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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7) 살라띠가에서 생긴 일 / 이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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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234회 작성일 2018-08-23 11:02

본문

< 수필산책 17 >
 
살라띠가에서 생긴 일 
 
이태복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사무국장) 
 
 
어제는 살라띠가 어느 공장에서 바닥 칼라 폴리싱 샘플 작업을 했다. 공정상 야간에 마쳐야 할 일이어서 아홉 시까지 잔업을 했다. 샘플이 잘 나와야 하기에 한 공정도 눈을 뗄 수 없어서 점심은 누런 종이에 싸서 파는 나시 빠당을 배달시켜 때웠다. 저녁은 직원들만 챙기고 일단 굶었다. 밤 아홉 시나 되어 마지막 공정이 끝나고 장비 철수할 일만 남았다. 30분은 더 있어야 마무리되겠다. 바닥 공사, 글자 그대로 바닥이다. 오후내내 바닥만 보다가 밥도 못 먹었다. 마무리의 안도감에 허리에 손을 얹고 그제서야 하늘을 보았다. 배가 고팠다. 아침에 충전시켜 간 스마트폰의 배터리까지 바닥이다. 현장 직원들에게 철수 작업 지시를 하고 공장 앞 와룽(구멍가게)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테니 픽업해 달라고 부탁하고 현장에서 500m 떨어진 와룽으로 갔다.
 
 
아뿔싸! 이곳은 시골이라 문이 일찍 닫혔다. 한길가에 있는 와룽은 불이 꺼지고 적막 강산이다. 므르바브 산 중턱 해발 700고지 바람까지 부는데 기온이 영상 15도 체감온도는 영상 10도는 되겠다. 어디 앉아 기다릴 곳이 없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자니 경비실 통과 절차가 번거로울 뿐 아니라. 배가 고프다. 운전수에게 연락해야 하는데 배터리가 나가서 스마트폰을 켤 수 없다. 
운전수가 지나면서 발견하겠지.... 와룽에서 2km 떨어진 집까지 차도를 걷기로 했다. 가을 하늘처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높다. 길가에는 건기라서 떨어진 낙엽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몰려 다니고 드문드문 가로등이 졸고 있다. 검푸른 하늘에서는 별빛이 성게 바늘처럼 날카롭게 쏟아지고 한길을 지나 동네길로 접어들자 50년 전 우리네 시골 밤길을 걷는 것 같다. 
 
별빛 쏟아지는 밤 마실을 가고 있다. 고향 초가집의 엄마 냄새나는 향수에 잠긴다. 우거진 숲 사이로 보이는 므로바브산 등성이에도 별이 쏟아지고 있다. "빠 조꼬~~~" "영순아~~~" 부르면 금방이라도 누군가 반갑게 달려 나올 것 같은 촌가에는 목 창 틀 사이로 호롱불만큼이나 촉수 낮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잠투정 소리인 듯 옹알대는 아이들의 소리가 졸리듯 아련히 사라진다. 이방땅임을 잊어버린 아늑한 밤이다.
 
 
이곳 살라띠가로 이주하길 잘 했다. 연구원이 완공되면 하루빨리 아내를 데려와 마실 길을 함께 걷기도 하고 개똥이 영희 철수 이름같은 조꼬와 띠요노 이름 부르며 아무 집에나 들러 흙내나는 사람 사는 얘기로 노닥거리고 싶다. 생각에 잠기는 동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한마당을 사용하며 식구처럼 지내는 수나르씨 식구들이 아무도 없다. 하루 일과를 나누며 수다를 떨어야 할 집안이 조용하다. 우리가 더 늦을 줄 알고 마실을 갔나 보다. 
 
