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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3)| 그대 공허한가? 때 없이 찾아오는 공허 경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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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140회 작성일 2018-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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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3
 
#세상에 경영 아닌 것 없다.
#건강을 위해 몸을 경영해야 하고
#마음이 감염되지 않도록 늘 다듬어야 한다.
 
 
조각가 뇨만누아르따의 작품을 통해 경영을 배우다
 
 
환경과 사람
풍토와 사람을 생각한다. 사람과 환경을 헤아린다. 그 밀접한 상생 관계를 되새긴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내가 지금 사는 곳 인도네시아, 나와 이 풍토는 어떤 관계인가? 인도네시아 한국인들은 이 환경과 어떻게 조화하는가? 의문부호가 줄을 잇는 사이 성큼 시작된 새해, 그리고 1월 하순의 하루가 하르르 흐른다.
 
환경과 사람이 불가분 관계임은 고래로부터 주목한 부분이다. 문명의 비약이 눈부신 현대 또한 여전히 사람을 이야기하려면 환경을 살핀다. 환경을 말하려면 그것을 조성하고 이끈 사람을 들춘다. 이 모두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 경영 관계가 있는 게다.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환경, 환경을 조성하는 사람의 상호 경영 때문이리라.
 
풍토가 기른 작가가 있다. 환경을 빛낸 작가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보배 조각가 뇨만 누아르따(Nyoman Nuarta)다. 뇨만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서부 반둥(Bandung)이 기른 작가다. 반둥이 왜? 반둥이 어떻게?
 
반둥은 해발 700여 미터 고원지대다. 연평균 22∼25도로 시원한 기후. 반둥은 년 중 꽃이 지지 않는다. 청아한 반둥이다. 인구 약 150만의 도시에 무려 30여 개의 대학을 보유한 클래스가 있는 교육 도시다. 아취의 반둥이다. 미인이 많은 곳으로 이름났다. 역사의 중심 반둥이다. 제1회 반둥회의가 열린 곳이다. 정신을 이어받았을까? 독립운동의 주체와 민족주의자들을 대거 배출했다.
 
첨단의 반둥이다. 반둥은 인도네시아가 자랑하는 반둥공대와 항공기 제조 공단을 보유했다. 세계적인 지학(地學)박물관이 있다. 학술의 반둥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격조의 반둥으로 칭송받는다. 예술가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다.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증거다. 하니 반둥을 아는 많은 사람에게 늘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랑의 반둥이다. 반둥의 자연과 사람 그리고 역사와 현실, 이 모든 환경이 곧 뇨만이란 걸출한 작가의 바탕이다.
 
“뇨만 누아르따만큼 대중적 유명세를 자랑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 작가는 없다.”
 
뇨만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짐 수빵깟의 평가다. 짐은 “인도네시아인 예술가 뇨만 누아르타가 확실하게 증명한 것은 그의 예술이 세계 작가들의 분위기와 작품을 흉내 냄이 없이 글로벌하게 토론할 수 있게 한다.”고 뇨만의 작품세계를 말한다.
 
▲Yang Kuasa/ Nyoman Nuarta 1994년/ 640x287x535cm/
반둥 북부 조각공원이 있는 마을 입구 로터리 중앙에
우뚝 세워져 있는 뇨만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 조각 공원의 정원. 곳곳에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 작업실과 뇨만 누아르따(Nyoman Nuarta) 2001년. 뇨만 누아르따 작품집에서 발췌
 
뇨만은 세계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환상의 섬 발리 출신이다. 외삼촌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예술을 접하면서 천재성을 드러냈다. 뇨만은 태어나고 자란 발리를 떠나 반둥공대(ITB)의 미술과 디자인 학부를 선택하고 조각을 전공했다. 작품의 처처에서 모티프가 된 아내 아디 위나따를 만난 곳도 반둥이다. 위나따와 함께 처음 스튜디오를 설립했던 마을 전체를 온통 조각공원으로 가꾸고자 원했고, 오늘날 반둥의 자랑인 누아르따 조각공원(Nuarta Sculpture Park)을 이루었다. 덕분에 반둥 북부의 조용한 마을이 예술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반둥시에서 운영하는 이 명소는 이미 반둥의 상징이요 한 축이다. 독특한 건축양식과 함께 격조 있는 돋보이는 실내 전시장을 갖췄다. 알맞게 디스플레이 된 한 점 한 점 작품 모두 그의 대표작이다. 드넓은 야외 전시장에 산재한 대작과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작업실은 장대한 반둥 산천과 쏙 빼닮았다. 정겨운 카페와 작업실 옆 웅장한 자연 폭포의 정취가 덤으로 있다.
 
