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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78) 격리의 기억 /이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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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2,076회 작성일 2021-10-01 10:12

본문

<수필산책 178>
 
격리의 기억
 
이병규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출국 날 아침, 공항버스 안의 나는 항상 불안과 초조로 가득하다. 온갖 출국에 관련된 서류들을 잘 챙겼는지 빠뜨린 물품은 없는지 굳게 입을 다문 캐리어를 열어서 내 눈으로 확인하고픈 욕구와 이 버스 안에서 저 큰 캐리어를 열었을 때 벌어질 몹시 불편한 상황의 경계에서 머리속에서는 몇 번을 캐리어 잠금 장치를 풀었다 열었다 하곤 한다.
 
이미 별도 개인 기내 가방은 10분에 한번 씩 여권과 지갑이 잘 있는지 접종증명서와 PCR 결과지를 확인했고 어디 갈 것도 아닌 이것들의 안위를 확인한다. 어쩌면 가장 평화로울 수 있는 이 시간을 나는 부질없는 반복으로 망치고 있는 중이다. 어느 새 공항버스는 올림픽 대로로 접어들었다.
 
일요일의 여유로운 차량의 움직임에 맞춰 한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히 흐르고 동서로 길게 뻗은 강변북로 너머 빌딩숲은 언제 또 오겠냐며 아쉬움에 나를 배웅한다. 예기치 못한 역병의 창궐로 1년 반 만에 온 한국인데, 때마침 터진 델타 변이로 지인들과의 조우는 다 미루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만 후다닥 처리하고 급하게 다시 출국을 해야 했다. 직장동료나 친구들 만나는 행위 하나하나가 지금은 민폐였고 특히나 5만 명 확진자가 넘어가는 나라인 인도네시아에서 온 나는 반가운 지인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 한 덩어리로 보였을 것이기에…
 
공항 도착 후, 입국 수속 데스크에서 수하물을 맡기고 학창 시절 기말고사 성적표를 기다리던 모양새로 접종 증명서와 PCR 검사 결과지 확인 과정을 마치고 이제는 좀 편안한 마음으로 출국장 게이트를 지난다. 역병의 시대에도 공항은 사람이 조금 줄어든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런 시절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오고 가고 있다.
 
7시간이라는 비행을 마치고 어둑해진 자카르타가 나를 맞는다. 공항에서 일련의 서류 작업을 끝내고 1시간여를 달려 까라왕 지역에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한 이후 짧은 체크인 과정을 거쳐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드디어 7박 8일의 격리를 시작한다.
 
자카르타에서 격리의 시작은 호텔 체크인이 아니라 PCR Test로부터 시작한다. 흰색 방역복을 입은 마치 바이오 해저드 게임에서 보는 듯한 무시무시한 복장을 한 의료진들이 내 방으로 쳐들어오면 나는 죄를 지어도 아주 크게 지은 대역 죄인 마냥 그들이 안내하는 대로 나의 코와 목을 내줘야 한다. 하얗고 기다란 얄밉게도 얇은 막대에 겉으로는 뽀송뽀송 해 보이지만 내 몸 속 어딘가를 헤집고 다니면 몹시도 아플 것 같은 솜뭉치를 끝에 메단 검사 도구로 목적지를 안내할 때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고글을 쓴 의료진이 나의 코와 목구멍을 이리저리 뒤집는다. 재채기를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데 재채기를 하면 또 죽을 것 같은 그 경계의 아득함에 뇌가 정지할 것을 때가 와서야 겨우 작업은 끝이 나고 나의 코와 목은 해방을 맞는다.
 
 
격리 1일차, 6시 반에 아침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호텔 직원의 문 두드리는 소리로 눈을 뜬다. 어제 밤 꽤 늦은 시간의 체크인과 PCR 검사 그리고 짐 정리로 늦게 잠든 탓에 시차를 무시할 정도로 현지 시간에 적응했다. 이른 조식을 먹고 커튼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 호텔 바로 앞 도로 위로 일상을 시작하는 차량들과 사람들이 지나간다. 평화롭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우선 유투브를 켜고 평소 관심 있던 영화 줄거리를 요약해주는 컨텐츠 시청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이거 생각보다 좋은데? 밥도 갖다 주고 빨래도 알아서 해주고.” 12시에 칼 같이 갖다 주는 점심을 먹고 또 하는 둥 마는 둥 형식적인 홈트레이닝을 끝내고 또 침대에 누워서 그 동안 못봤던 책을 꺼내서 읽고 최근 뉴스를 보면 시간을 보낸다.

