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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90) 허삼관 매혈기 /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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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4,323회 작성일 2021-12-24 09:44

본문

<수필산책 190 >
 
허삼관 매혈기
 
강인수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식구라는 단어가 있다. 먹을(食)식 입(口)구, 즉 같이 음식을 대하는 관계이다. 이 집단은 함께 살아가면서 먹고 마시며 더 나아가 생활공동체를 함께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바로 가족이다. 부부를 중핵으로 피를 나눈 자녀와 같이 주거하는 이 집단은 부양의 의무가 필히 따라온다.
 
가끔 뉴스 매체에서 들리는 희한한 가족에 관한 사회문제들을 보면 무섭게도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주위에는 따뜻한 가족이라는 각각의 공동체가 살고 있고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부모들의 피땀을 보게 된다.
 
약 십 년 전 우리 앞집에 한 아기 엄마가 한국에서 온 짐을 풀고 있었다. 바루다땅인 셈이다. 막 자카르타에 도착했다는 뜻으로 이제 주재원 발령을 받아 서투른 인니어를 살랑 살랑 말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생소했다. 어느 날 밤 내내 울며 보채는 아기 울음소리에 아파트 복도를 지나치기 뭐해서 문을 슬쩍 열고 방문을 했었다. 거실에서 애를 엎고 빙글 빙글 제자리를 돌던 아기엄마는 이런 저런 사정을 이야기 하며 자카르타 생활의 어려움을 내 뱉었다. 보채던 아기는 어른들이 소곤소곤 대화하는 사이 금새 잠이 들었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해인이라는 아기의 엄마와 무척 친해졌다. 아빠가 깔리만탄에 있어서 주말부부 생활을 하기에 그 집에 자주 놀러 가면 방대한 책을 품고 있던 거실에서 떠날 줄 모르고 놀던 시절이 생각난다.“나는 이렇게 책을 많이 가져 온 집은 처음 봐요.” 하며 책 읽기를 함께 했었다.
 
책을 자주 빌려 보던 사이로 관계가 가까워질 즈음 “언니! 이 책 좀 읽어봐요. 재미있어요” 책장에서 꺼내든 책은 “허삼관 매혈기”였다. “매혈기? 중국작가? 위화?” 나는 별 대수롭지 않은 책인 양 받아와서는 책상에 툭 내려놓고 며칠이 지나서야 첫 장을 들췄다. 거침없이 읽혀나가는 소설의 내용과 대사와 정서는 마치 중학교 시절 하룻밤에 독파 해버린 펄벅의 “대지”를 읽는 듯 중국 현대사의 시대적 뒤안길을 보여 주기에 식사도 늦추고 단숨에 읽어 나갔다.
 
주인공 허삼관은 피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거두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우리 정서와 많이 닮았다. 문화대혁명의 시대에 물로 배를 채워가며 피를 만들고 그 피를 팔려 했던 허삼관 이라는 한 인간의 생애는 다 주고 껍데기만 남은 우리 부모세대와 맞물려 한참이나 여운을 줬던 작품이다.
 
대지에서 왕룽이 빈농의 신분에서 부를 이루기까지 차근차근 가족을 돌보고 부를 일궈내었다면 허삼관 매혈기의 허삼관은 중국의 격동기에 제법 그랬을 듯한 부정애를 선사한 한 인간의 이야기였다. 두 작품을 비교해가며 읽었을 때 가정을 이끄는 주체적 인간은 바로 가장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실 돌아보면 우리 부모님도 피 같은 돈을 벌어 자녀를 키우고 있지 않은가. 아버지만 허삼관 처럼 부양의 의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없이 어머니가 피땀 흘리는 가정, 조부모가 피를 팔 듯 가까스로 키워 내는 가정, 어머니 없이 아버지가 또 그러한 노력으로 가족을 이끌어가는 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이 시대의 허삼관이 있지 않을까.
 
 
 
자녀를 키우려면 제법 많은 돈이 필요하기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 자녀로 위안을 삼고 단조롭게 살아간다. 우리 자녀들도 언젠가는 피땀 흘려 키운 자녀가 본인들이었음을 스스로 깨우칠 날이 오겠지만 때로는 좀 부족한 듯 키우는 법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몇 일전 작은아이가 아이패드가 꼭 필요하니 사주셔야겠다고 해서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면 다음 달에 사주겠노라 약속을 했다. “엄마! 다음 달에 꼬옥!”이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손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작업한다. 문명의 혜택도 없이 산다며 궁시렁 거렸지만 못들은 척 하고 그 시기를 살짝 넘겼다. 물론 다음 달은 돈 나갈 날이 돌아 올 것이다. 카드 값이 또 한 백 만원 나가야 할 것이고 돌아서면 뭐가 이리 필요한 것들이 많은지 또 손을 벌리는 꼬맹이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어제는 갑자기 한국에서 큰 아이가 전화 와서는 ”엄마! 핸드폰이 카메라가 안 켜져요! 전화는 이상이 없는데 카메라만 말썽 이예요!” “전화만 잘 되면 그냥 써라! 했더니 시험 봐야 하는데 카메라 켜야 해요! 교수님이 시험 때 보시는데 카메라 켜야지요!”

그래서 급한 대로 네 아이패드로 시험 보거라 했더니 제발 빨리 해결해 달란다. “그래 그러면 약정을 걸어서 사라!” 했더니 아이폰을 그냥 사고 싶다고 백 이십 만원을 일시불로 카드로 긁자고 사정사정을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리하라 하고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작은 놈 아이패드와 큰 놈 아이폰 등 생각지 않던 돈이 이백 삼십여 만원이 카드로 지출될 예상이다. 애들 아빠는 용돈을 줄이겠다고 하고 아이는 싫다고 하고 대치 상황에 문득 허삼관 매혈기의 그 아버지가 생각났다.
 
“ 이것들아! 피를 팔아야 가르칠 수 있구나!” 라고 하니 피식 하고 아이가 웃는다. 남편에게 “여보! 곧 이것도 사야하고 저것도 사야하고” 한 시조를 노래하니 주섬주섬 옷을 입고 얼른 출근을 하는 모습이 허삼관 피 팔러 나가는 뒷모습처럼 보여서 마음이 짠했다. 지금은 코로나라는 또 다른 대혁명의 시대가 왔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가족을 부양 할 수 있는 것이다. 왕룽은 천지를 덮쳤던 메뚜기 떼와 싸워 일부 논이라도 건질 수 있었고 허삼관은 중국의 격동기를 지나며 피를 팔아 일가를 지켜내려 했다.
 
오늘 따라 아내 허옥란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너희 삼형제는 아버지가 피를 팔아 키웠다 이 말이다. 흉년 든 그 해에 집에서 매일 옥수수죽만 먹었을 때 너희들 얼굴에 살이라고는 한 점도 없어서 아버지가 피를 팔아 국수를 사주셨잖니” 지금은 미래 사회로 가는 전환점에 있다. 소설 속 흉년이 들었던 그 해는 정신적으로 마음 적으로 흉년이 든 지금의 코로나 시대와 같다. 우리 시대의 가장들은 피땀으로 이뤄진 육체와 정신을 팔아 한끼 국수를 지금도 사서 일가를 부양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피를 팔고 있는 우리시대의 허삼관의 노고를 기억하며 조금만 힘내라고 위로의 글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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