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필묵연 自筆墨緣 [고국 나들이] 내 삶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도념 제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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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념 제경종(道念 諸坰鍾) /1952년 경남 출생이다. 1994년 4월 1일 인도네시아에 발을 디뎠다. 이제 또 다른 고향이 되었다. PT. TOILON을 경영하며 한인회, 한인체육회, 해인사 인도네시아 신도회장 등 각처에서 그의 충실한 역할이 빛난다. 2010년 (사)한국서협 & 자필묵연 회원이 된 이후로 꾸준히 정기전에 참가하는 한편 자필묵연 역대 최장기 회장으로 자필묵연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 서울서예대전 우수상 및 특선 입선으로 초대작가이며,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로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를 비롯한 특별전에 두루 참가했으며, 2024년에는 인니지회 초대작가 6인 전에 참가했다.
내 삶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도념 제경종
어느 사이 서예작품을 앞세운 고국나들이가 세 번째다. 10년 전 첫 번째 때는 자필묵연 회장으로서 서울 인사동 한국화랑 이벤트를 위해 혼신을 쏟았었다. 부산을 거쳐 다시 인사동 한국화랑에서 펼치는 세 번째에 임하는 내 느낌은 종심(從心)을 훌쩍 넘긴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내 성정 때문인지 정관(靜觀)의 느낌이 강하다.
▲ 氣氣勢(기기세)/ 기세등등
년 전에 자카르타에서 치렀던 6인 초대작가전 때도 그랬지만 난 지금도 내 작품을 전시장에 펼쳐놓고 남에게 평가 받는 것은 부담스럽다. 내 심경을 울리는 명언 명구, 또는 진리의 금언들을 내 손으로 쓰는 즐거움이 좋고, 그 작품을 어떤 명분으로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이 더 없이 좋을 뿐이다.
▲ 眞空妙有(진공묘유)/ 참된 공이 별도로 분리된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존재 양상, 곧 다양한 인연의 조합인 연기(緣起)라는 불교 교리
돌아보면 내 제2의 인생 역정이 시작된 것은 1994년 인도네시아에서다. 당시엔 주재원으로서 앞날이 확실하지 않았다. 나름 계획들이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흩어지고 또 모아지는 사이 나이 60이면 고국으로 돌아가자는 계획이 지금은 ‘어디에 살면 어때’로 변해 그 경계가 없어지고 말았다.
觀生音(관생음), 내 삶의 소리를 관조하는 중이다. 비즈니스는 늘 변화한다. 시류와 같다. 그래서 늘 세상의 소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서예도 그렇다. 늘 쓰던 붓으로 같은 내용을 표현하더라도, 마음대로 다스리기가 어렵다. 시류를 잘 읽어야 하는 비즈니스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상황과 재료, 그리고 내 마음 가짐에 따라 언제든 다를 수밖에 없는 그 획과 구성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한 점 또 한 점 이뤄나가는 곳에 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을 나는 지금 조금씩 체득해감으로써, 세상의 소리를 보는 것과 내 삶의 소리를 보는 것임을 이해한다.
▲見素抱樸(견소포박) 소박함을 드러내고, 순박함을 지니다./ 노자 구
그런 의미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서예와 인연을 맺은 것은 바로 지금을 위한 찬가였다는 생각을 한다. 서울서예대전에 부지런히 응모한 결과 나름의 자격을 얻어 초대작가가 되었고, 대한민국서예대전에도 초대작가 반열에 올랐다. 2024년 대한민국서예대전 때는 영광스럽게도 심사위원으로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타국에서 작은 기업을 일구고 이젠 경영자로서 전면에선 아들로 인해 몸이 여유로워지고 마음이 느긋해진 것도 다 오늘 내가 보는(觀生音) 내 찬가다. 한국에서 성가하여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큰아들을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이주하게 한 것은 아무래도 성공적인 것 같다. 장남의 가족이 곁으로 오고 장남이 나와 함께 일을 하자 몇 가지 좋은 점들이 선뜻 현실이 되었다. 특히 손자 손녀가 주는 활기는 놀랍고 고맙다.
▲梅經寒苦發淸香(매경한고발청향)/
매화는 매서운 추위를 겪어야 맑은 향기를 내뿜나니/ 시경 구
나는 불가의 가르침을 필묵으로 새기기를 좋아한다. 기타 명언 절구들도 마찬가지다. 몇 마디 글 속에 담긴 심오한 뜻을 제대로 드러내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서 늘 도전하는 기분 나쁘지 않다. 끝으로 건강을 제일과재로 삼아야 하는 나이가 된 나에게 변함없이 관심을 기울여주는 아내 시여당에게 감사하며 고국나들이 참가 소감에 갈음한다.
-2025년 9월 도념 제경종
[아호 이야기/ 인재 손인식]
道念, 수행과 표현예술 사이
道念(도념), 불가의 향기가 물씬한 법명(法名)이다. 제주 약천사의 주지로 계셨던 혜인 큰스님께서 수계식 때 불자 제경종(諸坰鍾) 거사께 하사하셨다고 한다. 이 법명에서는 깊은 자비와 경책의 뜻, 그리고 인생의 길목마다 정념(正念)으로 정진(精進)하라는 가르침이 은은히 드러난다.
▲도념 제경종
道는 길이다. 인간이 밟아가야 할 삶의 궤적이자, 진리에 이르는 무상의 도리이다. 念은 생각이면서 동시에 깨어 있음을 의미한다. 눈으로는 한순간 한순간을 흐트러짐 없이 바로 보고, 마음은 늘 바르게 지니라는 지침이다. 두 글자가 합쳐진 道念은 곧 ‘걸어가되 깨어 있으라’는 경책이요, ‘도를 향해 머뭇거림 없이 의심 없이 나아가라’는 서원의 언표이다.
▲道念諸坰鍾印
스님께서 전하신 말씀은 간명하였다고 한다. “너의 갈 길에 정념 정진하여라.” 이는 수행자의 언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은 모든 이들의 삶에 드리워져야할 경구라 하겠다. 따라서 부침 많은 세속의 파도 속에서도 道念이라 새겨진 법명은 그것을 받은 거사의 발걸음을 늘 제 길로 이끌어주는 등불이 되리라.
▲道念 諸氏坰鐘
道念 거사께서는 서예에 입문 후 법명을 자연스럽게 더불어 아호로 사용하셨다. 예술적 표지로도 겸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법의 향기를 따르려는 다짐이자 가르침이 곧 글씨 한 획, 한 글자에도, 내면의 진실을 담아내려는 서예인의 수행 이정표가 된 것이다. 붓끝에 맺히는 먹향은 정념의 향이 될 것이요. 여백에 고요를 스미게 하는 정진의 지표가 된 것이다.
수행과 표현 예술 두 道사이에서 늘 깨어있음(念)으로 道念이 더욱 빛나실 것을 믿으며 아호 이야기에 대한다.
-산나루 서창아래에서 인재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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