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di에게 김기역 야근을 마치고 회사 앞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담배를 하나 피워 물고 걸었다. “Permisi~!”(실례합니다~!) 웬 아낙네 목소리에 돌아보니 기다란 인도네시아 리어카를 끄는 작은 체구의 아주머니가 씩씩하게 나를 비켜간다. 리어카에 플라스틱 병들과 박스 폐지 등을 담은 작은 마대자루들이 있었고 그 마대 더미 위에 앉아 덥수룩한 머리의 어린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거리에 책을 읽는 애들이 있다?’ ‘Eti’(…
보물을 잉태한 항아리 김현숙 자카르타 국립박물관 보물관에서 할머니의 고추장 단지를 보았다 바스러질 듯 윤기 잃은 갈색 항아리가 시간이 머물지 않는 유리관 속에 누워있다 섭씨 1,000도가 넘는 머라삐의 용암과 천 년의 세월을 화산재 아래 버티며 금세공품들을 품어낸 그 항아리 드라마틱한 이야기 하나 없이 농부의 곡괭이에 슈퍼보물을 잉태한 그는 훤히 보이는 관 안에서 아직도 산후조리 중이라지 불 가마에 두 번 구워진 몸은 고열에 터진 황금장식 속 …
창공을 향해 도약하는 디르간타라 동상 배동선 디르간타라 기념비(Monumen Patung Dirgantara)는 빤쪼란 동상이나 사냥꾼 동상이라고도 알려진 적이 있지만 사실 ‘디르간타라’란 대기권, 공중, 창공을 뜻하는 단어로 인도네시아의 항공 산업 또는 인도네시아의 창공을 나타내는 조형물을 만들고자 했던 수까르노 초대 대통령의 생각을 반영하여 건설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동상이 사실 우주인을 표현한 것이라는게 정설입니다. 우주를 향해 나아가려는 인도네시아 민족의 벅찬 포부를 그린 것이죠. 얼굴을 한…
삼빠이 줌빠 자카르타 박정자 어느 저녁 당신은 그곳에 당도한다 잡아끄는 낯선 언어와 짐꾼들의 손을 지난다 당신은 공항을 나서자 갑자기 밀려든 젖은 열기에 잠시 당황한다 열대의 몸냄새에 목젖이 간질 코끝이 간질거린다 별모양 밤풍경이 악수를 청하며 당신을 안심시킨다 슬라맛 다땅 Selamat Datang 새들의 활기에는 어둠을 밀어내는 힘이 있다 꽃으로 단장한 나무들이 당신을 바라본다 웃는다 당신은 바틱과 가믈란에 새겨진 남국의 무늬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잘 웃고 바쁠 것이 별로 없다는 그곳의 풍…
Sjahrial Djalil 김현미 Kemang timur 66번지.탄성을 자아내는 박물관을 구경하는 내내 궁금증이 일었던 그, 소박하기 그지 없는 침상에 누워 있던 그를 보았던 첫 장면이 스틸컷처럼 남아 있다. 그는 2013년 박물관 시상식에서 최고의 개인 박물관으로 선정된Museum di Tengah Kebun의 설립자이며 소유주이다. 19세기는 작가의 시대, 20세기는 평론가의 시대, 21세기는 컬렉터의 시대라고 했던가. 컬렉터는 도대체 어떤 힘으로 탄생하는걸까? 작품은 작가에 의해서 한번 태어나고,…
사로잡히지 말 것 사진과 글 / 조현영 그때 내가 그것을 하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는 아니 된다는 타당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두려움’은 언제나 의지보다 더 커서 본능처럼 존재했다 하루도 같은 하늘은 없었고 하루도 같은 나는 없었다 세상사 마음먹기 달렸다던데 하늘은 마음먹고 아름다운가 그렇다 해도 나는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는 밤이 있었다. ( 자카르타 서쪽 하늘 25일의 기록)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에 함께 실립니다.
네덜란드 인 묘지* -EGHTGENOOT VAN MR PITER MIJER GEBOREN DEN 6 JULIJ 1816 ONTSLAPEN IN DEN HEER DEN 8 APRIL 1870 시. 채인숙 이방인들이 그들의 묘지로 당신을 데려 갔다 서둘러 이름을 새기고 하얀 나무 십자가를 세웠다 당신이 죽고서야 떠나 왔다는 먼 나라의 당신 이름을 보았다 남은 생은 무덤에 이마를 대고 살아 가야지 낡은 필름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묘지 위로 햇볕이 내려 앉았다 우리는 함께 잊자고 했다 잊을…
자카르타의 한 모퉁이에서 최장오 비가 내린다 바람과 마른 도시 냄새가 버무려져 내린다 멘뗑의 고가도로 아래서 여장남자를 만났다 사월의 함박눈처럼 어색하게 웃는 표정이 비 오는 하늘을 닮았다 달고 진한 믹스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인다 온 몸이 퉁퉁부어 오줌에서 거품과 단내가 나도록 쏴 쏴 달리는 자동차 소음에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비 오는 날 고가도로 아래서 여장남자를 만났다 삐에로 보다 더 짙은 남자의 웃음이 흐린 하늘을 닮았다 칙칙한 거리의 벽화들이 흐르는…
인도네시아의 그 곳- 보물창고 루마자와 글,사진 / 김현미 ( 인테리어 INPLAN 공동대표) 육중하고도 정교한 조각의 대문이 삐거덕 소리를 내며열렸다. 인도네시아 자와의 전통가옥인 루마자와는 joglo 양식으로 지어진높은 천장을 가진 보물창고였다. 오지연구가이자 여행가인 SANTOS부부의 컬렉션 취향을 따라 이들 수집품들은 색채에 입혀진 속도에 따라 그 강약의 리듬감이 느껴지도록 배치되어 있었고, 시대를 달리하는 비비드한 칼라의 섬세한 패브릭 소품과 함께 세련되게 가공 된 페리도트처럼 빛나고 …
화석을 찾아서 최장오 7만5천년의 세월을 거스르는 커다란 시조새의 눈을 보았다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 바리산맥아래 큰 눈을 부릅뜨고 눈물 가득 담은 시조새의 눈을 보았다. 얼마만큼의 몸 부림과 열기를 토해냈으면 아직도 식지 않은 몸으로 대양의 사이에서 눈물을 흘리는지, 몸과 깃을 다 태우고 눈만 남은, 얼마만큼의 사랑으로 인내하다 분출했으면 핵 겨울을 불러와 사랑하는 것을 모두 얼려버렸을까 적도의 도도한 태양과 아직 남은 열기를 식히며 7만5천년전 그 뜨거움을 잊지 못해 바람도 호숫가를 돌아 화석으로 단단하게 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