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밥상머리에서 입 여는 화교사회, 입 다무는 우리사회 / 하연수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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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51) 밥상머리에서 입 여는 화교사회, 입 다무는 우리사회 / 하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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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117회 작성일 2019-04-1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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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51 >
 
밥상머리에서 입 여는 화교사회, 입 다무는 우리사회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3개월 전 취업 최종 관문인 면접시험에서 합격되었다는 딸의 전화를 받고 아내와 나는 한 동안 세상 살맛난다며 얼굴에 미소를 달고 살았다. 한 달이 지나면서 딸과 통화 횟수가 늘어났고  감출 수 없었던 우리 부부의 미소도 차츰 걱정으로 바뀌어갔다. 우선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권하는 못된 회식 문화에 딸은 절망하고 있었다. 가끔 강요에 못 이겨 마신 후 밤새 고생하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한다고 했다. 그 힘든 직장 문화를 견디어 내야 하는 딸의 입장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옮겨야 하겠다는 말에 차마 그렇게 하라고 동의해 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직장 문화가 차츰 바뀌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가부장적이고 상명하달 식 직장 문화 풍토가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국직장 음주문화 풍토 적응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도 어렵다고 하는데 하물며 문화가 다른 해외에서 성장하고 공부한 딸이 적응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 2년 부산에서 마친 후 아버지 일자리 따라 해외로 다니다 보니 초등 6년은 자카르타 한국학교와 중, 고등학교 6년은 미국(JIS) 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딸이다. 이렇게 다른 문화 풍토에서 다양한 경험은 미래 직장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자신을 가지고 살아왔던 내 믿음이 상상도 못할 정반대 현상에 좌절하게 됨을 보고 나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휴대폰 전화로 들려오는 딸의 불평은 같이 슬퍼해 주고 직장문화의 억울함에 "이 나쁜 인간들!' 하고 맞장구를 쳐 줄 사람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딸이 괴롭다고 회사를 그만둘까 두려워서 그 사회가 원래 그런 곳이니 네가 참으라는 주문만 늘어놓고 말았다. 그렇게 주문을 해야 하는 내 가슴에도 진땀이 난다. 내 입장은 마치 링 위에서 2라운드 시합 중 상대의 펀치를 맞고 코너로 몰리는 내 선수를 보는 코치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링 위에 올라서면 초보자들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방어에 정신없는 선수 귀에는 링 아래 코치의 주문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코치는 내 선수가 실수로 카운터 맞을까 두려워서 끊임없이 주문을 해댄다. 이쯤 되면 코치의 주문은 선수를 위한 주문(注文)인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주문(呪文)인지 모를 지경이 된다. 그래도 코치는 이번 라운드 잘 버티면 다음 라운드에서 더 잘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며 항복의 흰 타월을 든 체 식은 땀을 흘린다.
    
꼬따(Kota)에서 해물로 유명한 광동 식 중국 식당 네온 간판 속 빨간 왕새우 그림이 비를 맞아 더욱 선명하다. 딸과 대화를 서둘러 마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중국 식당 화교들 원탁 주변은 시장 바닥보다 더 시끄럽다. 이 나라에 와서 알게 된 신발회사 사장 필립 부융이 나를 초대한 저녁 식사 자리였다. 나머지 네 사람은 제 각기 다른 사업을 하는 필립 부융의 화교 친구들이었다. 이 원탁 식탁 화교들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별로 우습지도 않는 말들에도 손뼉을 치며 우스워 죽겠다는 과장까지 해 댄다.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이들은 왜 그럴까? 그러나 이 웃음으로 원탁의 분위기를 재미있게 만들겠다는 노력이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이 웃음들이 서로 간 소통의 실핏줄이 됨을 조금씩 느껴지게 된다.
 
 
화교들의 원탁 미덕은 떠들썩하게 떠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필립 부융의 말을 조금씩 이해해 가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전체가 나오고 이어 따뜻하게 데워진 소홍주를 '호주불취인 (好酒不醉人)' 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 갈색. 토기에 부어서 서너 잔 마셨다. 그 사이에 원탁 위에는 사업 이야기 가족, 이제 갓 시작한 사회 초년생 자식들의 이야기도 나왔다. 당연히 나는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나눈 딸과의 통화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의 전통적 직장문화 풍토를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내 딸 이야기를 성토했다..

