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필묵연 自筆墨緣 [고국 나들이] 노객의 특별한 인연, 즐거운 펼침/ 운초 김영주
페이지 정보
본문
운초 김영주(雲草 金榮柱)
-. 1945년 9월20일 경북 예천 출생
-. 부산에서 성장하며 초․중․고(1965년)를 졸업
-. 1977년 동아대학교 법학과 졸업
-. 1972년 부산국군통합원에서 의무병과 경리사병으로 만기 전역
-. 1984년 7월 부산에서 대원섬유공업사 창립
-. 1998년 현 PT DEWA CITRA SEJATI를 CIKUPA,TANGERANG에 설립
-. 2008년 4월 서예 입문
-. 2011년 7월 제16회 서울서예대전 예서부문 처녀 출품 특선에 당선 된 후 2018년까지 연속 입상함
-. 2019년 서울서예대전 초대작가
-. 2014년 3월 제26회 대한민국서예대전에 입선된 후 총 8회 입선
-. 자필묵연 정기전 2008년 ~ 2023년까지 연속 출품
-. 2014년 울산 전국서예문인화깃발전 출품.
-. 2014년~ 한글의 날 기념 한글서예특별전 출품 다수
-.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출품 4회
-. 2024년 초대작가 6인전
노객의 특별한 인연, 즐거운 펼침
운초 김영주
인도네시아에 기업을 설립한 지 29년여다. 인도네시아에서 서예와 인연을 맺은 것도 특별함이 아닐 수 없는데 벌써 19년여다. ‘우공이산(愚公移山), 뭔가를 꾸준히 하면 마침내 이루는 것일까?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도 다수 쌓였고 서울서화대전 초대작가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고국전시 참여가 이번이 세 번째다.

▲ 淸虛 休靜(청허 휴정)/ 옛 절을 지나며/
花落僧長閉[화락승장폐] : 꽃이 지도록 스님은 항상 닫으니
春尋客不歸[춘심객불귀] : 봄을 찾는 나그네 돌아오지 않네.
風搖巢鶴影[풍요소학영] : 바람이 둥지의 학 그림자 흔들고
雲濕坐禪衣[운습좌선의] : 구름은 좌선하는 옷자락 적시네.
부지런히 일을 잘 추진하는 인재 선생님을 만난 것도 복이다. 때마다 이런 저런 이벤트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즐겁게 참여했다. 공모전에 출품하여 당선의 기쁨을 누린 것도 그러려니와 세계서예비엔날레 등 이런저런 서예 축제 참가도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거년에는 (사)한국서협 인니지회 차원에서 주최한 코린도 그룹 빌딩의 6인 초대작가전에 한 자리를 차지했었다.
가장 잊지 못할 것이 아내 시후당과 함께 펼친 내 나이 고희 때의 전시다. 동문들이 놀랬다. 비즈니스나 사회적으로 교류가 잦은 지인들도 두루 부러워했다. 지금 돌아봐도 다시없을 귀한 일이었다. 그때 만든 내 작은 역사를 기록한 책도 다시 있기 어려울 성과 아니겠는가. 이 모든 것을 있게 한 인재 손인식 선생께 감사드린다.

▲ 大道無門(대도무문)/ 큰 길에는 문이 없다. 곧 크고 바른 도로 나아가는 데에는
어떠한 장애물이나 제약이 없다.
이렇듯 시간이 흘렀고 결실들이 쌓인 만큼 내 나이도 팔십을 넘겼다. 변함없이 나의 귀한 동반자인 시후당의 얼굴에도 연륜의 주름이 늘어간다. 그간 일군 사업은 아들이 이어 받아 더욱 활기차게 성장시켜 가고 있다. 며느리의 내조도 훌륭하니 참 보기에 좋다. 무엇보다 즐거운 일은 무럭무럭 자라나는 귀하고 귀한 손자 리안과 태우의 재롱을 보는 일이다. 덥석 안길 때마다 달라지는 힘을 느끼는 것이 내게는 큰 활력이다. 핸드폰에 담긴 손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유튜브 어떤 숏츠 영상보다 좋으니 손자 자랑이랍시고 더러 돈을 내가며 자랑거리로 삼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 早生華髮 人生如夢(조생화발 인생여몽)/ 일찍 희어진 머리, 인생은 꿈과 같도다.
요즘엔 먹을 가는 일도 더러 힘에 부치고 붓을 오래 들고 서있는 것도 다리에 부담이다. 붓끝의 움직임이 갈수록 둔해져 획이나 표현도 여의치 않다. 그러나 이거야말로 순리 아니랴. 다만 내가 붓을 들어 작품을 시도할 때마다 손자들을 떠올리는데, 이것만으로도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내가 하얀 화선지 위에 붓을 가다듬으며 내 남은 생을 즐기려 하듯 손자들이 펼쳐나갈 세상에 그들이 창작한 작품들이 즐비할 것을 바라고 믿는 기도로서 행복하다.

