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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각에서는 인도네시아 특전사(Kopassus)를 영국의 SAS(Special Air Service), 이스라엘의 Mossad에 비견하여 세계 3대 특수부대로 거명하기도 한다. 1950년대 창설된 특전사는 베니 무르다니 소령의 제1 대대장 시절의 성장기를 거쳐, 사르워 에디 위보워 대령 재임 당시인 1965년 10월에는 공산쿠데타를 단 하루 만에 진압하여 국난을 극복한 자랑스런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국가주의자들의 발호로 인해 국가치안이 혼돈에 빠지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가루다 여객기 태국 돈무앙 공항 납치사건…

  • 4월 1일자로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이임하는 마흐훗(Mahfud M D) 헌법재판소장은 퇴임식이 끝난 직후 기자들이 둘러 서며 마이크를 대자, “국민이 뜻이 그러하다면, 대통령 후보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답변하면서 대선출마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로서 현재까지 대선출마를 공식적으로 밝힌 유력 주자들은, 쁘라보워, 아브리잘 바끄리에 이어 마흐훗까지 가세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 뜻’을 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 경우를 우리는 가끔 접하게 된다. 마치 …

  • 3월 23일 토요일 한밤 중인 12시 30분, 17명으로 구성된 무장집단이 여러 대의 자동차에 분승하여 중부자와 슬레만군(Kabupaten Sleman) 역내에 위치한 쯔봉안(Cebongan) 교도소에 들이 닥친다. 그리고는 교도소 담을 넘자마자 전화선부터 끊고, 당직 직원들의 휴대폰을 수거하며, CCTV 까지 철거해 버렸다. 그리고는 바로 전날인 22일 족자카르타 경찰서에서 이감되어온 11명의 피의자들 중, 4명을 불러오도록 강요하였다.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과정에, 교도소 경비원들도 구타를 당하면서 수감 중인 네 명의 피의자…

  • 육군참모장인 나수띠온 대령의 ‘국군 감축안’을 재검토하라는 의회의 비토에 반기를 들고 예하 부대장인 께말 이드리스 소령이 포신을 대통령궁으로 조준해 놓고, 나수띠온과 참모들이 수카르노 대통령 집무실에 난입하여, 대통령 하야 청원서를 낭독했던 1952년 10월 17일 사건은 인도네시아 현대사에서 ‘쿠데타’란 용어를 처음 등장시키게 된다. 이후 1958년 수마뜨라, 술라웨시 출신의 고위 군지휘관들이 선포한 혁명정부(PRRI)도 쿠데타의 일종이며, 1957년 수까르노의 목숨을 노린 자카르타 시내…

  •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40주년 기념행사가 3월 8일 드디어 그 팡파레를 울렸다. 이날 저녁 한-아세안센터 주관으로 가똣 수브로또가, 발레이 까르띠니(Balai Kartini)에서 열린 리셉션 및 개막식 행사를 시작으로 12월까지 문화, 예술, 학술행사가 연중행사로 이어진다. 이튿날 저녁에는 KBS가 기획하고 주관한 K-POP 행사인 ‘Music Bank in Jakarta’ 가 스나얀 주경기장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밤 11시 반에 끝난 행사 다음날은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인터넷 언론사들은 전날 밤 행사를 &…

  • 1965년 공산쿠데타가 일일천하로 막을 내린 직후, 수하르또 정권이 출범하는데 동력역할을 한‘66세대(Angkatan 66)’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1966년 당시 문교부장관이던 샤맆 따옙 장군이 수카르노 추종세력에 대항하고자, 자유경제를 신봉하는 대학생 조직들을 연합세력으로 묶어 출범한 전국단위의 대학생 단체가 바로 전국대학생연합(KAMI)이었다. 이 단체의 의장은 수마뜨라 바딱족 출신으로 국립인도네시아대학 재학생이던 꼬스마스 바뚜바라(Cosmas Batubara)였으며, 후에 외무부장관을 거쳐 부통령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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