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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04) 쓰기의 시대 / 신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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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8,681회 작성일 2020-04-3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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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
 
쓰기의 시대
 
신정근 / 수필가(한국문협 인니지부 명예회원)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쓰거나 글자를 찍고 있다. 두 개의 엄지손가락 혹은, 검지손가락 하나만을 짧은 순간 빠르게 움직이며 작은 액정화면에 자신만의 생각을 펼친다. 어떤 글은 온전히 자기만의 표현을 문자라는 매체로 구체화하였고, 어떤 글은 단순히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의 평범한 대화의 연속이었다. 그 소소한 시간을 사람들은 ‘쓰기’라는 매체를 통해 소비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사회관계망에 짧은 글을 게시하고, 핸드폰 달력과 다이어리 바탕에 일상의 계획들을 나열한다. 우리는 소음을 만들지 않는다. 옆 사람에게 구태여 소리 내어 안부를 물을 필요도 없다. 필요에 의한 질문과 답변이 작은 핸드폰 화면에서 소리 없이 교류되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현재의 시대는 ‘글쓰기’의 시대가 되고 있다. 블로그와 트위터에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쓰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중 반응이 좋은 글들은 종이책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책 한 권쯤 출간한 ‘보통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상에서 얻어진 시 한편, 산문 한 단락으로 타인과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쓰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인터넷을 보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쓰던 상관없이 익명의 누군가를 헐뜯거나 노골적으로 저격하고 우리말의 맞춤법과 문법을 무시한 채 그저 글자 수를 늘이거나 줄이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신문과 잡지를 벗어나 수 억 개의 낱말이 돌아다니는 인터넷 환경 속에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이유도, 목적도 상실한 분노를 퍼붓고 있다. 단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서 댓글이라는 공간에 날카로운 단어와 문장들로 칼과 창을 만들어 상대방에게 겨누기 시작한 것이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SNS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으며 다른 이들에게는 그것이 흑사병보다 더 무서운 소문의 불씨가 되어 그들의 가슴을 태우고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있다. 쓰는 일에는 그에 걸맞는 책임의식과 또한 적당한 역할과 상대에 대한 존중은 물론 읽는 사람을 위한 설명이 수반되어야 한다. 책임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잘 쓰기 위해, 더 정확히는 잘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글쓰기 공부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글쓰기가 취업을 위한 수단이 되고, 밥벌이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잘 써진 글은 식탁 위 사기그릇에 가지런히 담겨진 맛난 음식처럼 한 번 더 눈이 가게 되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 더 읽고 싶게 만든다. 절제되고 정제된 문장들은 마치 일식에서 스시장인의 스시처럼 정갈하게 우리 앞에 놓여 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나 그렇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의 어법이 다르고, 기자의 화법이 다른 것처럼 글쓰기는 작자에 따라서 수공예품이 되기도 하고, 대량 생산된 기성품이 되기도 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읽는 글이라고 하여 가치가 덜 한 것은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읽는 글 일수록 글의 내면이 피폐해 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 읽는다는 것, 그것은 양자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요즘엔 너나 할 것 없이 한 줄, 한 문장이라도 더 쓰려고 애쓴다. 노트북의 자판을 온 종일 두드려도 제 값이 나오지 않는 글을 사람들은 왜 쓰려는 것일까. 핸드폰 액정화면을 아무리 터치해도 그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뭔가를 생산하는 사람들에 파묻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기 힘든 데도 왜 쓰는 것을 멈추지 않을까. 나 또한 컴퓨터 앞에 앉아 하얀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검정색 자판 위에 그려진 21개의 모음과 19개의 자음들을 가지고 완벽하게 조립하느라 여념이 없다보니 딱히 명쾌한 답을 찾기 힘들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 글을 쓰는 사람들의 시대가 되어버린 것은 아마도 각자의 생각을 곱씹어서 자신만의 언어로 전달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여전히 일방적이고 공격적이며 난폭한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손끝으로 꾹꾹 눌러서 상대방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우리 시대에 당면한 ‘어떤’ 말을 전하고 싶어서 글을 쓰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사랑의 언어이든, 용서의 언어이든, 위로의 문장이든, 무엇이든 간에 단지 글을 쓰면서 소통하고 싶은 글쓴이만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져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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