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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4)| 경영이 예술, 정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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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528회 작성일 2018-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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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4
 
#세상에 경영 아닌 것 없습니다.
#자연도 사람도 기업도 다 경영입니다.
 
 
 
 한국 근로자 상위 3% 고액 연봉 여성 직장인의 자기 경영
 
 
회갑을 목전에 둔 직장 생활 삼십 수년의 베테랑 여성, 인도네시아 생활 무려 27년여. 현재 자카르타 북부에 자리한 공단 KBN에 위치한 모락스 인터내셔널(봉재업) 산하 4개 법인 종업원 8천 명을 관리 감독하며 이끄는 고정윤 전무. 지난 1월 24일 나는 그의 경영 세계를 탐문할 기회를 얻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약속 시각보다 좀 일찍 도착했어요. 마침 전시회(한국서협 인도네시아 초청전)가 있네요. 감상하고 있었어요. 이런 분위기 오랜만에 접하는 데 참 좋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단아한 체구, 날마다 정해놓은 운동량을 반드시 채운다고 했다. 짧은 머리, 30여 년을 유지해온 스타일이라 했다. 햇빛을 좋아한다고 했다. 골프 라운딩을 하는 이유도 걷기와 햇빛 때문이라 했다. 단정한 옷차림, 비즈니스 현장 느낌이 훅 풍긴다. 눈빛이 또렷하다. 대상에 대한 상황파악 즉시 작전 개시할 태세다. 보탤 것도 덜 것도 없다. 딱 산업 현장 베테랑 관리자 포스다. 그런데 표정이 맑고 여리다. 반전이다.  
 
▲ 모락스 인터내셔널 고정윤 전무
 
가정, 행복의 원천
 
그는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었다. 만나기까지 사이에서 힘쓴 분의 공이 컸다. 그는 <경영 탐문> 프로젝트에 딱 어울리는 인물, 그러기에 내가 준비한 질문은 그가 느끼기에 다소 엉뚱하고 또 시시하게 느껴질 것이었다. 내 궁금증 방향은 고위 관리자로서 그가 갖춘 경쟁력이나 그간 이룬 성공담이 아니었다. 8천 명이 일하는 생산 현장의 종횡무진 활약상이 아니었다. KOGA(한인 봉재 협의회) 내에서도 공인하는 능력자에게 있을 법한 한탄이 뭘까? 나이 60에 이르기까지 활기찬 직장인인 중년 부인, 그의 일상의 꿈은 뭐지? 대학 진학을 앞둔 아들을 둔 엄마의 아들 경영 뭐 그런 거였다.
 
“제 자랑요? 사람들 대부분이 가정을 일구며 살잖아요? 그 빤한 사실이 제겐 가장 큰 자랑거립니다. 남편과 아들, 즉 가정이 있어 제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거든요. 제 행복의 원천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늘 제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된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틈이 나면 가족여행을 자주 합니다. 장기 여행도 2년에 한 번으로 못 박아 놓고 있지요.”
 
나름 노후 대비도 했고 모든 것이 무난한데 그에게도 아쉬운 게 있다고 했다. 아이가 여럿인 가정이 매우 부럽다고 했다. 긴 기간 일에 몰두한 성공한 직장인의 이면이지 싶다. 바라는 게 하나 더, 지금보다 돈이 더 많았으면 하고 가끔 생각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도 함께 웃었다.
 
“호 호~ 누구나 돈 욕심이 있지 않나요? 근데 사실 저 돈 쓸 줄을 잘 몰라요^~^~~~”
 
그는 자신을 꾸미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30여 년 한 가지 머리 맵시만 고집하는 것도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가 보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명품에 끌린 적도 없어 기껏 아웃렛매장을 이용해 필요한 것을 사는 정도라고 했다. 내 예상한 이미지가 아니다. 헛짚은 거다. 잠시 혼돈이다. 나는 그가 대한민국 근로자 3% 안에 포함될 정도 연봉 소유자임을 설핏 들었다. 그러니까 일하는 중년 여성, 고액 연봉자가 털어놓는 일상의 한탄이란 어떤 종류일까 기대했는데 많이 빗나갔다.
 
