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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01)새들의 귀향 /하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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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915회 작성일 2020-04-09 21:46

본문

<수필산책 101>
 
새들의 귀향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옛 직장 동료 중 한 사람이 삼십여 년 간 인도네시아 삶을 접고 귀국길에 올랐다. 이제 남아있는 옛 동료들은 손꼽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같이 왔던 누군가 하나씩 떠날 때마다 나의 귀향 시간도 점점 임박해 오는 기분이 든다. 새들이 해질녘 강가 둥지를 찾아가듯이 사람들은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이 있는 듯싶다. 그 습성은 남의 나라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생겨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낯선 장소, 음식 그리고 관습 등에 무의식적으로 저항하는가 보다.
 
내가 처음 자카르타 수카르노 하타 공항에 도착했던 그날 세관 심사대에서 김치와 젓갈 통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한국남자 생각이 난다. 그 남자는 공장 동료들이 김치, 젓갈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한다고 울상이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곳과 익숙해져 있던 음식 또는 습관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살면서도 일이나 임무를 다하면 고향 땅으로 돌아가려는 회귀 본능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처음 이 나라로 와서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던 날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중동 근무를 하다 귀국한 친구가 보냈던 편지였다.
“친구야, 우리는 일을 해주고 대가로 돈을 받는 해외 용병임을 잊지 말자. 어디서든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의무를 다해주는 가치 있는 용병으로 살자.” 
 
한국에서 일이 끝나면 다시 중동으로 돌아간다는 친구의 편지를 버리지 않고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던 이유는 “결과를 걱정하지 말고 끝까지 나의 의무를 다하자” 라는 이 말 때문인 듯싶다. 이 말이 해외생활에 자꾸 약해져 가는 내 마음에 용기와 희망을 실어주는 듯 싶었다. 친구의 편지 덕이었는지 아니면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까지 이곳 인도네시아 땅에 살아 남아있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10년 주기 홍역처럼 깊은 정체성 위기나 해외 근무의 회의감이 몰려 올 때가 있다. 이것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짧은 편지 덕이었는지도 모른다.
 
신발 산업이 무너지던 격동의 시절, 인도네시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부산신발 해외진출 선발대원들 중 한 사람으로 나는 인도네시아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홍콩을 거쳐 날아 온 비행기는 창 밖 먼 곳으로부터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공항의 불빛이 다가 오고 있었다. 이곳이 내가 뿌리 내려야 할 새로운 땅이다. 내 가슴은 아폴로호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 달에 첫발을 내릴 때만큼이나 들떠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는 늦은 밤 수카르노 하타공항 활주로에 미끄러지며 날개를 접었다. 심호흡을 하며 비행기 문을 나서는 순간 뜨거운 열기가 내 얼굴에 훅하고 와 닿았다. 그 뜨겁고 습한 가마솥 열기에 압도당하며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대로 향했다. 사계절 나라에서 살아왔던 내가 인도네시아 땅에서 가장 먼저 적응해야 할 것이 적도의 더위임을 실감시켜 주는 순간이었다. 입국심사대 높은 곳에 앉아서 입국자들을 근엄하게 내려다보며 여권과 입국서류들을 꼼꼼히 대조하며 확인하는 입국심사 공무원들의 눈에는 모든 입국자들이 범죄자 또는 범죄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중국계 인도네시아 사람으로 보이는 내 앞의 남자가 돈을 넣은 여권을 심사대 위에 올려놓고 미소 짓자 도장 찍는 소리가 들리고 여권 확인이 순식간에 끝났다. 순간 나는 당황해서 우물쭈물 시간을 놓치고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여권을 내밀었다. 입국심사 공무원이 어떤 일로 왔으며, 무엇하러 왔느냐? 숙소는 어디냐 등등을 물으며 시간을 끌며 내 눈을 살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눈치 없는, 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여권 서류와 내 얼굴을 두 번, 세 번 확인하던 입국심사 공무원이 던지듯 주는 여권을 들고 입국심사대 밖으로 나왔다. 먼저 나간 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은 이미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이 나라 경제 75%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 5% 인구 화교의 힘인가?
 
가장 오른 쪽 세관 심사대 앞에 저승사자처럼 버티고 있는 세관원들에게 한국사람 한명이 경상도 사투리로 언성을 높이며 항의를 하고 있었다. 외국에 나가서 내가 만나는 한국 사람은 나에게는 항상 우리 편이다. 혹시나 저 우리 편이 언어 문제가 있어서 그런가 하고 도와주러 가 보았다. 세관에서 그 남자가 들고 온 멸치 젓, 고추장, 콩잎, 멸치 등을 압수하자 노무자인 듯 보이는 그 남자가 심각한 얼굴로 항의를 했다. 공장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이것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한다고 그 책임을 세관원들이 질 것이냐고 억울해 하고 있었다. 벙어리가 말이 안 될 때 소리 지르듯 그 남자가 거칠게 손을 흔들며 설명하는데 인도네시아 세관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 남자는 세관 심사대에서 실랑이하며 팔을 흔들다 심사대 아래 바닥에 반찬 담은 유리통을 떨어뜨려 버렸다. 순간 심사대 주변은 발효 김치와 젓갈의 냄새 폭탄으로 초토화 되었다. 그 한국인은 바닥에 깨져서 널 부러져 있는 김치와 멸치젓갈을 가지고 갈 수 없게 된 일을 대단히 소중한 무엇을 빼앗겨 버린 것처럼 억울해 했다. 한국식 발효식품 김치와 젓갈의 절대적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놀란 세관원들은 나보고 이 시끄러운 남자를 데리고 빨리 나가 달라며 내 짐 검사는 하지도 않았다.
 
이 험난한 관문을 다 통과한 후 무한자유를 기대하며 입국장 통로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은 기대했던 확 트인 자유의 시원한 풍경이 아닌 검은 쇠창살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마치 내가 유치장에 스스로 갇힌 듯, 이 철창은 공항 안의 세상과 공항 밖 세상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검은 쇠창살 뒤에 다닥다닥 붙어 이름 적힌 종이를 흔들어대는 현지인들, 쇠창살 밖 어두운 공간에서 빨아대는 수많은 담배 불들은 마치 혼을 빼 가는 오우거(Ogre) 도깨비들의 빨간 눈동자로 보였다. 쇠창살 뒤 어디선가에서 내 이름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우선 "여기요"라고 대답부터 먼저 해놓고 소리가 나는 곳을 유심히 살폈다. 내 이름 적혀있는 종이를 든 현지인 옆에 J대리가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를 마중 나온 조 대리는 공항으로 오는 차가 밀려 늦었다고 여러 번 미안하다고 했다. 그 아수라들이 우글거리는 공항 출구를 벗어나니 분노했던 마음들이 썰물처럼 싹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부산 신발의 인도네시아 진출 정착에 교두보 역할을 했던 선발대 동료들이 이제 하나, 둘 세월의 장갑을 벗고 무척 낯설어져 버린, 어릴 적 추억만 남아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땅 어느 곳에 뼈를 묻을 것처럼 남아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던 친구도 오늘, 귀국 행 비행기에 올랐다. 해가 지니 새들은 모두 제 살던 강가로 어릴 적 풀숲 둥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 날아가지 못한 새들은 고향이 있는 북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허공을 응시하며 나뭇가지에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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