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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30) 오늘도, 엄마는 /조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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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86회 작성일 2024-07-07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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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엄마는

조은아(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전봇대처럼 서 있기만 해도 쪼르르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른다. 낮 기온 삼십이도. 체감온도 삼십구도. 도로에 뿌리 박고 있는 시멘트 기둥이 새삼 기특한 이곳은 일 년 내내 뜨거운 적도의 땅이다. 한국기업에서 받은 새해 달력에는 현지 공휴일과 한국 공휴일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설이 오 일 앞으로 다가왔다.


“간단히 해 간단히.” 

막내딸에게 이렇게 말하는 당신은 정작 일 년에 열두 번의 제사를 지내던 종갓집 큰며느리였다. 


“더운데 고생이네. 간단히 해 간단히.” 

본인도 그리하지 않았으면서 전화기 속 엄마는 또 딸에게 권한다. 알기에 그리하신다. 명절을 위해, 제사를 치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고되고 정신없으며 숨이 찬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는 일을 하려는 딸에게 엄마는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큰며느리라는 신분의 의미를 모르고 결혼했을까, 나는 가끔 궁금했다. 그 명함을 받은 대가가 어떤 건 줄 알았더라도 엄마는 그 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아빠의 부인이, 세 남매의 엄마가 되었을까. 평생 해내야 할 음식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무한의 반복임을 알았더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까? 좁고 아슬아슬한 인생의 끝자락을 걷고 있는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엄마에게 음식은 노동이었다. 누가 뭐래도 목격자인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가족의 생존을 위해 제공된 음식은 엄마가 치른 노동의 결과물이었고 짜디짠 엄마의 땀은 그것들의 밑간이었다. 아빠는 육 남매의 장손이셨고 우리 집은 종갓집이었다. 명절이면 엄마는 수십 명의 친지가 며칠간 먹고 남을 정도의 음식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시장을 돌아 재료를 사다 나르고 다듬는 데에만 열흘 남짓. 대파, 양파를 재채기와 함께 다듬어 두고 빻은 마늘이 적당한지를 가늠하고 생선 살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두고 매끈한 모양의 조기는 깨끗이 씻어 모셔두고 다진 소고기와 돼지고기에 당근과 버섯, 양파와 파를 다져 넣고 달걀을 떨어뜨려 동그랑땡 반죽을 하고 국 끓일 고기는 핏물이 빠지게 물에 담가 두고 산적용 고기는 간장과 설탕, 마늘, 간 양파와 배를 섞은 양념에 노란 뚜껑의 참기름을 더해 재워두고 말린 고사리는 물에 불렸다, 삶고 숙주와 시금치는 다듬어 삶아 물기를 꼭 짜두고 밀가루 전을 위해 야들한 배춧잎을 골라 진눈깨비 소금을 뿌리고 쭉 뻗은 쪽파를 길이에 맞게 따로 남겨두면 겨우 반 정도가 끝났다.


설에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건 단연 만두 속이었다. 정성스레 봉해두었던 김장 김치를 시린 손 달래가며 보물 꺼내듯 도마로 옮겨 쓱쓱 썰고 다졌다. 뜨거운 걸 만질 때도 차가 운 걸 집을 때도 똑같이 반응하는 엄마가 난 재밌었다. 찬 걸 쥐었는데 손이 델 때처럼 입을 모아 호호하는 걸 보며 일부러 웃기려 그러나 생각한 적도 있다. 일회용 장갑을 끼면 코딱지만큼이라도 덜 얼 텐데 엄마는 꼭 맨손으로 그 벌겋고 차가운 걸 만졌다. 미끈거리는 장갑 낀 손으로는 김치 맛이 나지 않는다나. 하긴, 엄마는 손으로도 맛을 보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김치를 다진 엄마의 손에서는 입냄새처럼 김치 냄새가 배어있었다.


