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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제2회 적도문학상(학생부)소설부문- 장려상(한국문협인니지부상) /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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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019회 작성일 2018-06-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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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적도문학상(학생부)소설부문- 장려상(한국문협인니지부상)

잘 살 수 있을까
 
 박주영( UPH 11)
 
 
-제 1편 인도네시아-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타국에서 산다는건 정말이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무엇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지. 오랜 고민끝에 난 결정을 내렸다. 바로 ‘문화 차이’다. 대한민국, 바로 내가 살던 곳이자 나의 영원한 안식처일거라고 생각한 곳. 그곳에 문화와 지금 내가 살고 있는곳, 인도네시아 문화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지만 어쩔수 없다. 내가 인도네시아 문화를 받아드리고 배우는 수 밖에….
 
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중 한명, 지훈이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다. 처음에 내가 친구들한테 인도네시아에서 살거라고 얘기했을 때 모두다 같은 반응이었다. “인도네시아? 거기가 어딘데?” 아니면 “어 인도네시아? 거기 발리 아니야?” 라는 반응. 솔직히 나도 그랬다.
 
처음에 회사에서 해외 인사 발령이 있겠다고 선언했을 때 난 ‘난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맘 놓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뒤 내 부서, 그러니까 나 포함 내 부서에 몸 담고 있는 모든 식구들이 해외로 인사 발령이 났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 메일을 받은 순간 3초간 정적이 흘렀다. 모두 다 같은 생각했을거라고 난 의심치 않았다. 메일을 보자마자 우는 직원도 있었다.

“팀장님, 이거 메일 진짜예요? 이거 몰카죠?”
“나도 잘 모르겠어”
 
맞다. 나도 울뻔한걸 참느라 애썼다.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일하는게 지긋지긋해서 가끔 농담으로 “에이, 지옥 같은 회사 때려치우고 외국가서 일하고 싶다!” 라는 생각은 해봤는데 이게 실제로 일어날줄이야 어느 누가 상상했겠나.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난 부장님한테 가서 이것 저것 따지기로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난 그냥 위에서 시킨대로 했을뿐이야.”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우리나라에 법이 있다는걸 원망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나도 어쩔순 없었다. 위에서 시킨 일이니 난 ‘을’의 입장에서 ‘갑’의 입장을 따르는 수 밖에.

부서로 다시 돌아가서 직원들한테 아까 행정부서에서 온 이메일을 자초지종 설명했다. 이메일의 내용은 간단했다. 인도네시아라는 곳에서 약 2년 동안 생활하되, 모든 숙박 시설은 회사 본사에서 준비한다는 것과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에 2주일 이라는 시간을 준다는 것. 그래도 2주동안 자유 시간을 준다는 것 만으로도 난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2주동안 뭘 할건지는 아직 고민해보지 않았지만 엄청 알뜰하게 시간을 소비할 것 갔다. 후에 난 직원들한테 당장 해산해도 된다고 얘기했고 총알택시처럼 직원들은 이 부서를 떠났다.

나도 재빨리 이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 마자 인도네시아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어디에 있는지, 아무튼 인도네시아의 관한 모든 정보를 찾았다. 1시간 동안 찾아본 결과, 인도네시아 무슨 나라인지 대충은 알았다. 자그마치 약 17,0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땅의 면적이 한국보다 19배 차이가 난다고 했다. 인구수는 무려 2억3,764만 명이며 인구수로는 세계 4위이다. 그리고 우리 부서가 있을 곳은 Tangerang이라는 곳이다. Tangerang은 자바섬에 위치한 곳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렇게 모든 정보를 다 찾고 난 부모님, 친형 그리고 친구들에게 곧 있으면 해외로 발령난다는 얘기를 했다. 아까 내가 말했다싶어, 모두 다 같은 반응이었다. “인도네시아? 거기가 어딘데?” 아니면 “어 인도네시아? 거기 발리 아니야?” 라는 반응. 내 부모님과 친형 성우한테 정말 자세하게 발령난 일부터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는 어떤곳인가 설명했다.

