 고사성어
이번 <적도의 묵향 고국나들이 Ⅲ>가 주는 선물 또한 많다. 내 다리로 걷고 내 가슴으로 느끼고 내 눈으로 세상구경을 하며 행복하고 싶은 소망을 기록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아울러 차분히 가족을 생각할 기회가 되어 좋다. 한국이 주 거주지인 아내는 얼마 전 이곳 인도네시아를 여행처럼 다녀갔다.
한국에 있을 때나 인도네시아에서나 골프에 진심인 아내의 건강을 빌며 주변 풍광과 잘 어우러진 페어웨이 같은 평온한 마음이 지속되기를 빈다. 이곳 이웃으로 살며 독립하여 경영인으로서 능력을 발휘하는 아들 며느리와 그 가족들, 그리고 오랜 미국생활을 거두고 년 전에 고국에 정착한 딸과 사위 가족들도 모두 각기 가진 소망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이처럼 글로 쓰며 천천히 새기니 좋다.
끝으로 늘 기회를 만들며 이끌어주시는 인재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자필묵연과 찌서당 동료 선배님들께 항상 감사드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2025년 가을 이촌 강윤석
[아호 이야기/ 인재 손인식]
열미재 • 이촌, 강 도반의 지금
서울(京)을 중심으로 5백리 이내의 땅을 경기(畿)라 한다. 거기에 廣州郡이 있다. 예전에는 잠실이나 성남과 분당 등이 다 광주군이었다고 하니 글자 그대로 참 넓은 고을이었다. 강윤석 도반의 아호를 짓기 위해 그가 일러준 고향 京畿道 廣州市 實村邑 悅美里 탐사를 시작했다. 물론 문헌에 의한 탐사지만, 필자는 과거 이런저런 이유로 실촌면을 수회 스쳐 지난 적이 몇 번 있었으니 그 산천이 아련하다.
광주군의 실촌(實村)은 1895년부터 줄곧 이어온 지역 명인데 이는 지역 내 명당이 많고 뛰어난 인물이 많아 세상을 빛냈으며 마을이 견실하고 확고하다는 내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 悅美가 또 백미다. 기쁘고 아름답다는 의미니까. 기쁘고 아름다운 것은 다 좋으니까.
▲ 二村 姜氏允錫
기내(畿內)에 넓은 고을이 있는데 자연과 산물, 인물들이 훌륭하여 기쁘고 아름답다는 의미가 확고한 고장, 道와 郡, 面과 里가 이렇게 단위를 줄여가며 멋지게 연계되면서 어울리는 주소도 첨 대하는 것 같다. 하여 강윤석 도반의 당호를 먼저 열미재(悅美齋)로 작호했다. 그가 늘 고향을 떠올리고 지금도 한국의 집이 경기도이니 혹 집 현관에다 悅美齋라 작게라도 현판을 걸고, 오가는 바람 더불어 태어나고 자란 기쁘고 아름다운 고장을 늘 새기실 것을 권하는 마음도 들어 있다. 때마다 느낌 행복하실 테니까.
당호 悅美齋와 아울러 아호를 二邨(이촌)으로 작호 했다. 작호의 배경은 이렇다. 이촌의 二는 悅과 같은 뜻인 기쁠 이(怡)로 怡는 다시 같은 음인 二로 표현했다. 이는 한자 조자 원리 중 하나인 전주(轉注) 형식의 활용이라 하겠다.
二는 주지하듯 하나에 이은 둘이다. 둘은 둘레로서, 하나인 ‘한’의 알맹이를 감싸고 있는 껍질과 어떤 집을 둘러친 울타리를 의미한다. 앞의 바탕인 뒤, 위의 바탕인 아래, 밝음의 바탕 어둠을 뜻하는 등 중의적이다. 二의 음은 다른 것(異), 이로운 것(利)과 통함으로써 자립의 상태를 포함하고 있다.
물론 二의 최종 선택은 邨자와 음양과 획수, 어울림을 전제한 것이다. 함께 조화한 邨은 村과 같은 자로서 ‘마을’, ‘시골’의 뜻과 ‘꾸밈이 없다’의 뜻임은 주지하는 바다. 이 아호 안에서 촌자는 일반 마을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가 아니라 바로 실촌면의 고유명사다. 오래 지켜온 마을의 이름이며 명당과 뛰어난 인물 탄생, 견실하고 확고한 아름다운 고장을 대변하는 글자다.
▲ 悅美齋章
이 아호 또한 태어난 곳을 바탕으로 삼은 네 가지 아호 작법 중 가장 많이 쓰이는 ‘所處以號(소처이호)’이다. 강 도반의 성품이나 삶의 모습, 또 희망 사항을 반영한 작호로서 ‘所志以號(소지이호)’, 즉 바라는 바도 반영한 아호라 하겠다.
열미재 이촌께서는 좌우명 ‘착하게 살자’를 중심으로 이웃돕기를 매우 즐긴다. 늘 조용한 성품에 비해 사회적으로 맡고 계신 역할이 많은 가운데 늘 건강 지키기에 진심이다. 서예 수업에는 늘 철저하시고 찌서당 회원들을 위해 지갑을 여는 것도 지체가 없으시다.
지금부터는 ‘자기애,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바램은 二邨과 悅美齋의 활발한 활용과 함께 행복하게 어우러질 것을 기대하며 작호기에 가름한다.
-보고르 산마을에서 인재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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