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머니 눈물과 원숭이 숯불구이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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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 어머니 눈물과 원숭이 숯불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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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174회 작성일 2018-02-2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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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2>
 
어머니 눈물과 원숭이 숯불구이

김 대 일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어머니의 눈물’이고 다른 하나는 ‘원숭이 숯불구이’ 이다.
 
나와 인도네시아와의 첫 만남은 1998년 IMF 금융위기 때문이었다. 위기의 인도네시아 법인을 구할 구원투수로 한국에서 내가 선정되었다. 인도네시아로 떠나는 날, 어머니께 작별인사를 드리러 갔다.
 
어머니는 소학교 교실 창 너머로 도둑글을 배우다가 외할아버지에게 잡혀가 농사일만 하시다가 어린 나이에 결혼한 후 학교라고는 학부형 자격으로 가본 것이 전부이다. 그러니 어머니가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는 밀림이 울창하고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로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먼 길 떠나는 아들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 속으론 울면서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몸조심하라고 연거푸 당부하셨다. 아파트 코너를 돌면서 어머니가 사시는 층을 올려다 보니 어머니께서는 베란다에 서계셨다. 왼손으론 흐르는 눈물을 훔치시며, 오른손을 연신 저으며 어서 가라고 재촉하신다. 코너를 다 돌아 나오며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지자 나는 손수건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인도네시아의 일상이 어머니의 눈물을 잊게 만들던 어느 날, 한국의 누나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족들만 모이면 내 얘기를 하시며 우신다는 것이다. 가슴이 찡 해져 말문이 막혔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이 불효를 멈추는 길은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를 이곳 인도네시아로 모셔와 여기도 사람이 살만한 곳임을 보여드리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어머니와 누나를 인도네시아로 초청했다.
 
드디어 어머니와 누나가 인도네시아에 오게 되었다. 나는 땅그랑에 살고 있었지만 될 수 있으면 자카르타로 모시고 나가서 구경도 시켜드리고 식사도 같이 하면서 인도네시아의 번화한 도시와 좋은 면을 많이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어머니께서 맹수는 없느냐고 물으셔서 라구난 동물원에 모시고 가서 사파리 구경도 시켜드렸다. 그리고 나는 딸과 함께 어머니와 누나를 모시고 족자를 거쳐 발리 섬으로 여행을 갔다.

그 때 발리에서 어머니께서 쓰신 시 한편을 소개해 본다.
 
발리 섬 / 조 분 희
 
무수히 많은 야자수를 지나
국도를 사이에 두고 펼쳐져 있는
녹색의 숲도 지났다
우거진 갈대 숲을 흔들며
잿빛 허공을 차고
솟아오르는
이름 모를 새들
야자수 그늘로 찾아 들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고운 소리로 노래 부른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 생각이 날 때면 어머니(조분희)의 창작 시 발리 섬을 혼자 소리 내어 낭독해 보곤 한다. 그때 나는 여행사를 통해 발리에서 우리일행이 쓸 기사가 딸린 차량과 한국어가 가능한 가이드를 예약했는데 가이드는 현지인으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가이드를 한다고 했다. 영어가 편한지계속 영어로 안내를 하길래 내가 한국어로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왜냐하면 어머니와 누나가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다.
 
여러 힌두사원들을 구경하고 점심시간쯤 되었을 때 나는 어머니께 한국음식을 드실지, 현지식도 괜찮은지 물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 때 가이드로부터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다으므은 워언수웅이 수우뿌르 구우이겨하게스읍니다.” 였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아이구 야야 원숭이 숯불구이를 어찌 먹노! 나는 안 먹을란다.” 하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우리가 탄 차 안에서는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가이드가 서투른 한국말로 “다음은 발리의 원숭이 숲을 구경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그렇게 길고도 이상하게 들려준 것이다. 어머니께 설명을 해드리자 배꼽을 쥐고 웃으셨다. 그 다음부터는 가이드가 영어로 얘기하면 딸이 한국말로 통역을 해주면서 오해가 사라졌다.

한국으로 귀국하신 어머니께서는 그 이후로 걱정과 눈물대신 이곳 인도네시아 자랑을 하고 다니신다는 소식을 누나로부터 전해 듣고 나는 마음이 놓였다. 어머니의 눈물을 원숭이 숯불구이가 멈추게 한 것이다. 어머니가 배꼽이 빠지도록 웃게 만든 그 때의 현지인 가이드에게도 감사한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아들을 보며 어떤 미소를 짓고 계실까? 세월이 흘러도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면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이 절로 느껴지는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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