인도네시아의 계절은 한국과 달리 항상 여름이고 변화가 없다. 시간의 흐름은 우기인가 건기인가 정도로만 구분이 된다. 창밖으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풍경으로 하루가 지나갔음을 느끼고 차량의 경적 소리와 오토바이의 소음으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소일거리로 격리의 첫날은 별 문제 없이 아주 느리지만 지겹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하루의 격리는 생각보다 편안함으로 무료함이 덜 했고 평소하지 못했던 것들을 나만의 공간에서 맘껏 누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밖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 못한다는 아주 약한 제약을 빼고는.
 
격리 2일차, 같은 시간에 도시락이 배달이 오고 어제 늦게까지 보다가 잠든 영상을 다시 틀고 침대에 눕는다. 책을 조금 읽다가 홈트레이닝을 짧게 하고 굳이 안해도 될 것 같은데 샤워를 한다. 밖에서 차량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늘어나고 나는 책을 읽는데 조금 불편함을 느낀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시 영상을 보다가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모바일 게임을 몇 개 골라 설치하고 해본다. 어제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점심 도시락이 도착했고 맛있게 먹은 후 다시 책을 좀 보다가 모바일 게임을 한다. 책을 다시 꺼내서 읽다가 유투브를 틀고 또 다른 영상을 찾았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들의 컨텐츠를 서핑하고 애들 온라인 수업이 끝날 때쯤 한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영상통화를 한다. ‘음… 이거 좀 이상한데…’ 저녁밥을 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격리 3일차, 새벽 4시 기도소리와 함께 깼다. 격리의 재앙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났는데 다시 잠들지 못했다. 밥은 2시간 뒤에나 온다. 캐리어를 열어 짐 정리를 다시 해보았다.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책을 읽기에는 눈이 아팠고 휴대폰 스피커를 크게 켜고 한국 라디오를 들어봤다. 평소 즐겨 듣던 라디오 DJ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창밖은 아직 어두운데 왠지 복도 양끝으로 난 계단을 통해서 내려가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가 볼까하는 유혹이 머리에 맴돈다. 다행히 아침밥이 도착했다. 밥이라도 먹으면 시간이 갈 것 같아서 천천히 먹는데 아메리칸 블렉퍼스트는 당최 적응이 안된다. 점심이 빨리 와야 이 공허함이 사라질 것 같다. 공연히 리셉션에 전화해서 수건을 갈아 달라고 요청하고 세탁물 받으러 온 직원이 반갑기 그지없다. 이렇게 해도 아직 9시가 채 되지 않았음에 한번 좌절을 한다.
 
우리에 갇힌 짐승들이 이럴까? 식민시절 숨어 지내야 했던 독립 운동가들이 이랬을까? 점점 메말라가고 밥에만 집중하고 재미란 것이 없어지고 두통이 오고 창밖을 멍하니 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온몸이 벌레가 돌아다니는 듯 했다. 처음에는 무위도식하며 하루라는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이런 사육의 삶이 어쩌면 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흘을 채우지 못하고 방에서 나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나흘, 닷새, 엿새 그리고 이레가 되는 날, 마지막 PCR을 위해 흰색 방역복의 의료진들이 다시 나타났다. 7일 만에 보는 사람들이 반가웠다. 코와 목을 유린하던 하얀 솜뭉치도 반갑고, 고글도 오늘은 반짝 반짝 윤이나 보였다. 의료진들에게는 괜히 반갑게 “Apa Kaba!!”로 인사를 날려줬다.. 하지만, 그 시간은 매우 짧고 순간의 검사 시간이 끝나고 그 방에 나는 또 덩그러니 버려졌다. 점심이 와서 점심을 먹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니 괜히 눈물이 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숨어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그 무료함을 버텼을까? 지금 나와 같이 갇혀있는 세상의 수많은 소와 닭과 돼지들과 그 외 수많은 가축들은 어떻게 이 억겁과 같은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것일까? 지리멸렬하고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격리의 시간이 끝나는 여드레째 아침, 어제 밤에 이미 체크아웃을 위한 짐은 다 싸 놨고, 새벽부터 리셉션에 체크아웃 시간을 확인하고 PCR 결과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세상 즐거운 사람이 나였다.

마침내 나는 기나긴 어둠의 시간 끝에 세상에 토해내 졌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격리의 기억을 뒤로 한 채 집으로 향하는 차에 냉큼 올랐다. “Pak! Ayo Pu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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