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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81) 행복의 균형이 오늘도 무사하기를 / 한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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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2,126회 작성일 2019-11-21 10:13

본문

< 수필산책 81>
 
행복의 균형이 오늘도 무사하기를
 
한화경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인도네시아에서 일단 도로에 넘치는 오토바이를 보면 놀란다. 한 도로에 차와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광경은 정말 대단하다. 마치 오토바이가 바쁘게 움직이는 개미 떼처럼 보인다. 교통체증이 심할 때는 거북이 걸음같은 차 사이를 오토바이는 물속의 자유로운 물고기처럼 헤엄쳐 가는 것 같다. 그럴 때는 오토바이가 부럽고 차는 과연 이 도로를 뚫고 갈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10cm도 안되는 차창 옆을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광경을 한국에서 상상이라도 해봤을까? 오토바이가 어디서 나와 이렇게 많은 지 너무나 신기해서 차창 밖 풍경을 사진 찍기에 바빴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데 나도 모르게 놀라서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차량 옆을 유유히 지나가는 오토바이에는 아빠가 4, 5살 된 남자아이를 앞자리에 태우고 그 뒤에 젊은 엄마가 어린 쌍둥이 여자아이를 1명씩 양손에 안고 타고 있었다. 그들은 아빠 운전에 온몸을 맡기고 막힌 도로를 뚫고 여유롭게 빠져나간다. 오토바이와 택시가 발달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2인승 오토바이는 흔히 보지만 5인승 오토바이에 놀랐고 타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너무 위험해 보여 가슴이 아팠다. 젊은 5인 가족 모습이 한 장의 사진처럼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사고라도 나면 그들의 행복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안쓰러웠다. 헬멧도 없이 달라는 모습을 보니 동전의 양면과 같은 행복과 위험을 느꼈다. 부디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수많은 오토바이를 바라보았다.
 
우리 가족은 찌까랑에 산 지 1년이 넘었다. 이곳에 오기 전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조사했던 인도네시아와 살면서 체험가는 인도네시아는 전혀 다른 것 같다. 인도네시아를 알아가는 첫 시작은 도로였다. 약 40킬로 떨어진 자카르타의 학교까지 아이들이 매일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에서는 걸어서 10분도 안 걸린 학교에 다녔던 아이들이, 중국으로 이사를 갔을 때 30분 동안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했는데 그것도 고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니에 와서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승용차로 4, 5시간을 차에서 보내야 했고, 많은 시간과 돈을 도로에 버려야 했다.
변화도 이런 변화가 있을까? “이것은 무리다!”, “이건 아니야!” 하며 머릿속 경보기가 자꾸 울렸다. 인도네시아에서 경험한 등교길은 중국에서의 스쿨버스 30분을 좋았던 추억으로 바꿔놓았다.
 
