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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75) 데모, 그 우렁찬 함성 뒤에는 / 엄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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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976회 작성일 2019-10-10 12:45

본문

< 수필산책 75 >
데모, 그 우렁찬 함성 뒤에는
 
엄재석 /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반둥 인근에 있는 가룻에 출장을 갔다가 자카르타로 귀경하는 날이었다. 시내에서 중요한 저녁 약속이 있어서 업무를 일찍 마치고 자카르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우리의 경부고속도로 격인 자카르타–수라바야 고속도로의 시발점이 찌깜벡 구간이다. 평소에 중앙선에는 2층 고속도로, 좌측에는 경전철, 우측에는 고속철도까지 건설하기에 교통체증으로 악명이 높은 고속도로이다. 이런 자카르타–찌깜벡 고속도로를 지나서 예상한 시간에 시내를 진입하였다. 이제 자카르타에 들어왔으니 모임 장소에는 무난히 도착하겠지 하는 안도감까지 들었다. 하지만 웬걸 시내 중심부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를 통제하고 모든 차량을 북쪽 안쫄 해변방향으로 우회시킨다. 무슨 이유인가 했는데 마침 자카르타 한인 단톡 방에서 대사관의 메시지가 날라 왔다.
“스나얀 인근에 있는 의회 부근에서 형법개정과 부패방지법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데모로 고속도로가 통제된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어찌 데모를 하기에 시내 중심부 고속도로까지 점령당하나? 이해가 불가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항에 가는 승객들이 평소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를 4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1970년대 내가 청년 시절에 유신헌법 철폐를 놓고 대학가에는 최루탄이 난무했다. 학교마다 정규학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휴교로 들어갔다. 많은 데모 주동자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경찰들이 길거리에서 장발이나 미니 스커트를 단속까지 하는 그런 시대였다. 중앙정보부에 의한 사찰과 언론의 자유가 없고 각종 기본권이 박탈되었던 독재정권 시절이었다. 국가의 안보가 중요하고 경제개발도 좋지만 1인의 종신집권은 인정할 수 없었다. 내 자신도 강의실을 나와서 교문에서 전투경찰과 대치하던 데모에 합류하였다. 그렇다고 남들 앞에서 할 용기는 없어서 데모대의 꼬리만 따라 다니며 유신 철폐를 외쳤다. 도서관이나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을 비겁한 양심이라 비난하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부정과 불공정에 참지 못하여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었던 젊은 혈기가 부럽기만 하다.
 
 
인도네시아도 우리와 비슷한 정치발전의 과정을 거쳐 왔다. 똑 같이 일본 식민지 시대를 겪고 같은 시기에 독립하였다. 우리의 이승만 대통령처럼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도 장기 집권을 획책하다 군사 쿠데타에 의해 물러났다. 수카르노는 독립 후 혼란기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끌어 왔다. 그는 넓고 광대한 국토에 여러 섬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를 판짜실라 정신으로 통합하였다. 이런 수카르노 대통령의 공과 사를 이곳의 국민들은 냉정하게 판단한다. 비록 독재자로 권좌에 물러나 외롭게 생을 마감했지만 이 나라 관문을 수카르노 국제공항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국부로서 존경한다. 수카르노에 이은 통치자 수하르토도 반공과 경제 개발 미명하에 장기 집권을 획책하다 1997년의 폭동으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평소에는 순한 눈망울에 큰 소리도 한번 안내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이렇게 과격한 데모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1980년대 유신만 끝나면 꿈에 그리던 민주주의가 만개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고 서울의 봄은 짧게 끝나고 말았다. 생각지 않았던 군부 정권의 출현으로 공포의 통치는 계속되었다. 이런 불의에 항거하는 또 다른 데모를 불러 왔다. 국민 소득의 증가와 중산층의 확대는 군부 독재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다. 물론 그 때 나는 산업전사로 신분이 바뀌어 해외현장에 있었지만 마음은 데모 행렬에 가 있었다. 다른 서방국가들은 민주주의를 잘 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이리도 힘이 드는가? 비록 군부통치에 반대하는 데모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마음으로 열렬히 성원하였다. 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인과 일반 시민들도 참여한 가열찬 6월10일 항쟁 끝에 군부 통치는 끝이 났다.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여 4.19에 이은 또 하나의 국민 승리의 역사를 만들었다.
 
인도네시아는 지금 최초의 민간인 출신이자 서민 대통령 조꼬위 위도도가 지난 6월 대선에 승리하여 연임이 시작되고 있다. 아세안에서 모범이 될 정도로 민주주의가 정착하고 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부러운 건 정치적인 보복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처럼 전직 대통령이 부정이나 비리로 감옥에 가거나 자살하는 사례가 없다. 아무리 잘못하여도 일단 퇴임을 하면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를 받는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직전 대통령 SBY의 영부인과 전직 대통령 하비비가 서거하였다. 장례식이 거행되었으며 현직 대통령이 직접 헌화하고 모든 정치인들이 조문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나라처럼 지역간, 세대간, 진보와 보수가 극렬하게 대립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여러 정파들이 연립정부도 구성하고 화합의 정치를 펼쳐가는 인도네시아가 부럽다. 하지만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의 로망인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은 부끄럽기만 하다. 이곳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K-POP과 한류의 주인공답지 않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이다.
 
 
2019년인 현재까지도 우리나라는 데모의 연속이다. 한쪽은 검찰을 개혁하라고 데모를 하며 서초구 검찰청 앞에 200만명이나 모였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범법자 장관을 구속하고 종북 주사파 정권 퇴진을 위하여 광화문 세종로에 500만이 모였다고 한다. 민주화만 되면 더 이상의 촛불 시위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끝이 없는 국론 분열과 대립과 갈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만 간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우수한 두뇌와 기술을 바탕으로 밝은 미래로 가야 하는데 3류 정치에 발목이 잡혀 있다. 어떻게 세운 대한민국이고 어찌 이룩한 한강의 기적인가? 통일이니 정의니 진보니 하는 헛된 구호에 이제는 지쳤다. 국민들이 존경하는 지도자 아래 개인과 가정의 행복 속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활기찬 미래를 꿈꾸는 정의로운 시대, 시위나 데모가 없는 그런 태평성대는 언제나 오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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