“은퇴 후 계획이 뭡니까?”
 
뜬금없다 할 질문이 툭 삐져나간다. 내가 당황했다는 증거다. 질문하면서 내가 예상한 답은 ‘쉬고 싶다’ 정도였다. 그간 동분서주 생산현장에서 뛴 분이니 당연히 쉬고 싶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은퇴 후요? 전 인도네시아 음식을 무척 좋아해요. 인도네시아 토속 음식을 다 내식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뭐할 거냐고요? 먹고 나누고 팔기도 하지요. 열대 과일도 고루 길러보고 싶어요. 하여튼 인도네시아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다 해볼 겁니다.”
 
예상이 또 빗나갔다. 음식도 과일도 상품으로 개발하겠다고 했다. 기대보다 평범하다. 아니 비범하다. 아무튼 흥미롭다. 근데 역시 일의 범주다. 하긴 이미 들은 바다. 그는 타고난 일꾼이다. 일을 쉬면서 아들 교육에 전념했을 때는 학부모회장을 맡아 뛰었다니 미뤄 짐작인들 뭐 필요하랴. 옛사람은 ‘일 없음이 복’이라 읊었는데 그에게는 일이 곧 행복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아무리 지위가 높다고 해도 사람에게 현실의 부족함이 없을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부자라는 말도 생기지 않았겠죠? 저는 모자란 부분을 일로 채우는 것이 즐거워요. 돈을 벌면서 시간도 사는 것 일거양득 아닌가요? 주어진 출산 휴가도 다 쓰지 않고 일에 복귀한 것은 좀 우매했지만요.”
 
 
 
 
화가로 발휘되었을 창작 DNA
 
그의 오랜 지인들은 이구동성 그를 원칙주의자라 했다. 직장생활 처음부터 단호했다 했다. 치밀함에 신뢰성을 갖췄다 했다. 오너의 입장에서 볼 때 한마디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 했다. 부회장을 맡은 한인 봉재 협의회 안에서도 그의 공로가 지대하다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나, 관세청, 회원사끼리 상호 협력 부분에 그가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했다. 그야말로 능통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늘 많을 것 같다.
 
“경기도 하남 출신입니다. 팔당댐 아래 미사리 강에서 멱 감으며 몸을 다졌습니다^~^ 소녀 시절 꿈이 화가였어요. 초등학교 때는 고향 미사리를 배경으로 그린 풍경화로 대통령상을 받았고요. 중학교 때는 구강포스터 대회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았어요.”
 
옳거니 답이 바로 거기 있다. 그는 태생적으로 창작 에너지를 장착했다. 대상에 대한 관찰력, 자기만의 대처 능력, 다각적으로 분별하는 능력을 많이 타고난 거다. 창작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기계의 힘을 빌릴 수도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도 한계다. 자신의 능력으로 판단이 서면 과감히 열매로 맺으려는 의지가 먼저다. 그러니까 화가로 발휘되었을 그의 창작 DNA가 직장에서 자기가 맡은 일로 한껏 발산된 거다. 그렇다. 아 경영이 예술, 이거 정말 맞는 말이다.
 
“경영철학이요? 그보단 관리자로서 현장에서 깨달은 지혜라 해야 어울리겠네요. 저는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악조건에서도 이루는 반면 할 수 없는 사람은 좋은 여건에서도 실패하더라고요. 많은 경영인이 인재 고용에 전력을 기울이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寙者不到 能人必成 (유자부도 능인필성)
게으르고 나약한 사람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능동적인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
고정윤 전무의 경영철학을 한문으로 성어한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게으름과 나약함을 떨치고 능력을 길러 반드시 꿈을 이루기 기도한다.
 