 
어두운 새벽의 고속도로도 막혀서 속도를 못 냈고 차가 서 있을 때도 많아 답답했다.지각하지 않기 위해 날마다 GPS 검색하면서 고속도로가 답이 없으면 국도를 뚫고 어떻게든 학교에 가야만 했다. 가끔은 나도 학교에 갈 일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인도네시아 초보인 우리에게는 국도로 학교까지 2시간 가까이 걸린 그 길은 마치 모험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좁고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피하며 달리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운전한 것도 아닌데 온몸에 힘이 빠져있고 피곤했다. 겨우 적응하면서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던 어느 날, 막힌 도로 사정으로 3시간 걸려 결국 지각 처리를 받았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속상했던지 누구에게도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도로 상황과 더운 날씨가 결국 그날 감정조절 장지가 고장이 나서 폭발한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평소 말이 없던 남편이 생각 끝에 고생시켜서 미안하고 다음 학기에는 가족만 한국에 돌아가라고 이야기를 건네왔다. 그런 일이 있었냐고 들어주기만해도 되는데 바쁜 남편이 걱정하게 만들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돼서 가족들 응원해줘도 모자랄 판에 먼저 무너져버려 미안했고 나의 작은 행동, 한마디에 지금 행복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과 남편의 격려가 냉각수가 되어 폭발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고, 이것이 가족인가 싶어 미안하면서 무척 고마웠다. 몇 년 또는 몇십 년째 살고있는 선배들은 찌까랑이 살기 좋다고 한다. 이제 겨우 적응 중인 나에게는 바로 와 닿지는 않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여기에 사는 이유는 남편 직장때문인데 만약 아이들을 생각해서 학교 근처로 가려면 남편과 떨어져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 가정도 많고 반대로 남편이 자카르타에서 장거리 출퇴근하는 가정도 있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8년 가까이 떨어져 살아봤기에 아빠가 없었던 그 시간은 생각만 해도 아쉬움이 많다. 아이들 모두 중고생이 된 지금은 앞으로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아빠 따라 외국까지 나왔는데 가능한 한 함께 보내고 싶은 생각이다. 아이들도 가족이 함께 사는 소중함을 느끼고 있기에 아빠 없이 살면 안된다고 힘들지 않은 척을 해준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사이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웃 엄마들의 도움이 너무 컸고 말할 수 없이 고맙다. 많은 도움 덕분에 지금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찌까랑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친해지고 서로 통하는 세계가 생기면서 조금씩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자카르타에 가면 빌딩 숲을 우러러보게 되고 큰 몰에 들어가면 같은 인도네시아 생활에도 생활 문화권이 이렇게 다르구나! 느낄 때도 많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긴 시간 막힌 도로에서 고생하면서 돌아오는데 찌까랑 입구에 들어오면 안도감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조금씩 보금자리가 있는 이곳에 정이 들었다. 문득 서울 친구 집을 방문하다가 시골로 돌아가는 “서울 쥐와 시골 쥐”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새 우리는 찌까랑 쥐가 되어가고 있었고 서울 쥐는 이해 못할지라도 시골 쥐만의 안락과 평안함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못 살겠다고 시끄럽게 울렸던 머리 속 경보기 소리도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새벽이면 가게 앞을 청소하고 문을 여는 모습, 아침 식사를 파는 아줌마, 새벽시장 보고 비닐 봉지 들고 집에 가는 사람, 오토바이 뒤에 교복 입은 아이를 태우고 집을 나서는 부모들 모습, 혼잡한 도로 한복판에서 위험하게 교통정리 하고 돈을 받는 사람들… 이렇게 아침을 시작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던 것은 새벽 국도를 지날 때였다.오후에는 과일가게에 진열된 과일들도 보이고, 장사하는 사람들, 이슬람 사원, 그곳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바나나 숲, 논밭, 먼지 날리는 더운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집 앞에서 엄마와 아이들이 지내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환경은 같은데 마음 상태에 따라 인도네시아 생활이 얼마든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1년 이상 장거리 왕복을 하면서 나름대로 훈련이 되었는지 한국에 잠깐 들어갔을 때 새벽에 움직이는 스케줄에도 힘들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인도네시아 스케줄 보다 더 자는 건데 괜찮아요” 하며 강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간과 돈을 길에 깔고 고생한다고 생각할 때도 많았지만, 차량정체로 악명높은 적도 나라 도로가 인내심과 적응능력을 길러주는 마음의 훈련장이 되어준 것 같다. 완전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아이들 보면 마음 아픈 날도 많았지만 나름 값 진 경험을 하고 있다고 아이들을 응원하고싶다.
 
 
오토바이 한 대에 5명의 가족이 타기엔 위태로운 모습이다. 그러나 조금 무리한 모습일지라도 그 가족에게는 함께 이동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 가족도 함께 살기 위해서는 조금 고생스러운 등교도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모습이다. 조금씩 적응을 하며 살고 있다. 종이 한 장 차이의 행복과 위험은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약간 무리가 따른 행복일지라도 우리는 모두 간절하게 행복을 믿고 살아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열악한 도로 사정에서 삶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폭탄 소리 같은 천둥과 번개가 치는 본격적인 우기에 접어들었다. 새벽에 기도 소리부터 시작하는 정성이 쌓인 땅 인도네시아에서 부디 오늘도 길에서 모두가 무사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모두의 행복의 균형이 오늘도 무사하기를 기원하면서 긍정의 마음으로 앞으로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기를 믿으며 이곳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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