▲ 淸閑無世事 管領有春風(청한무세사 관령유춘풍). 세사에 관심이 없으니 맑고 한가로운데,
피리를 부니 춘풍이 절로 일도다. - 고어 구
아직 골프 라운딩을 즐길 수 있으니 다행이다. 주마다 있는 서예 학습 후 한 잔 술을 나누는 것도 복으로 여긴다. 이 세 번째 고국나들이 전시야말로 이 나이에 참 귀한 덤 아니겠는가. 고국에 내걸기에는 부족함에도 기꺼이 참가하는 이 노객의 용기를 어여쁘게 여기시고 기꺼이 감상해 주실 줄 믿는다.
-2025년 9월 운초 김영주 배상
[아호 이야기/ 인재 손인식]
공초와 운초 사이
운초 김영주(雲草 金榮柱) 회장께서는 자필묵연 역대 회장으로서 자필묵연 중흥에 크게 기여하셨다. 다이나믹과 호탕함으로 대변되던 어른이시다. 이제 연세 80을 넘기셨으나 여전히 건장하신 모습으로 이번 <적도의 묵향 고국나들이 Ⅲ> 전시에도 참여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으셨다.
▲김영주
▲金榮柱
어른의 아호는 필자가 작호가 아닌지라 아호이야기를 쓰기 위해 여쭸다. 어제 일처럼 이야기하셨다. 언젠가 수업 후 식사 시간에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되살려내셨다. 추억담 속에 그의 젊은 시절 삶의 편린들이 날 것으로 펄떡였다.
“친구가 붙여줬어요. 몰려다니던 친구 무려 12명에게 별호를 붙여준 좀 별난 친구였는데요. 지금도 건재합니다. 뭐 깊은 뜻을 새긴다거나 지향하는 바를 드러내는 아호의 개념보다는 단순히 유행처럼 멋처럼 별칭을 붙였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는 잘 놀고 매사 호탕하다는 내 한량기질을 놀림감 삼아 붙인 것인데요. 처음에는 ”꽁초“였어요. 그러면서 친구가 가져다 붙인 설명은 당시 유명한 시인 공초 오상순 선생을 닮으라는 의미가 들어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젊은 시절엔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술을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많이 피워댔어요. 그렇다고 방탕한 것은 아니었어요. 대부분 하는 일과 자기 위치에서 매우 충실했거든요. 내면에는 늘 지적요소에 대한 갈망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론 출세와 안정된 삶 추구 등 희망이 아주 복합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자고새면 세상이 변화하던 시절인지라……. 각설하고 내가 확정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아호 ‘운초’는 한 점 걸림 없이 세상을 살고자하는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아호입니다.”
▲雲草

▲운초
추억은 늘 아름답다고 했다. 추억을 회상하는 운초 어른의 얼굴엔 갖가지 상념이 생동했다. 아울러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별호가 또 있다. 바로 불자로서 수계식 때 금강종사(金剛宗師)께 받은 법명 ‘정각(正覺)’이다.
운초 어른과 필자와의 인연이 벌써 18년여, 필자는 그의 긍정과 단호함을 많이 경험했다. 지금도 그의 운필은 거침이 없다. 몸은 조금 노쇠했을지라도 그의 세상을 보는 시각과 지인들과의 유대는 늘 긍정이고 거침이 없으시다. 자필묵연을 이끄실 때도 성큼성큼 앞장서며 두루 포용하셨다. 지금도 회원들의 존경이 조금도 변함없음에서 필자의 느낌이 크다.
▲雲草金榮柱
필자가 각별히 새기는 부분도 있다. 운초 어른의 가족애다. 그는 사모 시후당 여사님의 존재를 참으로 귀히 여기신다. 아들과 딸, 며느리와 손자 손녀 등을 대하심에 어찌 그리 사랑이 넘치시는지 정말 놀랍다. 가족을 위하는 일이라면 또 가족과 함께하는 일이라면 조금도 망설임 없고 아낌도 없으시다. 하니 운초 어른을 향한 가족들 마음 또한 어찌 다르랴. 이는 그의 고희기념 부부 전시와 그때 출간한 책 속에 세세히 잘 들어나 있다. 필자는 그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으로 인해 참으로 깨우친 바가 많다.
▲金榮柱
늘 배우고 깨우침의 대상이 되어주신 운초 어른께 감사드리고, 아울러 그가 창립한 PT DEWA CITRA SEJATI와 2세 경영인으로서 거듭난 아들 김필수 대표의 날로 번창하심을 믿으며 이만 아호 이야기에 가름한다.
-보고르 산나루 깊어가는 밤에 인재 손인식
- 이전글[고국 나들이] 사랑하는 사위 용진에게 / 무불 김유만 25.09.30
- 다음글[고국 나들이] 조부의 유산과 내 필묵 사이 / 하정 김영욱 25.09.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