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아름다운 그 시절의 기억들 / 강인수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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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67) 아름다운 그 시절의 기억들 / 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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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802회 작성일 2019-08-14 09:35

본문

< 수필산책 67>
 
아름다운 그 시절의 기억들
 
강인수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이렇게 엄마에 대한 기억을 글로 쓸 수 있어서 기쁘다. 사실 나는 내성적이고 마음이 투박해서 말로 표현하는 것이많이 서툴다.몇 줄 글로 남겨 보는 것은 그나마 마음을 말로 전하는 것에 대한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나의 일과는 한국에 계신 엄마와 매일 두 통 이상의 무료화상통화를 하는 것이다.칠순을 넘기신 노모는 이제 어린 아이처럼 떼를 쓰고 보채신다.그저 뚜렷한 용건은 없더라도 엄마의 얼굴을 보기위해 화상 전화를 하고있다.그 시간의전화 한 통이 때로는 바쁘게 돌아가는 주부의 일상에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20여년을해외에 떨어져 살아온 세월도 미안하고 장녀로서 넉넉하게 보탬이 되지 못한 것도 마음 한구석에는 작은 부담감으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그런 까닭에 나는 매일이 새로운 듯 하루 두 번 엄마와의 화상통화로 정겨운 소통을 하고있다.
 
 
나는 기억한다 젊은 날의 엄마는 숨쉬는 것도 벅찰 만큼 바빴던 것을, 해지는 들녘에 앉아서 동생과 둘이 키 작은 엄마를 기다리다 보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장바구니를 옆에 끼고 뒤뚱뒤뚱 걸어오시던 엄마의 모습이 위태로울 정도로 씩씩했던 그날의 기억들이다. “이것도 먹어봐라! 이런 것도 있다.” 하시면서 자식들에게 살뜰히 먹을 것을 챙겨 주셨던 그 시절의 어머니를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우리가 참새처럼 작은 입을 열면 청포도 한 알과 푸르스름한 익지도 않은 바나나를 까서 혀 속에 넣어 주시던 그 시절, 청포도는 내게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요즘도 나는 옛 노래인 청포도 사랑을 자주 흥얼거린다. 이상하게도 노래는 사랑 노래이지만 청포도가 들어가 있는 가사말 때문에 나는 이 노래가 좋다.
 
모성애는 자식에게 먹이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어미 새가 새끼에게 열심히 먹이감을 물어 나르는 것처럼 70년대 엄마의 모성애는 자식들을 먹이는 것이었다. 요즘엔 청포도를 사서 한입에 넣어보면 딱히 내 입맛은 아니다. 우리 집 도우미에게도 먹어보라고 주면 asam(아삼)이라고 하면서 넌더리를 친다. 새콤한건 싫은 모양이다. 그 시절 유년의 기억은 인생에 비밀의 화원처럼 조심스럽게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 기억의 청포도처럼 어디서 또 무엇으로 어떤추억을 머릿속에 넣어주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작년 가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을 낙엽이 뒹구는 밤공기는 가볍고 촉촉했다. 밤길 가로등도 무심하게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마치 내가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사람처럼 익숙한 냄새였다. 몸도 생각도 작기만 한 청춘이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나는 엄마와 손을 맞잡고 저녁산책에 나섰다.
엄마와 나는 잃어버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제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아질 것이다. 몸이 변화하고 마음이 변화되면서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고 하시면서 우울할 때 운동도 하고 바쁜 삶에 긍정적으로 뛰어다니라고 하신다. 열심히 일도 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정작 엄마는 아무것도 안 하시고 쓸쓸해 하시는 것 같았다. 다시 내 삶의 터전인 자카르타로 돌아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마음은 더디게 짐을 챙길 무렵 엄마는 나를 안고 “사랑한다!” 고 말씀하셨다. 나는 냉큼 몸을 빼서 “응! 이라고 대답했다. 엄마의 ‘사랑’은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었다.

매사에 똑똑하라고 하셨고 물러 터지지 말고 퍼런 감처럼 딱딱하게 똑 부러지라고 가르치셨던 엄마, 그렇지 못한 내가 못마땅해서 반복 연습을 시키던 엄마가 이제는 어느정도 인생의 여유가 생기신 듯 무던하게 변하셨다. 간혹, 편지를 쓰시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시고 손도 잡으려고 하신다.
당신은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어린시절, 내가 안아 달라고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으면 “다 큰 것이 걸어야지” 하시며 넘어지지 말고 잘 걸어오라고 매몰찼던 그 시절 젊은 엄마가 그립다. 먹고 싶은 것만큼은 다 먹으라고 복숭아 철에는 백도를 딸기철엔 딸기잼을 만들고 수입상에게 청포도를 한 광주리 사서 입에 쏙쏙 넣어주던 그 시절이 다시 오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추억이 슬퍼지지 않도록 이제는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려고 노력해야겠다. 오늘 밤도 한 통의 전화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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