“어머니 아버지, 저 다음주에 해외로 인사발령 났어요.”
“그래? 어디로?”
“인도네시아요. 약 2 년동안 거기서 살거래요.”
“인도네시아? 거기가 어딘데?”
“있어요, 동남아시아에 있는 나라요. 나중에 더 자세하게 알려드릴게요.”
“아 그래…” 요기서 난 우리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실줄 알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반응과 사뭇 달랐다.
“잘 갔다와.”
“네. 네?” 진심으로 놀랐다.
“잘 갔다오라고. 너 군대 갔을 때 1년 9개월동안 기다렸는데 2년쯤이야 뭐 껌이지.” 이 얘기를 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 “아니 군대 가는거랑 해외 발령난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개념 자체가 다른데…” 역으로 내가 눈물을 흘릴뻔했다. 그 상황에서 난 부모님은 너무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성우형이 그 상황을 보고서 딱 한마디만 했다. “잘갔다와. 2년 금방이야.” 순간 형이 얄밉게 느껴졌다.
 
샤워하고 침대에 눕는 순간 정신이 없어서 친구들한테 내가 발령났다는 얘기를 까먹고 안한게 생각이 났다. 일단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단톡방에다가 내일 만나자고 했고, 친구들이 다 알았다고 했다.
다음날 친구들 만나러 카페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 둘씩 모이니 테이블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야, 그래서 너 어디로 발령났는데?”
“인도네시아.2년동안 거기서 살아야된데.”
“인도네시아? 거기 발리 아니야?” 서핑 좋아하는 지윤이가 말했다.
“야 넌 서핑도 좋아하는 애가 발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모를수도 있지.. 미안”
“아니야. 그래 맞아 모를수도 있지.”
 
이때 딱 생각나는게 있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인도네시아가 발리에 있는 줄 알고 있다. 사실, 발리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 위 쪽에 위치한 섬이다. 원래 신혼여행지로 유명했었는데 최근에 종영한 ‘윤식당’이라는 프로그램 때문에 한국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더 많아졌다. 그렇게 친구들과 수다 떨고 마지막으로 친구들이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잘 지내라”, “계속해서 연락하자”, “보고싶을 거다. 잊지마라” 등 조금이나마 날 힘내게 해주는 말이었다. 그렇게 2주라는 시간을 보냈다. 첫째주는 친구들이랑 그리고 마지막주는 가족이랑 함께.

시간이 흐르고 흘러 발령일인 6월 10일이 다가왔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공한에서 내 직원들과 다시 만났다.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과 같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검사 다 마치고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작별인사 했다. 멀리서 보이는 성우형이 갑자기 나한테 와서 “우리 이별하는거네” 라고 얘기하는 순간 내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난 울었다. 이별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에 남고 싶은 마음에 우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울었다. 한 사람이 우니까 옆에 있던 직원들도 애써 참은 눈물을 쏟아 부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동안 울었다.
그렇게 모두가 마음을 추스리는 동안 난 부모님, 성우형, 그리고 친구들한테 작별인사를 했다. 직원들 부모님한테도 인사하는걸 잊지 않았다. 손을 흔들면 우리는 무언의 약속을 했다. ‘괜찮을거라고’. 그렇게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을 땠다.
 
비행기 안에서 난 수많은 상상을 했다.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잘 살수 있을까?” 라는 상상. 하지만 그 상상을 깬건 창가 쪽에 앉아 있던 내 직원 은지씨가 말을 건 순간이었다.
“팀장님, 요기 좀 보세요”
“어디요?”
“요기요.” 이 말을 하고 은지씨는 손으로 창문을 가르켰다.
“하늘 좀 보세요. 정말로 아름답죠? 인도네시아서 있을 일들이 다 좋을거라는 징조인가봐요.”

그말을 들은 나는 지윤씨가 손가락으로 가르킨 창문을 봤다. 내가 본 하늘이 정녕 내가 자주 보는 그 푸르고 안개빛이 도는 하늘이 맞나 싶었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순간은 너무나도 환상적인 장관을 만들어 냈다. 붉은 하늘과 그 하늘을 빽빽이 수 놓은 구름들. 그 하늘을 보며 난 결심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잘 살아보자고. 아니, 잘 살 수 있을까?
 