그 많은 식구 입에 넣을 것과 싸 들고 갈 것까지 하려면 통 하나는 다 비워야 했다. 엄마는 세월이 알려준 계산법으로 만두 속 김치의 포기 수와 만두피가 될 밀가루의 양을 가늠했다. 온갖 재료의 맛이 녹아내린 김칫국물이 아깝다며 엄마는 그 시큼한 김칫국물을 따로 담아 보관하셨다. 엄마에게는 김칫국물 한 방울도 산적, 갈비찜과 매한가지인, 똑같이 노동을 치른, 그 시간이 담긴 음식이었다.


차례상엔 오르지 않지만, 온 식구가 먹을 잡채며 갈비찜 재료 준비까지 마칠 즈음이면 어느새 코끼리 발목이 된 엄마의 낯빛은 방전을 경고하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대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육체는 신기하게도 차례를 지내고 동기간 손에 바리바리 음식을 들려 보낼 때까지 용케 버티었다. 


그렇게 명절이 요구하는 모든 노동이 끝나면 엄마는 마치 시나리오의 정해진 다음 장면을 찍듯 꼬박 이틀, 심한 몸살을 앓느라 일어나지 못하셨다. 방전된 엄마가 기운을 회복하는 동안 우리 가족의 배를 채운 건 치열한 노동으로 빚어놓은 명절 음식이었다. 요리에 젬병인 아빠도, 아직 어렸던 언니 오빠도, 잡채와 전을 넣은 잡탕찌개를 맛있게 끓일 수 있었다.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맛이 없으면 안 되는 음식이었다.


돌아보면 엄마의 음식인 노동은 정작 당신을 위해서인 적이 없었다. 남편과 자식들, 친지를 위한 노동이었고 시간이었다.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실컷 먹고 나눌 수 있었던 음식들은 그러니까 엄마의 시간이었고 그녀의 세월이었다. 우리는 한결같았던 큰며느리의 인생을 함께 나눠 먹으며 자란 거였다. 엄마는 지난 몇 년간 처음으로 명절 음식을 하지 않으셨다. 아빠의 긴 투병과 장례를 치르는 동안 평생을 습관처럼 해오던 것들에서 잠시 멀어지셨다.


한인 슈퍼에서 사 온 냉동 만두피를 꺼내 놓고 나는 손을 호호 불며 김치를 다진다. 당신이 했던 짓을 그대로 하는 딸을 보며 화면 속 엄마가 한마디 한다. 거긴 비닐장갑도 없냐고. 체감온도 삼십 구도는 거짓말이다. 적도에서 김치를 다지고 있자면 체감온도는 오십 도가 맞다. 김칫국물을 따로 보관하는 이유를 깨달을 만큼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었다. 핏물처럼 똑똑 떨어지는 김칫국물을 보며 품고 있던 질문 말고 느닷없이 피어오르는 걸 엄마에게 던진다. 


왜 나이를 먹는다고 할까. 셈하지 않고 왜 먹지. 

“먹어야 사니깐. 살아야 나이도 들지. 나이 먹어 봐라- 이게 한번 살아봐라- 그 말이잖아. 나이를 먹는 건 산다는 거야. 그니까 살려고 먹는 음식이, 삶인 거야.”


어설픈 듯 묘하게 설득되는 개똥철학 논리에 따르면 이 뜨거운 적도에서 비지땀 흘려가며 만들어 먹는 이 만두도 곧 나의 삶이다. 무릎 연골이 닳아 일어나는 데만 한세월인 엄마는 샘나서 안 되겠다며 부엌으로 향하신다. 괜히 일 벌이지 말라는 잔소리를 나 몰라라 하더니 화면 속 엄마가 이내 까매진다. 


못살아…. 연민에 버무려진 일갈을 뱉으며 나는 마저 손을 놀린다. 안 봐도 빤한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십수 년간 보아온. 그래서 잘 아는. 오늘도, 엄마는 당신의 삶을 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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