그대 공허한가? 때 없이 찾아오는 공허 경영법
뇨만은 철망으로 대표되는 작가다. 구리와 황동을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잘라 자유자재로 구성하여 독보적 작품 세계를 구축한 조각가다. 때론 기성의 철망을 활용하는데, 이른바 ‘철망경영’의 진수가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가다.
 
철망, 철망이 드러내는 느낌은 무엇인가? 철망은 연결이다. 여백 가득한 연결이다. 이 여백 가득한 연결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상상을 한다. 반복과 디테일, 노동력을 숨차게 체감한다. 가려졌으되 들여다보이고 막혀있으되 소통 가능한 철망에서 우리는 엄격한 제한과, 자유가 무엇인지를 곱씹게 된다.
 
Borobudur/ Nyoman Nuarta1996년/ 85x85x89cm/
족 자카르타의 보로부두르 사원을 형상한 작품이다.
간절한 염원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LuhⅡ/ Nyoman Nuarta 1994년/ 100x35x70cm
 
Anugerah/ Nyoman Nuarta - 1994년/ 78x25x195cm/
'은총'이란 무엇일까? 누구의 것일까?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Officials/ Nyoman Nuarta - 1990년/ 118x25x112cm/
우리의 관리자들은 어떤 모습일까?
 
The Seven Soul/ Nyoman Nuarta(일곱 영혼) - 1994년/ 120x53x238cm
 
Untitled/ Nyoman Nuarta(무제)- 1988년/ 83x50x110cm
작품 무제다. 울안에 갇힌 개 한 마리가 울부짖는다.
자유를 박탈당한 민중의 분노와 상실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철망으로 빚은 개의 근육과 털을 통해 실감 나게 드러난다.
작품 제목 「무제」는 작품으로 전달하려는
작가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Condemned/ Nyoman Nuarta(저주 받은) 1988년/ 400x100x140cm/
장기수일까? 아니면 사형수일까?
죄수의 긴장과 절망이 철망으로 엮였다.
인체를 이루는 세포와 실핏줄 숫자만큼이나 많고 적나라하다.
 
뇨만이 철망 이미지를 작품 소재로 선택한 것에 대해 짐은 “뇨만이 오랜 고통의 공허한 기간을 견디며 건져 올린 것”이라 썼다. 뇨만은 공허를 견디며 그 자체가 공허인 철망을 발견했던가 보다. 공허가 곧 공허를 메우는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음을 그는 깨달았던 가 보다. 공허 속에 디테일을 알토란처럼 드러내는 수단이 있었다니. 생략의 극치를 탄탄하게 드러내는 아주 훌륭한 역설적 장치라니.
 
역시 예술은 발견이다. 멋진 발견은 훌륭한 경영으로 이어진다. 철망경영이 이처럼 감동적이고 구체적일 수 있는가. 뇨만은 철망을 이용해 역사와 철학을 아주 깊이 드러낸다. 때마다 일어난 사건을 내밀하게 걷어 올린다. 오래된 문화를 긁어모으기도 한다. 그는 때로 틈이 넓은 철망을 직조한다. 씨알 굵은 대어를 낚기 위함이리라. 때로 아주 촘촘한 철망을 조성한다. 바람마저 가두려는 것일까?
 
그의 오랜 공허가 만들어낸 철망은 규칙과 불규칙을 절묘하게 넘나들며 참으로 천변 만상으로 그의 작품 안에서 소통한다. 곳곳에서 청동의 푸른 무게로 똬리를 튼다. 물론 이것은 철망 이미지를 활용하기 이전 뇨만 작품에서 그 가능성을 볼 수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그러니까 철망 경영이 결코 우연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대 공허한가? 누구에게나 길든 짧든 삶의 공허가 찾아온다. 분명한 것은 연습도 없이 우연처럼 찾아오는 공허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막지 못할 공허라면 오히려 벗 삼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뇨만의 작품은 그 지혜의 실체다. 뇨만의 작품을 살펴보자. 긴 공허 끝에 찾은 공허를 놀라운 작품으로 건져 올린 뇨만의 공허 활용법을 살펴 배우자.
 