-제 2편 :슬라맛다땅디 인도네시아-

약 7시간의 비행 후 수까르노하따 인도네시아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입국 절차 다 밟고 그리고 내 짐 찾고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후끈한 공기가 나를 제일 먼저 맞이했다. 역시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나라라 공기 마저 뜨거웠다. 나가자마자 ‘ㅁㅁ 회사’라고 쓰여 있는 플랫폼을 들고 있는 사람을 봤다. 그 사람을 보자마자 난 웃음만 나왔다. 바로 내 회사 동기인 지민이였다. 근데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그게 뭔가 잠시 고민하고 있었는데 “형!” 하고 지민이가 날 불렀다. 반가운 마음에 사나이답게 안았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지민이도 6개월 전에 해외 발령났었다. 하지만 지민이가 비행기 탈 때까지 어디로 발령났는지 얘기는 안 해줬다. 내가 아는건 동남아시아로 발령났다는건데 인도네시아 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형! 오랜만이죠!”
“지민아! 너 동남아로 발령났다더니 인도네시아였어?”
“네. 그저께 부장님이 형네 부서가 요기로 발령난다 그래서 이것 저것 준비 많이 해놨어요.” 아주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 그럼 미리 얘기해주지. 얘기해주면 뭐라도 사가지고 오는거였는데…”
“아녜요. 요기에 있을건 다 있어요. 그리고 본사에서 필요한 한국 물품 택배로 보내줘요.”
“아 그래? 그럼 다행이네.”
“네. 먼저 차에 타죠 형.”
“알았어.” 지민이가 준비한 차량은 2대. 나 포함해서 6명이 타기에 충분한걸로 가지고 왔다. 한대는 지민이가 직접 그리고 나머지 한대는 기사가 몰고 왔다.
“지민아, 요기선 기사를 뭐라고 불러”
“아.. 이쪽은 Herman이라는 기사예요. Pak Herman, 그러니까 빡 헤르만 이라고 부르면 돼요.”
“알았어.”
 
아직 인도네시아어를 전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지민이가 Pak Herman보고 내 짐 그리고 직원들 짐 싣는걸 도와주라고 했다. 짐 싣고 의자에 앉으려고 했는데 뭔가 어색해서 깜짝 놀랬다. 바로 운전석과 조수석이었다. 한국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데 요긴 왼쪽에 있어서 조금 어색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가 다 차에 탑승했다. 수까르노하따 공항에서 Tangerang 까지 약 40분 걸린다고 했다. 밤이니까 막혀서 길면 1시간정도 걸린다고 지민이가 말해줬다. 난 알겠다고 하고 이어폰 끼고 음악 듣고 있었다. 음악 들으면서 창밖을 봤는데 아까 하늘에서 봤던 하늘과는 달리 어둡고 깜깜한 하늘이 나를 반겨줬다. 별빛이 하나도 없는 하늘을 보며 Tangerang으로 갔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는지 깨어 있을 때 벌써 차는 Tangerang에 다 도착했다고 한다. 지민이가 옆에서 뭐라고 얘기했는데 이어폰 끼고 있어서 잘 안들렸다. 이어폰 빼고 지민이한테 다시 물었다. “뭐라고? 미안 아까 이어폰 끼고 있어서 잘 안들렸어.”“괜찮아요. 지금 우리가 갈 곳은 Lippo Village이라는 곳인데요, Tangerang안에 있는 지역이에요. 요기에 한인들이 많이 살아서 간혹 한인들 마주할수 있어요.”
“아 그래?” 지민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난 안심이 들었다. 일단 외진 곳이 아니니까. 그리고 한국인이 있다는거에 대해 좀 놀랐다. 한국인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한인들이 많이 사시는 곳이라니까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지민이가 옆에서 내비게이션처럼 안내해줬다. “형 요기는 Lippo Village 서쪽이에요. 요기 가면 Taman Beverly Golf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가 우리 숙소가 위치해 있는 곳이에요. 숙소가 깔끔하고 안전한 곳이니까 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알았어. 고맙다” 지민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생각했던 걱정은 없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해서 우린 Taman Beverly Golf에 도착해서 짐 풀고 있었다.
 
