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바람이 건네는 감사/성재경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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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제 7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바람이 건네는 감사/성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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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45회 작성일 2025-09-0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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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건네는 감사 


세상은 언제나처럼 조용히 흘러가는 듯 보였습니다. 햇살은 벽을 타고 스며들고, 바람은 나뭇잎 사이를 지나며 낮고도 고요한 속삭임을 남깁니다. 그러나 내가 선 인도네시아의 땅 위에는 그 평온이 닿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이 땅의 삶은 조용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종종 마주치는 풍경이 있습니다. 맨발로 뜨거운 아스팔트를 걸으며, 낡고 해진 자루 하나를 어깨에 멘 노인. 그 안에는 종이, 플라스틱, 그리고 찌그러진 캔 몇 개가 담겨 있지만, 실은 삶의 고단함이 더 무겁게 담겨 있습니다. 햇볕에 그을린얼굴, 굽은 허리, 비틀거리는 걸음. 한 세기의 무게를 끌고 가는 듯한 그 모습은 내게 말없이 시대의 슬픔을 전해줍니다. 


나는 가끔 발걸음을 멈춥니다. 주머니 속에서 꺼낸 2만 루피아,한국 돈으로 2천 원 남짓한 그 지폐를 조심스레 건넵니다. “점심이라도 드세요.” 말보다 마음이 먼저 앞서는 순간입니다. 오늘도 집 근처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이 무거운 자루를 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나치려던 길을 되돌아 그 손에 따뜻한 밥 한 끼의 마음을 건넸습니다. 노인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뜨리마까시”를 반복했지만, 그 감사의 말은 되려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이 땅에는 그렇게 도와야 할 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비자 연장을 위해 반둥 이민국을 찾았습니다.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약 170km 떨어진 이곳은, 낯설면서도 어느새 내 발길이 익숙해진 사역지입니다. 수 차례 연장해 온 사회문화 비자였기에, 이번에도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접수 창구의 직원은 친절했고, 서류를 확인한 뒤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돌아오는 길, 아이를 업은 아주머니가 나를 붙잡았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아주머니의 눈빛은 말을 대신했습니다. 돈을 달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지나쳐 버렸습니다. 한참을 걷다 문득 뒤돌아보니 그 아주머니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가슴 한 켠에 작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았습니다. 왜 그냥 지나쳤을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음엔 꼭 도와야지. 그렇게 또 하나의 다짐을 마음에 묶어두었습니다.


수요일이 되어, 다시 이민국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비자는 없었습니다. 


“이민국장의 서명이 없어서 비자를 줄 수 없습니다.” 


친절했던 직원은 이렇게 말했고, 나는 무슨 이유인가, 뭐가 잘못되었냐고 묻지도 못하고 전화번호만 남긴 채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한 줄기 바람처럼 스쳐간 허탈함이 등을 눌렀고, 작은 체념이 내 안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내가 집안 사정으로 한국으로 떠난 지 어느덧 2주가 지났습니다. 혼자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고요했고, 그 고요 속에는 허기와 그리움이 자주 머물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동생처럼 아끼는 예진씨가 반찬을 바리바리 들고 학교를 찾아왔습니다. 장조림, 열무김치, 깍두기, 마늘장아찌. 그 정성은 말없이 눈물지을 만큼 따뜻했습니다. 앙콧(소형승합차)을 타고 집에 오는 길에좁은 앙콧 안에서 풍기는 반찬 냄새에 잠시 다른 사람들에게 민망했지만, 예진씨의 마음은 정말 고마웠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가정에 은혜를 베푸소서. 사랑과 행복한 가정으로 복을 더하소서.”


IMLAC (반둥에 있는 외국인 언어학교) 인도네시아어 고급반 수업을 들으며 내 삶에 새로운 언어의 감각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머릿속엔 여전히 비자 문제가 미완의 숙제처럼 얹혀 있었습니다. 


스폰서인 IMLAC학교 교장과 상담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무성의했고, 시스템은 불투명했습니다. 행정의 벽은 냉랭했고, 나는 또다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부족한 제가 이 길을 가는 데 지치지 않게 하소서. 염려를 넘어서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시간은 흘렀고, 무비자 체류 기간은 이미 열흘을 넘어섰습니다. 림바트 현지인 친구는 걱정 말라고, 기다리라고 조언했지만, 불안은 발뒤꿈치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초조함은 고요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민국으로부터 통보를 받았습니다. 비자 연장이 불가하다는 말. 새 정책으로 사회문화 비자는 4개월까지만(종전에는 6개월) 연장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일주일 안에 출국해야 했습니다. 마치 강제 추방처럼 들리는 그 말 앞에,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주님, 이것도 지나가리이다.”


싱가포르행 티켓을 예매하고, 다시 이민국을 찾아 출국 연장 서류를 받았습니다.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나는 기도했습니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서도 마음속엔 주님의 인도가 느껴졌습니다. ‘창이 공항’은 고요하고 질서 정연했습니다. 오래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문득 내가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실감했습니다. 그리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창이 공항 내에만 머무르다 다시 반둥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습니다.


반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기내식 대신 컵라면 하나를 받아 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간 하루. 오늘도 숨 쉴 수 있었던 시간. 이 모든 것은 감사였습니다. 다시 입국 심사에서 작은 문제가 있었지만, 나는 무사히 입국했고, 다시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돌아왔습니다.


늦은 밤, 도착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긴장이 풀리고 피곤이 몰려왔습니다.혼자 밥을 지으며 나는 다시 기도했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며 떠올린 하루의 풍경들—맨발의 노인, 지나친 아주머니, 예진 씨의 반찬, 흔들리던 비행기,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이 땅. 그 모든 순간이 감사였습니다. 고된 날이었지만, 그 모든 순간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바람은 늘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내게 말을 건네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감사하라, 너의 걸음마다 내가 함께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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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경 약력 

2013년 5월 인도네시아 반둥 입국 (감리교단 인도네시아 선교사)

2017년 5월 암본으로 이동 

(IAKN AMBON-INSTITUT AGAMA KRISTEN NEGERI AMBON 교수 사역) 

2022년 6월 암본 세종학당 개원(KSI-KING SEJONG INSTITUT AMBON)


<수상 소감문>

인도네시아 생활을 13년 차 보내면서 매우 영광스런 적도 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어 기쁨과 감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가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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