그는 현장의 인도네시아인들로 인해 별난 습관도 생겼단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로만 지시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확인에 확인을 거친다고 했다. 그는 “약속을 쉽게 하지 않지만, 좀체 번복하지 않는다” 했다. “남의 기술로 내가 살 수 없다.”는 것도 그의 관리 신념이다. 관리의 달인에게 아들 관리(?)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대게 스스로 하도록 맡기는 편입니다.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되라고 늘 당부하죠. 집에서나 학교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다 보면 나중에 사회에서도 그 힘을 발휘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맘에 안 들 때가 있어요. 이 엄마에게 존재감 어필이 지나쳐요. 특히 함께 여행을 다닐 때 그래요. 아빠에겐 관대하면서 사사건건 엄마를 압박합니다^^”
 
▲ 여행 중 아들 우신재 군과 함께
 
▲ 여행 중 부군 그리고 아들과 함께
 
 
그 엄마에 그 아들일까? 둘 사이에 존재감 싸움이 만만치 않은 가 보다. 그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사랑스러우랴. 그 아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적도 있었다 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극심한 무력감에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2005년 중반이었습니다. 가슴이 욱하고 통증이 오면 일주일 정도 숨을 잘 못 쉴 정도로 아팠고 몇 달간 지속했습니다. 14년 근무에 산자부장관상까지 안긴 태평양물산에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장님의 강력한 만류에 부딪혔어요. 병가 처리하라는 것이었죠. 근데 저는 후임에게 ‘임시’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고 싶지 않았어요.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그때의 절망감이란 기억하기조차 싫습니다.”
 
 
협상의 묘, 양보와 타협 압박
 
치료 기간이 무려 1년, 그 후 그는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지금의 모락스 인터내셔널(본사 molax trading)과인연을 맺었다. 개인에겐 늘 건강이 과제이듯 산업현장에선 노조와 힘겨루기가 늘 힘든 과제라 했다.
 
“노조 소요를 잠재우는 것은 늘 큰일이죠. 노하우요? 특별한 것 없어요. 때에 따라 다르고 상대 따라 달라요. 평소 관계를 잘 맺는 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일까요? 현지 직원들 출근과 퇴근에 관심을 두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월요일엔 소리 높여 인도네시아 국가를 함께 부르고 기도도 함께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노조원들이 저를 다양하게 호칭하죠. 엄마, 누나, 때론 고정윤.”
 
주지하듯 인도네시아 공무원들의 현장 비리는 심한 편이다. 두루 아는 사실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산업현장을 찾는다. 외국인 회사는 해당 부서 공무원들에게 썩 좋은 비리 대상이다. 그들을 상대로 원만한 해결을 하는 것도 고정윤 전무의 몫이다.
 
“노조건 관계 공무원이건 상대하려면 존중과 양보, 타협이 필요하죠. 느긋이 즐겨야 하고요. 압박도 꼭 필요합니다. 상황에 따라 강한 압박이 효력 만점입니다. 결국, 돈인데 실무자인 저로서는 어떻게 하면 적은 돈으로 해결할까 고민 많이 하죠.”
 
여성이기 때문에 승진이나 현장을 다스림에 있어 유불리가 있을까?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개인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암튼 현실은 현실이죠. 누구라도 이겨내야 해요. 남성들은 실업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죠. 가장이기 때문일 거예요. 여성도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남성과 비교하면 좀 덜 하죠. 그래서 때로 여성이 과감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 때문일까? 그는 면접 시 여자인 척, 연약한 척하는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 여성 직원들에게 “누구에게 도움 받으려는 마음 갖지 말라”고 강조한다 했다. 끝으로 물었다. “독립할 마음은 없으셨나요?”
 
“기회가 있었어요. 좀 조심스러웠죠. 망설이는 사이 기회가 지나갔는데 아쉽지는 않습니다. 모시던 윗분들의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지금은 고인이신 태평양물산 회장님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제 나이 45세 때 법인장 대행을 맡기셨죠. 제가 성장하도록 기회를 주신 겁니다. 조직의 생리를 콕 찔러주신 부회장님의 채찍도 아주 좋은 보약이었어요. 좋은 분들이 많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그분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제 현재에 딱 맞는 격입니다.”
 
당태종과 신하들의 소통을 기록한 책 『정관정요』에서 강조하는 핵심 세 가지가 있다. 소통, 솔선수범, 본질에 대한 통찰이다. 고정윤 전무, 그는 도대체 몇 가지 핵심을 지닌 관리의 달인일까?
 
 
*이 프로젝트는 <자카르타 경제신문>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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