직원들이 하나 둘씩 숙소에 들어가자 마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뭐지 싶어서 들어갔는데 숙소 시설이 너무 좋았다. 내가 생각했던 거 보다 훌륭한 숙소였다. 방도 많아서 1인 1실 할 수가 있었다.우린 짐을 다 풀고 샤워 하고 넓은 책상이 있는 거실로 모였다. 차례대로 오늘 인도네시아로 온 소감 말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짰다. 뭐든 잘 될 것만 같았지만 큰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인도네시아어다. 우리는 인도네시아어를 아예 모르는 순수 한국인이었다. 지민이는 인도네시아어를 하지만 간단하게 하기 때문에 현지인처럼 현란하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린 어쩔 수 없이 인도네시아어 레슨을 끊기로 했다. 일단 내일 아침에 오늘 정리 못한거 다 정리하고 레슨 끊고 본격적인 인도네시아 생활을 하기로 다짐하고 다들 방에 들어가서 잘 준비를 했다.

방에 들어가서 난 나머지 내 짐을 정리했다. 정말 다행히도 난 그냥 몇벌의 옷 그리고 바지만 준비해서 정리할 짐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인도네시아가 열대지방이기 때문에 한국과는 다르게 계절이 2계절 밖에 없었다. 화창 (더운) 날 그리고 비 오는날. 2개의 날씨다. 가끔 화창한데 비가 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걸 스콜이라고 부른다. 갑자기 오는 비. 그래서 동남아에서는 아무리 날씨가 화창해도 우산은 필수라고 했다. 짐 정리를 다 하고 침대에 누워서 인도네시아에서의 아침은 어떨까라는 상상과 함께 잠들었다.아침에 일어나서 핸드폰을 봤는데 새벽 5시였다. 내가 원래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아닌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도네시아가 한국보다 2시간 더 느리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한국에서 매일 7시에 일어나는게 습관화가 돼서 이렇게 일찍 일어났나보다 싶다. 그렇게 난 잠을 더 잤다. 다시 일어나보니 아침 9시였다. 팀원들 다 깨우고 오늘은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가기로 했다. 일단 핸드폰 SIM부터 바꾸고, 전화번호 등록하고 그리고 인도네시아어 레슨 끊어야 되니까 부지런히 움직였다. 핸드폰 SIM 그리고 전화번호 등록은 지민이 도와줬다. 그리고 한국어 레슨은 지민이 아는 지인께 부탁드렸다. 그 분이 한국인인데 인도네시아 한국어-인도네시어 강사셔서 우리를 선뜻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난 인도네시아 생활을 시작했다. 첫째주는 아직 만만했다. 내가 배원 인도네시아어는 Apakabar, halo, selamatsiang, selamat sore, selamatdatang, 등등 아직 기초 단계의 인도네시아어였다. 기초여도 난 새로운 언어를 배웠다는게 너무 뿌듯했다. 뭔가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았다. 지민이가 말하길 회사에서 1주일간 쉬는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주부터 회사에 나오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난 내 직원들을 모아서 투표를 했다.

“얘들아, 다 일로 와봐.”
“어디요?”
“거실로!” 그렇게 해서 다들 모였다.
“회사에서 우리한테 1주일동안 쉬는 시간을 주겠대. 우리고 인도네시아는 처음이니까 아마 요기서 적응하라고 쉬는 시간을 준 것 같아.”
“네.” “그래서 말인데. 우리 그 1주일동안 뭐 할래?” 이 말이 끝나자 마자 직원들의 의견이 분수 처럼 쏟아졌다.“저 요기 전통시장 가고 싶어요!” 옆에서 우진이 말했다.
“저는. 음. 국립 박물관에 가고 싶어요!” 민현이 소곤소곤 말했다.
“저는 마음대로요. 그냥 어디든 가죠.” 귀찮은 티 내는 수호가 말했다.
“아 그럼 저는 Jakarta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투어하죠!” 슬기가 슬기롭게 얘기했다. 이런 저런 의견이 많이 나와서 특정한걸 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정리를 했다.
 
“얘들아. 의견이 너무 많으니까 그냥 1주일 안에 너네들이 얘기한거 다 하자. 오늘은 좀 놀고 내일 시장에 가자. 가서 현지 음식도 먹고 물품도 사고. 어때? 찬성?”
“아 그거 좋네요. 그럼 그렇게 가시죠.” 그리하여 시작된 우리들만의 여행이 시작됐다. 내일 우리가 갈 시장은 아침에 가야지 한가한 시장이라서 조금 일찍 일어나서 가기로 했다. 차는 회사차 타고 가면 되니까 불만이 없었다.
 