밤마다 날개를 비벼 대며 밤이 지치도록 그렇게 노래하던 jangkerik(베짱이)도 추위에 날개를 접었는지 적도의 산골 마을이 조용하다 못 해 적막이다. 홀로 되었을 때 눈 둘 곳은 하늘밖에 없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두리안 나무 사이로 별빛이 마구 떨어지고 있다. 시를 쓰리라. 마음에 마구 주워 담았다. 시장끼를 해결하려고 부랴부랴 부엌으로 들어가 대파를 대신해 바왕메라와 cabe setan(매운 고추)를 썰어 넣고 인도 미 (indo mi 인니 라면)를 끓였다. 냄비채로 식탁에 올려 놓고 면발을 젓가락으로 감아 입에 막 넣으려는데 이곳에선 푼수로 통하는 안똔이 숨을 헐떡이며 들어와 호들갑이다. 퇴근 후 얼마간의 스마트폰 불통의 시간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의 실종 사건이다. 그 30~40분 사이 나는 실종되었고 수배자가 되었다. 푼수 안톤이 내가 집에 있는 걸 확인하고 낄낄대며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부릉! 부르룽.....오토바이를 탄 녀석들이 금새 집으로 우루루 몰려왔다. 직원들이 일을 마치고 나를 픽업하러 와룽에 갔었단다. 당연 없었겠지. 집까지 걸어오리라는 생각엔 못 미쳤나 보다. 차를 몇 번이나 돌려 현장에 확인했고 도로를 왕복해서 수 차례 찾았지만 만날 수 없어 저거들 대장이자 직속 상관인 나의 파트너 수나르씨에 보고했단다. 당연히 내게 전화를 했을 것이고 불통인데다 집에도 확인했으나 그 시간 집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외부에서 보고 받은 수나르씨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찾지 못하자 무슨 변고가 있으리라 수배를 했던 모양이다. 이럴 땐 오히려 수나르씨의 빠른 네트워크와 가족같이 따뜻한 마음이 삽시간에 일을 부풀리고 말았다. 가까운 지인들 친척들에게 스마트폰 단톡방에 수배를 하며 난리를 쳤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오해의 해프닝이 벌어졌다. 사산 아저씨가 집에 왔다는 전화를 받고 그새 수나르씨도 도착했다. 도리어 머리를 긁적거리며 겸연쩍어 하는 순수한 모습에 가슴이 울컥했다. 나를 걱정하고 아끼는 이들의 마음을 또 다시 보았다. 이곳 사람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오랜만에 운동 삼아 걸어왔던 잠깐의 불소통 행보로 이들의 큰 사랑을 알게 됐다.
 
 
자바인들이 그러듯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나도 빙긋 웃음으로 화답했다. ‘사산 아저씨가 운동삼아 했다구요?’, ‘다누스 운전수는 콩닥콩닥 심장이 놀라 운동한건 모르죠?’ 수나르씨가 대답도 하기 전에 이곳에서 푼수로 통하는 안톤이 끼어 들어 그간 모두들 걱정했던 마음들을 농담으로 풀어주었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늘밤 밤 꼬리를 물어갈 화제거리가 생겼다. 사산 아저씨 실종사건이다. 손바닥 만한 시골 동네라 공사현장과 집은 겨우 2 km 남짓이다. 이곳 생활이 벌써 2년을 넘었고 모르는 이웃이 거의 없을 정도인데 예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짐에 놀랐다. 이들의 걱정 이상으로 내가 이곳 지리를 알고 있음을 이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어쩌면 나를 두고 이들의 부모님이 타국에 산다는 생각으로 걱정했을까? 무엇이든 챙겨주고 걱정해 주는 이들을 보며 또다시 가슴이 따뜻했다. 고마웠다. 새삼 사람사는 정을 느꼈다. 이제 나는 자바 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 밤10시 오늘밤은 이제야 시작이다. 나의 실종사건 이야기가 밤을 가득 채웠다.
 
살라띠기에 와서 이들이 만들어준 내 마음에 아름답게 빛나는 별 이야기가 많다. 직원들이 돌아가고 내 마음에 빛나는 별을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부터 이들에게 별 이야기를 들려 주기 시작했다. 오늘밤 이들이 돌아 가면 나는 조용히 별을 셀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오늘밤은 별들이 유난히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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