삶의 절대 요소, 긍정과 확신, 그리고 실천
뇨만의 작품은 감상자가 제목을 확인하는 순간 와락 다가온다. 작가가 대상에 대해 긍정하고 확신했다는 증거다. 뇨만의 작품은 어떤 작품이든지 섣부름이 없다. 가일까 미일까 하는 난해함이 없다. 얇은 감정에 치우친 미혹이 없다. 표피적 상황에 얽힌 전전긍긍이 없다. 긍정과 확신을 옹골지게 실천했음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성공과 실패란 무슨 일을 경영하는가에 달렸지 않다고 강조한다. 어떤 일을 어떻게 경영하는가에 달렸을 뿐임을 작품으로 설명한다.
 
뇨만의 작품은 그 크기에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작품이 많다. 인체를 조형한 작품 중 팔 한쪽을 대형 크레인으로 들어야 할 만큼 초대형 작품이 다수다. 이것은 곧 인도네시아의 환경이 뇨만에게 제공한 선물이다. 연중 늘 비슷한 기온은 작업을 순조롭게 한다. 엄청난 규모의 야외 작업장은 작업 효율 만점이다. 50명을 헤아리는 보조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은 인도네시아가 아니고는 실로 누리기 어려운 환경이다.
 
2007년 작업 중이던 대형 작품. 인체의 머리 부분이다.
 
Nightmare/ Nyoman Nuarta - 2001년/ 445x225x175cm/
작품 「악몽」이다.
침략자들에게 짓밟힌 여체가 변형된 철 가닥으로 절묘하게 직조되어 있다.
차갑게 식어버린 핏빛의 철 가닥으로 삼엄하게 엮여
짓밟힌 여인의 절규와 몸서리를 망연자실로 듣게 한다.
지금은 실내에 설치되어 있는 이 작품이 2014년 방문 당시에는
전시장 사정으로 잠시 외부로 옮겨 전시 됐었다.
 
Rush HourⅡ/Nyoman Nuarta 1992년 360x53x143cm/
러시아워의 모습이 생생하다. 구리와 청동으로 낚은 바람이 세차다.
 
The Fighter/ Nyoman Nuarta 1989년/ 80x78x95cm
 
 
뇨만의 진수는 큰 작품에 머무르지 않는다. 수많은 중 · 소형 작품에서 깊이를 더한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볼수록 놀라는 것은 작품 완성도다. 정말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어 보인다. 어느 구석에서도 나태함을 찾을 수 없다. 치열함이 아름답게 드러난다. 창작의 즐거움이 곳곳에서 아낌없이 멋진 빛을 발산한다.
 
작품은 대상을 향한 작가의 경영이다. 작가와 대상의 교감이며 그 접점이 작품이다. 그러므로 좋은 작품은 감상자에게 질문을 낳는다. 뇨만의 작품은 감상자에게 다듬어지고 격을 갖춘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어떻게 작품이 되는가?”
 
우리는 때로는 자신을 향한 질문을 잊고 산다. 모든 질문의 답을 자신이 지니고 있다는 것도 망각한다. 자신을 향한 질문이 곧 자신에게서 답을 찾는 첫걸음임을 간과하며 산다.
 
뇨만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떠오른 내 질문은 ‘내게 필묵이란 무엇인가? 나는 필묵에게 무엇인가?’였다. 뇨만이 불에 달구고 자르며, 붙이고 깎고 두들겨 형상한 작품들을 살피며, 나는 찍고 긋고 맺으면서 필묵의 자유를 찾는 것이 내 숙제임을 세삼 다짐했다. 뇨만의 작품을 통해 나의 모자란 치열성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의 천재성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배울 것은 그의 노력이다. 압도하는 재료의 양과 작품의 크기는 그의 것이다. 내 조촐한 재료 필묵과 아담한 작품,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은총임을 확인했다.
 
필자와 뇨만 누아르따/ 2007년
 
나는 2004년 뇨만의 작품을 처음 접한 뒤 때마다 그의 조각 공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몇 차례에 걸쳐 그의 작품에 관한 글을 썼다. 물론 빙산의 일각도 살피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다만 그것은 그의 작품이 주는 경외감에 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었다. 그의 ‘철망 경영’ 살피기를 마치는 순간, 그의 작품은 다시 타국 환경에 속한 서생의 가슴에 파고든다.
 
끝으로 그의 철망 경영은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을 사랑하게 하는 단단한 힘임을 밝힌다.
 
 
※ 이글은 필자가 2007년 발행한 평론집 『정상에 오르는 길을 찾아서』에 수록된 내용을 기반 삼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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