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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58) 자바의 꿈 /이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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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758회 작성일 2019-06-10 13:50

본문

<수필산책 58>
 
자바의 꿈
 
이태복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자바에 3년째 살고 있다. 일이 있어 자카르타에 온지 겨우 3일이 지났는데 자바가 그리워 눈물이 난다. 누구보다 수나르가 보고 싶다. 눈물이 날정도로 보고 싶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수나르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인도네시아 사람인데 말이다. 수나르는 마흔살로 살라띠가에서 만난 아들 같은 자바 사람이다. 내가 수나르를 만난 건 3년 전 2017년 6월쯤이다. 노년을 살라띠가에서 살기로 하고 수나르의 땅을 사서 연구원을 짓고 새로이 사업을 시작했다. 땅그랑에서 15년 동안 운영하던 봉제 부자재 업을 접었다. 살라띠가에 내 아호를 딴 사산 자바문화 연구원을 짓고 바닥공사인 폴리싱을 살라띠가에서 새로이 시작했다. 그리고 자바문화를 연구하여 한인들에게 알리고 사업을 해서 번 돈으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 자바인들에게 돌려주는 꿈을 꾸었다. 수나르와 꿈을 나눴다.
 
 
자카르타에서 하던 봉제 부자재 생산업은 처음부터 꿈이 아니었다. 속되게 말해 배운 도둑질이랄까? 한국에서 두 번 사업 실패 후 인니에 정착하면서 배운 일이라 자식들 교육을 위한 궁여지책이었고 자식 대학 교육이 끝나면 업종을 바꾸기로 했었다. 수나르 가족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수나르 밑에 남동생 그 밑에 두 여동생, 2남 2녀 모두가 결혼하여 식구들이 많은 다복한 대가족이다. 수나르에게 땅을 살 때부터 시세보다 싸게 샀고 나는 혈혈단신인 이방인으로 인니인의 가족에 얹혀 살기로 했다. 나를 만나기 전 수나르는 제약회사에서 적잖은 월급을 받았으니 자가용도 있었다. 이런 수나르를 설득해 폴리싱 사업을 같이 하자며 비전과 꿈을 나눴다. 수나르는 천성이 나와 같았고 처음부터 마음이 맞아 주저없이 뜻을 같이 했다. 우리 둘은 자본도 없이 꿈만 가지고 형제처럼 함께 살며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거래처에서 처음 나를 가족이라고 소개한 것은 수나르였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놀라고 고마웠다. 나의 외적 능력을 보고 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수나르는 친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음에도 나를 양아버지처럼 생각했다. 마음이 묘했다. 나도 수나르가 아들 같았다.
수나르의 초등생 두 아들과 아내도 내게 극진했고 처가살이 하는 제부 안또와 여동생 앤도 형제가 되어 서로 도와주었다. 손자같은 수나르의 초등생 두 아들은 수돗물이 안 나오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온다든지 정원을 가꿀 때 괭이를 들고 와 함께 밭 일구는 일을 돕거나 마치 친할아버지를 돕는 듯했다. 친손자 같았다. 먹을 것 하나까지도 할아버지와 함께 챙겨 주었다. 살라띠가에서 행복은 미래의 꿈이 아니고 현실의 행복이다. 첫 살라띠가 정착의 신고식은 만만치 않았다. 오자마자 승합차 이노바로 오토바이를 들이받아 두 청년이 다쳤고 열세 바늘이나 꿰매는 불상사가 있었다. 청년의 스포츠용 비싼 오토바이를 작살냈지만 실비 수리비와 상처를 꿰매는 비용 32만루피아 외에 치료비도 청구하지 않는 이곳 사람들에게 사랑의 빚을 지며 호된 신고식을 했다.
 
추돌 사고 수리비는 340만 루피아가 나왔다. 오토바이 추돌 신고식은 시작에 불과 했다. 살라띠가는 산악마을이다. 이렇게 수리가 끝난 이노바를 찾아오는 날 이번에는 차를 갖고 오던 운전사가 빗길에 미끄러져 앞에 가던 제니아 차를 또 들이받아 대형 사고를 냈다. 앞차의 차체가 반이 날라 가고 탑승자 한사람이 다리가 부러졌다. 자카르타 같으면 수술비가 엄청 나올텐데 운명이라며 피해자는 시골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실비 500만 루피아만 요구했다. 차는 둘 다 보험 혜택이 없어 수리비만 1억 루피아가 넘는다. 당연 법적인 책임은 내게 없었다. 하지만 운전사가 경제적 능력이 없다. 경찰에 의하면 운전사가 5년 실형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깊게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사고 난 차를 수리를 하지 않고 팔아 제니아 수리비와 치료비로 주었다. 차가 없어지고 불과 두 주 전에 살라띠가의 청년들에게 진 사랑의 빚을 갚았다. 이제 수중에 돈 한 푼 없었다. 그래서 할부 오토바이를 샀고 1년 후 차를 사게 됐다. 오토바이 할부금은 현재 6개월 남았다. 그때 모든 돈이 거덜 났는데 살라띠가 신고식은 그 사건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신고식은 혹독했다. 인도네시아 24년 차 두 번째  댕기 열을 앓았다. 5일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수나르 가족들이 의사를 집으로 불러와 링거를 맞히고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였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때 기억은 비문에 새기듯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고맙게도 살라띠가 나이키 신발 공장에서 청소 용역을 주었다. 하지만 빈손으로 시작한 일이라 자금에 부하가 걸렸다. 일 년간 수나르가 무이자로 돈을 빌려와 쓰고 잘 갚았다. 내가 수나르에게 할 수 있는 건 마음과 꿈을 나누는 것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작은 것으로 서로 소통하며 나누면 된다. 우리는 갖고 있는 것을 나누며 꿈을 키웠다.
 
