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낭까바우, 여자 채인숙 여자는 여자에게 물소 뿔 손잡이가 달린 사다리를 물려주었다 바람을 가두어 벽을 쌓고 뾰족한 돛 모양의 지붕을 올렸다 물소 싸움을 구경하러 마을로 내려간 아이는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낮의 실연과 낮의 어떤 모욕을 되삼키며 길 떠나는 남자의 등을 힘껏 밀었다 파파야 쓴 잎을 데쳐 저녁 밥상을 차리고 여자는 천천히 어둠을 만지며 사다리를 올랐다 곧 허물어질 것들에만 생을 걸었다고 당신에게 도망치던 내 마음도 눈을 감고 저녁 지붕 위…
[디카시] 춤 추는 소년 글과 사진. 조현영 춤 추는 소년이 있었다 바다가 주는 리듬에 맞춰 넘실넘실 소년은 파도 위에서 잘도 들썩였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소년이 있었다 어제 참았던 눈물을 이제야 쏟아내며 그 남자의 어깨는 춤을 추듯 한참을 들썩였다
내 눈 앞에 마시멜로 조현영 인도네시아 코로나 상황이 많이 가라앉고 있다. 점점 내려가는 공식적인 코로나 수치들은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모른척 하기로 한다. 어쨌거나 백신접종률도 높아지고 여러 커뮤니티 활동 규제도 완화되니 적어도 겉으로는 ‘위드 코로나’ 시대로 가까워지는 듯 하다. 자...이제 2년 여를 꼼짝없이 갇혀 지낸 시간에 대한 보상을 좀 받아야겠다.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한다. 탁 트인 공간에서 지루하지 않게 운동할 수 있고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활동. 골프…
죽은 시인을 위한 낭독회 시/채인숙 죽은 자와 산 자가 한 지붕 아래 동거하는 섬에서 우리는 만났습니다 당신은 오래 쓴 시를 숨어서 읽고 있었습니다 혼자 쓰고 혼자 지우는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은 늘 등이 굳어있고 매사 다정하기가 힘이 듭니다 쓰다가 멈춘 문장을 너무 많이 가졌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검은 모래 해변을 함께 걸으며 저녁이 오면 세상의 온갖 색을 거두어들이는 빛의 노동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죽고 싶냐는 질문을 한 적은 없지만 시인은 죽어가는 얼굴을 붉…
어제 그리고 오늘 2021 (부제: COVID19) 최장오 또꼬페디아쇼피블리블리라자다부까라빡알리바바 아마존까지 넘나들다 끝내 잠든 손가락 관절에 바늘 끝 통증이 시름을 더하는 하루 계수나무 아래 금방아를 찧어 대는 21세기, 역사책 한 귀퉁이 처박힌 14세기 흑사병이 구석구석 거리를 휩쓴다 꿈인지, 쉬지 않는 앰블런스에 잠을 깬다 아직도 대낮…… 온몸을 들썩이며 뿜어대는 하얀 기침들 흰 방역복 속 누군가 지옥의 야차처럼 빠짐없이 검문하며 잡아들인다 창틈으로 빠져나와 …
비상 홍윤경 / Pleats kora Indonesia 대표 캄보자 꽃이 핀다. 어서 오라고 캄보자 꽃이 진다. 다시 오라고 늘 뜨겁고 잔망스러워더애달픈오늘의바람. 그 외출 같은 바람에 흙 먼지 추억처럼 섞여 날리 운다. 특별할 게 없어 더 눈물겨운 하루하루 그 사이로 아픈 비가 펑펑 울며 쏟아 붓는다. 또 다른 어느 곳에서 찬란한 허상의 날들을 꿈꾸기에 잃어버린 지금 여기의 날들. 내일 여전히 그러리라 믿어버리기에 특별할 것 없어미뤄두기만 하는 오늘 그런 날들이 떠나고 있다. 수…
자연의 섭리에 대항하는 인간의 오만함: 일본은 왜 포경 산업에 집착하는가? 조인정 드넓은 푸른 바다를 가르는 거대한 고래를 난 항상 두려워했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 읽은 허먼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모비딕』(1851)이 아마 그 발단이었을 것이다. 흰 고래 모비딕은 자신에게 작살을 던지는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선원들을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상대하고 그들을 깊은 바닷속으로 수장시켰다. 그 살벌한 모습은 나를 잔뜩 겁에 질리게 했다. 그런데 어쩌면 고래에 대한 나의 막연한 두려움이 오히려 내…
인도네시아의 보검, 끄리스 (KRIS) 사공 경/ 한인니문화연구원장 서울에 세종로가 있듯이 자카르타에 수디르만로가 있다. 이도로 입구 중앙에는 한 시절의 영웅이 아니라 나라의 영원한 상징이 된 수디르만 장군의 동상이 있다. 수디르만 장군 동상은 네덜란드 재침략에 대항해 죽을 때까지 나라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을 담아 낸 것이다. 왼손에는 지휘 지팡이를 들고 있고 코트에는인도네시아 단검인 끄리스(Keris)가 꽂혀 있다. 거수 경례를 하면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는, 출정 직전의 군인의 위엄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
아름다운 다양성의 나라 인도네시아, 그 여정으로의 초대 글.사진 이혜자 / 리빙스타일리스트 한국의 서양요리 역사는 고종황제때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된지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이에 때 맞춰서 개관한 한국 조리박물관은, 세계 최대 규모의 서양요리 박물관이다. 8개의 주제로 26개의 부스로 나뉘어 상설 전시관과 특별 기획관으로 구획 되어 있다. 박물관은 경기도 안성에 8천 평이 넘는 가족 공원에 자리잡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체험과 교육의 공간으로 한국 조리역사의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
포스트 코로나 시대, 당신은 무엇을 기대하나요? 조은아 최근 한 프랑스인이 롬복의 린자니 화산에 널린 1,600kg 상당의 쓰레기를 수거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는 린자니 화산을 처음 올랐을 때 산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에 큰 충격을 받아, 바게트 빵을 팔아 자금을 모으고 롬복의 환경단체인 그린린자니(Greenrinjani)와 함께 쓰레기 원정대를 꾸려 3일에 걸친 쓰레기 수거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자신의 나라도 쉽게 실천할 수 없는 일을 먼 타국 그것도 해발 3,000m 화산에서의 쓰레기 수거라니, 대단한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