하소연에 가까운 내 이야기에 주석 공장을 한다는 ‘헤르먄 량’이라는 사람은 인도네시아 중국계 젊은이들은 직장에서 남녀노소, 지위고하 간 소통 문제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 이유가 바로 이 화교 전통적 원탁 밥상머리 교육 덕이라고 했다. 한국의 수직적 상명하달 식 직장문화 풍토 속에서 적응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딸의 고민을 이 땅의 화교 젊은이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헤르만 량의 말이 내게 부러움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서로 비슷한 한국 사회와 화교 사회에 이런 직장문화 차이가 존재할까? 우리들의 고민인 수직적 한국직장 문화 풍토를 이 화교들의 수평적 쌍방 소통의 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일반 말단 회사원들도 화교들처럼 원탁에 모여 상하 간 부담없이 의견을 듣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문화풍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회식 장소도 윗사람과 아랫사람 거리가 모두 같은 원탁에 둘러앉아서 윗사람의 이야기를 아랫사람도 같이 들을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윗사람도 아랫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는 쌍방의사 소통 문화가 통하는 자리가 된다. 화교 원탁 식 쌍방 소통의 장점이 필요한 곳은 직장 문화 뿐만 아니라 가족 친척들, 문중회의 장소에서도 꼭 필요한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세월 동안 수직적 문화 풍토가 한국 사회에 자리잡게 된 이유는 아마 전통유교가정 문화와 군대문화의 영향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된다. 화교들은 원탁 밥상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미덕이라고 했고, 우리나라는 밥상 앞에서 말하는 아이에게 '입 다물고 조용히 밥이나 먹는 것이 한국식 밥상머리 미덕으로 알고 있다. 한국적 사고는 밥상머리에서 말할 수 있는 자격은 그 자리 상석의 어른들에게만 주어져 있는 특권이었다. 유교전통을 고수하는 집안 엄한 아버지와 함께 밥상 앞에 앉으면 아버지는 말을 하고 아이들은 말없이 들어야 하는 방식이었다. 감히 어르신 말씀에 의견을 내놓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가 틀렸다 해도 그 잘못을 말 할 수 없었던 문화다. 군대와 같은 일방적 상명하달만 있었지 쌍방 의견소통은 존재하지 않았던 유교 전통가족문화였다. 그래서 아래 사람들이 입을 닫고 시키는 대로 명령 수행을 하는 문화에 젖어 살았다. 
  
많은 인원이 모이는 우리 문중 회의를 보면 소통, 의견 통합 불가 모습이 바로 보인다. 자리 배정 구조가 소통이 안되게 되어 있다. 두 사람이 마주보는 4인용 탁자를 사람 수만큼 길게 나열해 놓고 안 쪽 상석(上席)으로부터 아래 하석(下席)까지 항렬, 나이 순서대로 끼리끼리만 마주 앉게 한다. 사람이 늘어나면 4인용 탁자를 더 추가해서 상석과 하석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멀리 상석 어른들 간에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지 하석에서는 알 수가 없다.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멀리 떼어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심장은 발 끌에 있는 세포에 피가 잘 돌고 있는지 알 필요가 없고, 발끝 세포는 심장이 어떻게 잘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인지 모른다. 이 풍토를 보면 아마 옛날 기득권 세력인 윗사람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아랫사람들이 들을 수 없게 일부러 만들어 놓고 무조건 따르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제도인지도 모르겠다. 화교 원탁문화에서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상석,하석 거리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참여 인원 서로 같은 거리에서 눈을 보고 의견을 듣고 말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는 구조다. 
 
사람이 늘어나면 사람 수에 맞는 크기의 식탁을 마련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간 거리는 공평하게 모두같은 거리다. 이 원탁 문화 사회에서는 능동적 실시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원활한 소통은 실시간 통합을 쉽게 도출해 낸다. 사람과 사람 간 동일한 거리에서 눈을 마주보고 소통, 검증 방식을 습득한 사람들은 조직 상호간 내부적 협동 뿐만 아니라 외부조직과 동업, 합작 등도 효율적으로 해 낸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동업을 하느냐고 할 때, 화교들은 사업을 어떻게 혼자 하느냐고 한다.  그들은 동업이나 합작투자에도 같은 원리를 적용해야 성공한다고 믿고 있다.
화교들은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의사소통을 통해서 같이 일 할 수 있는 능력을 어릴 때부터  원탁 밥상교육을 통해서 습득한다. 가정. 단체 그리고 조직에서 수장 급 인물 외에는 ‘입 다물고 조용히 밥만 먹는 것'이 미덕인 우리 문화와는 달리 수장 급 외 사람들도 '입 열고 떠들며 먹고 마시는 것'이 미덕이라는 화교 사회의 원탁 밥상머리를 보았다.

원탁 식탁에 빙 둘러 앉은 남녀노소 지위 고하 간 거리가 같고 서로 눈을 보면서 의견을 듣고 말할 수 있는 자리. 최소한 내 눈에는 가장 훌륭한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밥상머리 아버지와 같은 수장 급 어른들은 자신의 의견을 상명하달하는데 반해 화교 수장 급 인물들은 오히려 아랫사람들이 부담 없이 말하게 풀어놓고 자신은 거기서 가장 쓸만한 의견을 찾는 듯 보였다. 이 원탁 밥상머리 식탁은 화교 청소년들에게 소통 습관을 몸에 익히게 해 주는 ‘마법의 자리’ 인 것 같아 보인다. 거기에다 화교 사회는 외식문화가 발달해서 저녁을 거의 외식으로 하기 때문에 이 원탁 식탁에 마주 앉게 되는 횟수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 이상 된다고 보여진다. 유대 관계를 중요시하는 화교들은 친척들과 자주 원탁식탁 앞에 모인다. 그때는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가족 전체가 모인다.  가정, 친척들 간 소통 습관 능력을 키워가는 화교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우리 어린이들 간 소통 능력 차이는 갈수록 커 질 것 같아 보인다. 이제 우리나라도 현재의 수직 가부장적인 문화, 또는 지시만 하는 핵 가족 단위 폐쇄적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 원탁 식 소통 습관을 만들어 주는 가정과 조직, 단체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간절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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