 
자바 사람들은 부지런하다. 수나르는 집이 살라띠가에 있으면서 40분 거리인 그라박 처가살이를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사원에 기도를 다녀와서 아침 준비를 하고 읍내에 아이들 등교시키고 집에 와서 빨래며 집 정리를 하고 살라띠가까지 출근하고 밤이 늦어서야 퇴근을 했고 밤 11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든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이다. 수나르는 근면하고 성실했다. 우리는 자신보다 서로를 더 생각했다. 우리는 폴리싱 공사를 하면서도 이득보다 품질과 공기에 더 신경을 썼다. 어떤 한인 건설업체에서는 하청업체가 몇십억 선수금을 받아쓰고 공사를 망쳐 놓고 나 몰라라 하기도 해서 우리가 기술을 전수시켜 주고 좋은 품질로 시공하자 오더를 주었다. 그것도 사기를 위한 페인트 모션이었다. 기술 이전을 받자 시공비 한 푼도 안 주고 쫓아내는 경우도 있었고 새로이 뚫은 현장에 샘플 시공을 하고 나면 오더를 받을 때쯤 어떤 업체가 합작을 해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당하고 인니인을 통해 일어섰다. 하지만 수나르는 한국인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럴 때면 나는 수나르에게 미안했고 그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챙겼다. 우리는 일이 터질 때마다 상처받지 않도록 서로를 다독거렸다. 살라따가는 먹거리도 싸고 생활비가 들지 않았다. 아웅다웅 할 이유가 없었다. 먹고 사는 것은 자카르타에서 하루 생활할 돈이면 살라띠가에서는 그럭저럭 한 달을 살 수 있다. 산골이라도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됐다. 불편함이 없다. 마음을 낮추고 나면 살아가는데 생기는 작은 돈은 덤이었다. 종교도 수나르는 골수 이슬람이고 나는 골수 예수쟁이다. 우리는 누가 더  진실하게 사는지 경쟁하듯 서로 섬기며 산다. 나는 내가 진실하게 살므로 하나님이 축복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나르도 자신의 신을 그렇게 믿고 있다. 우리는 늘 손해 본 것 같으나 3년 동안 결실이 많았다. 내겐 연구원 건물 진척과 자바 문화연구의 많은 결실이 있었고 시 쓰기 특히 스마랑을 무대로 시작한 한인들의 인니 진출 역사에 관한 자료 인니에 있었던 대한독립 열사 이야기 일본 성노예 조선 위안부 소녀 자료 인도네시아 위안부 자료 등 남들이 갖지 않은 지적 재산도 많이 가졌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줄 것이 많다. 그러기에 나는 수나르가 잘 되도록 그의 열매에 신경만 쓰면 된다. 나는 내가 줄 수 있는 게 많다. 내게 있는 것으로 주길 원했다.
 
나의 나눔을 사람들은 좋아했다. 나는 시인이기에 좋은 시를 쓰려고 좋은 마음을 가진다. 좋은 마음은 좋은 시를 쓰는 원동력이 된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도 몸에 배어 갔다. 자카르타에서 좋은 선물을 받게 되면 우선 이곳 식구를 먼저 주는 버릇이 생겼다. 종종 밴드에 내가 올린 글을 읽고 사람들은 현금이나 현물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한인들의 소중한 마음을 현지인들에게 전할 수 있어서 기쁘다. 나누는 여유는 행복 그 자체다. 내 독자들 가운데는 인니인으로 인해 성공한 분들이 마음을 나누며 CSR 대행을 원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여유들은 서로의 영혼을 살찌게 하고 사회를 아름답게 한다. 사업을 하면서 받은 상처도 많지만 내 사업 스토리의 팩트를 쓰면 나는 늘 피해자고 가해자가 생기기에 쓰지 않기로 한다.
 
내 삶에는 어두운 이야기보다 밝은 이야기가 더 많다. 글로 남길 수 없는 가슴 아픈 일들이 많지만 이럴 때마다 나의 파트너 수나르는 늘 마음이 여유롭고 통이 컸다. 그의 인성이다. 나는 수나르에게 배우는 게 더 많았다. 수나르의 마음은 퍼 마시고 퍼 마셔도 늘 새로운 생수 같다. 자카르타에 3일 있었는데 수나르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나는 이유이다. 내 모든 것 주어도 아깝지 않은 친구다. 자바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남자들이 자바 여자들에게 이렇게 빠지면 헤어나지 못했다는 낭설이 있다. 그래서 순다족이 사는 서부 자바 바띠비아로 수도를 옮겼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향기로운 자바가 정말 좋다. 수나르 어머니가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마음이 아프다.
 
지금 나는 작은 선물을 챙겨 살라띠가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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