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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09) 진지 잡수셨슈? / 김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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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053회 작성일 2020-06-0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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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109 >
 
진지 잡수셨슈?
 
김준규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운영위원)
 

설움 중에 배고픔처럼 큰 설움이 없고 하루 밥 세끼의 해결을 위해서 목숨 걸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근대화 이전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외치며 농사일을 지상의 제일 과제로 여기던 때가 반세기 전의 일이었다. 오죽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했을까? 생존이란 간절하고 애처로우며 두려운 경쟁이기도 했다. 아기는 태어나서 눈도 뜨기 전에 엄마 품에서 젖 달라고 보채며 운다. 생존의 본능이다.
 
염소들은 온종일 풀을 찾아 헤매고 거친 풀을 갈기 위해 어금니를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농경기술이 오늘 날과 같지 않던 시대에는 가을에 추수가 끝나고 애지중지 아끼던 곳간의 양식도 긴 겨울을 견디지 못했다. 이듬해 이른 봄이면 일찍 동이 나서 초근목피로 연명을 해야 했던 때가 그리 먼 옛날의 얘기만은 아니다. 자식을 많이 둔 가난한 아버지는 남의 집 머슴살이도 마다하지 않고 선 새경으로 받은 쌀을 가족의 끼니를 해결하는데 보태며 보릿고개를 넘기기도 했다. 또한 장마당에 내다 팔기위해 장작이나 닭 몇 마리를 허리에 꿰차고 나온 빈농들은 어깨에 빈약한 곡식자루를 들쳐 매고 장터를 벗어나 어둠이 짙어지는 밤길을 재촉해야 했다. 꺼지는 뱃속에 침을 삼키며 가장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처자식이 안쓰러웠던 시절이다.

 
나는 오남매 중 막내였다. 식사 때만 되면 전쟁 같은 만찬이 펼쳐진다. 가족 중에 상석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차려졌고 겸상에는 한두 마리의 생선과 된장국이 올려 있었다. 흥부의 자식처럼 나이 차이가 층층인 우리의 오남매는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아 바쁘게 움직이는 어머니의 손끝에만 온통 정신이 팔렸다. 둥근 앉은뱅이 식탁에는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고 맛깔스러운 반찬은 차치하고 보리밥 투성인 사기 밥그릇에 보일락 말락 한 쌀알의 행방에 눈알이 번뜩인다.
 
어머니는 늘 부엌으로 통하는 샛문 쪽에 앉아 천장을 보시며 혼자 식사를 하시었다. 무쇠 솥 밑에 깔린 누룽지 보리밥을 주걱으로 긁어 바가지의 모서리에 붙이고 된장 한 종지와 상추 몇 송이가 식사의 전부였다. 그 시절, 우리들의 소원은 배불리 먹는 일이었다. 길거리에서 어른을 만나면 "진지 잡수셨슈? 로 시작해서 아이들에겐 밥 먹었니? 가 그 시절의 유일한 인사였다. 서양 사람이 보기엔 미친 사람으로 오해 받을 만한 우리만의 독특한 인사법이다. 농부의 딸로서 대가족을 이루고 살던 나의 아내는 지금도 길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면 식사는 했느냐고 인사한다. 심지어 전화 수화기를 들고도 첫 인사가 다짜고짜 밥 먹는 얘기부터 꺼내든다.
 
시대는 많이 변했다. 철천지원수처럼 지겹던 가난의 시대도 막을 내리고 우리의 소원대로 배불리 먹고도 남는 시대가 도래 하였다.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때나 먹을 만큼 귀하게 여기던 고기가 요즘은 삼겹살에 갈비살이 대유행이다. 고기의 부위로 보면 기름이 많이 함유된 부위가 단연 인기다 바야흐로 가는 곳마다 배불러 죽겠다고 야단이다. 그래도 삼식이는 우리의 뇌리 속에서 생존본능을 들어내며 꿈틀거린다. 그놈의 목구멍이 무엇인지 밥 때가 되면 꾸역꾸역 몰아넣어야 하는 이유이다.
 
 
 
"밥 먹었니? 밥 살래? "오늘 밥은 내가 산다"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신세대 조차도 우리의 토종 인사법에 익숙해져 있다. 음식을 여럿이 함께 나누고 나면 계산대에서 식대 청구서를 놓고 빼앗는 사람, 뺏기지 않으려고 손사래 치는 사람들로 식당 안은 일대 소란이다. 어떤 외국인은 웬 싸움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래져 슬금슬금 피하기까지 한다. 배 불리 먹는 것이 최상의 기쁨이요, 많이 먹기를 권하는 후한 인심은 우리 조상들의 미덕이다. 떡 벌어진 푸짐한 음식상은 격조나 품위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국이나 일본의 음식 문화와는 다른 차원이다 한식문화의 특징은 많이 차리고 많이 먹고 많이 남아야 속이 시원하다. 음식을 권하는 표현 방법도  가히 놀라울 정도다. "더먹어, 많이 먹어"는 일상 적이고 "배 터지도록 먹어라"  "먹다 죽은 귀신은 빛깔도 좋다더라“
 
농담어린 이러한 용어는 우리에게 그다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나의 아내는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비워진 반찬그릇을 보고 참지 못한다 "아줌마 반찬 좀 더 줘요" 그러나 추가로 들어온 반찬은 으레 남아서 버려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산더미처럼 쌓이는 음식물 쓰레기는 처치 곤란으로 몸살을 앓는다. 음식 남긴다고 잔소리하는 아내 덕분에 나는 늘 뱃속이 벙벙하다. 이 시대의 부자병인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각종 암 환자로 병원은 늘 만원이다.
티비는 다이어트 식품이나 약품광고가 난무하고 기기묘묘한 살빼기 운동에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는가 하면 잔뜩 먹은 음식을 손가락으로 토해내는 괴상한 다이어트도 있다고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중략)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민요 아리랑의 어원이 어디에서 유래 하였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다만 꾸역꾸역 거친 밥알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그토록 넘고 싶었던 가난의 고개야 말로 어쩌면 우리의 아리랑 고개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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