아침이 밝고 따스한 햇살이 내 몸을 감쌌다. 먼저 일어나서 씻고 있는 지민이를 기다리면서 오늘 우리가 갈 장소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엄청 맛있는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들이 있다고 한다. 한 껏 기대에 부풀었다. 그렇게 씻고 직원들이랑 다 같이 시장으로 갔다. 시장 이름이 Pasar Lama라고 한다. Pasar은 한국말로 시장이라는 뜻이고 Lama는 오래된 이라는 뜻이라고 지민이가 얘기해줬다. 그래서 Pasar Lama는 오래된 시장 이라고 볼 수 있다. Pasar Lama입구에 내려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안 옮긴 것 같은데 벌써부터 맛있는 냄새가 났다. 10분 정도 둘러보다가 지민이가 추천해주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일행이 앉자마자 온갖 나물과 반찬 그리고 고기랑 밥이 나왔다. 우린 시킨적이 없는데 이렇게 많은게 나오니까 조금 어리둥절 했다. 그거 보고 지민이가 실실 웃었다.
 
“형,그렇게 까지 놀라실 필요 없어요.이건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 Padang, 빠당이라는 건데요 우리가 먹고 싶은 것 만 먹으면 돼요.”
“그럼 계산은 어떻게 해”
“우리가 먹은걸로만 계산해요. 반찬그리고 고기마다 달라요.”
“아 그렇구나. 알겠어.” 정말이지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식당은 처음 본다.그렇게 먹으려는 순간 난 진짜 깜짝 놀랬다.지민이가 밥을 손으로 먹고 있는 것이었다.너무 놀래서 버벅대면서 지민이한테 물어봤다. “야,너 왜 손으로 먹어? 요기에 숟가락 있잖아.”
“아 형.이건 손으로 먹어야 더 맛있어요.형 주위 둘러보세요.모두 다 손으로 먹고 있죠?” 진짜로 주위를 둘러보니까 현지인들이 손으로 맛있게 먹고있었다.
“형도 손으로 드셔보세요.” 지민이가 손으로 먹는걸 권유 하는데 난 아직 못하겠다.아직 소위 말해서 맨탈붕괴된 상황이다.누가 밥을 그리고 국이 자잘자잘 있는 걸 손으로 먹어? 정말이해가 안 갔다.
“나중에 형도 익숙해질거예요.오히려 손으로 먹는게 더 편할걸요?” 지민이가 밥 먹으면서 얘기했다.그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그냥 밥 먹자.” 난 절대로 밥을 손으로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그렇게 밥먹고 나가려고 계산하고 있는데 금액 때문에 놀랬다.우리가 먹은걸 다 합쳐서Rp. 100,000가 나왔다는 것이다.한국 돈으로 치면 약 만원. 성인 6명이서 배불리 먹었는데 만원 밖에 안나오다니.정만 놀라웠다.하지만 그 액수는 현지 물가에 반영하면 적지 않는 액수이기 때문에 무작정 싸다곤 할 수 없었다. 계산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아직이었다.영수증 처리와 거스름돈 주고 받는게 너무 느리다. 요기가 한국이었으면 빨리빨리 처리해서 진작에 음식점 나왔는데요긴 일하는게 너무 느리다.하지만 어쩌면 느린게 아닐수도 있다.우리가 빨리 일하는 것뿐이지.한국에서 생활한 나는 이 느린 속도의 일 처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그러자 불안감이 날 휩싸였다.나중에 내가 현지인들과 일하면 과연 내가 이 느린 속도를 버틸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과연 내가 참을수 있을까?이 현지인들과 같이 어울려서 생활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도 커져만 갔다.
 
*** 수상 소감
적도 문학상을 개최한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직 서툴고 미숙하고 실수 투성인 글이지만 넓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단편 소설을 쓰게된 계기는 그냥 단순한 호기심때문이였습니다.전 글을 읽는걸 좋아하지만 쓰는건 자신이 없어서 이 참에 ‘한번 써보자” 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게 됐습니다.그리고 이 공모전의 테마 “해외에서 살아가는 우리 삶의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창작의 끝은 없습니다.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고 보고 즐기는 모든 것이 창작의 시발점이 될수가 있습니다.이 공모전으로 인해 저 포함 글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이 창작에 더욱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저도 이 계기로 인해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해외에서 살아가는 모든 한인분들 그리고 한국에서 사시는 모든 외국인분들 힘내세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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