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인니 정부의 역사 '새로' 쓰기, 참혹한 과거사 미화될까 우려는 커져만 가는데... 정치 편집부 2025-05-2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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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쁘라보워 대통령 취임식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인도네시아군(사진=자카르타경제신문/Aditya)
인도네시아 정부가 역사책을 새로 쓰려는 계획이 인도네시아의 가장 참혹한 역사 일부를 쁘라보워 수비안또 대통령과 독재자 수하르또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하려는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화부 장관 파들리 존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10권으로 구성된 새 역사책이 인도네시아 중심의 서사로 국가 정체성을 새로이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러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이 역사 수정주의의 발호를 허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쁘라보워의 압도적인 대선 승리에 기여한 젊은 세대들은 그의 장인인 수하르또가 이끌었던 1966년부터 1998년까지의 신질서시대(Era Orde Baru)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예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다.
1998년 수하르또 대통령 하야 국면에서 그의 딸 띠띡 수하르또와 위장 이혼한 것이라 여겨지는 쁘라보워는 그간 틈나는 대로 수하르또를 공개적으로 칭송했고 정부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군에 의존하며 중용했던 장인의 성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쁘라보워 자신도 군 현역시절 시절 일련의 심각한 인권유린 사건을 주도했다는 혐의와1998년 장인의 하야 직전 벌어진 대규모 폭동 당시 학생 운동가들을 납치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당연하게도 쁘라보워 자신은 이러한 혐의를 거듭 부인해 왔고 그의 최측근인 파들리 문화부 장관도 해당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고 줄곧 주장했다. 그런 파들리 장관이 주도하는 역사 새로 쓰기 사업에서 해당 사안이 어떻게 역사책에 기록할 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국가연구혁신청(BRIN)에서도 근무했던 저명한 역사학자 아스비 와르만 아담은 프로파간다와 실제 역사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는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새 정부가 역사를 다시 쓰겠다고 다급하게 나선 것은 1998년 쁘라보워 대통령 자신이 연루된 심각한 인권유린 사건을 역사에서 제외하는 등 스스로에게 역사적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로 의심되며 정부가 올해 수하르또를 국가영웅으로 추대하기 위해 벌이는 밑작업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와 같이 일부 분석가와 역사가들이 정부가 새 역사책을 통해 쁘라보워 및 수하르또와 관련된 인권유린 사건을 지우고 두 사람을 미화하는 선전도구로 사용할 것이란 가능성을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들리 장관은 ‘역사는 올바르게 기록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을 거듭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새 역사책 집필에 대한 논평 요청에 아직 응하지 않고 있지만 쁘라보워 대통령이 스스로 전직 활동가들도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문제는 파들리 장관이 수하르또 전 대통령의 32년 통치 기간 동안 동티모르와 파푸아에서 군인으로 잔뼈가 굵고 특수부대 사령관까지 역임한 쁘라보워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한 책을 이미 한 차례 집필한 바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과 쁘라보워 대통령이 굳이 이 시점에 새 역사책 편집을 시작하고서 그 과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파들리 장관의 설명이 전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파들리 장관이 작년에 집필을 의뢰했다고 밝힌 새 역사책은 인도네시아 지역의 인류사로 호모 에렉투스부터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 그리고 쁘라보워의 당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약 100명의 역사학자들이 집필과 편집과정에 참여하며 독립 80주년인 오는 8월 17일 이전에 출간까지 완료될 것이라고 파들리 장관은 밝혔다.
싱가포르 ISEAS-유소프이샥 연구소의 객원연구원 마데 수쁘리아뜨마는 쁘라보워 정부의 이번 역사 새로 쓰기는 과거 수하르또 정부가 1975년에 6권짜리 ‘인도네시아 역사(The National History of Indonesia)’를 출간한 것과 같은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인도네시아 역사’는 군부를 미화하기 위해 온갖 부정확한 내용들을 무리하게 포함시켰다. 따라서 마데는 쁘라보워 정부가 새로 역사를 쓰는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역사가 자잣 부르하누딘(Jajat Burhanuddin)은 아직까지 편찬 작업에 국가의 개입은 전혀 없었으며 1998년 학생 운동가 납치 및 고문 사건도 책에 포함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거기에 쁘라보워의 연루설이 함께 언급될지는 밝히지 않았다.
새 역사책의 또 다른 주요 관건은 1965- 1966년 기간 동안 군부와 이슬람 지도자들이 주도해 공산주의자들과 그 동조자들을 대량 학살한 이른바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어떻게 묘사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기간 중 최소 50만 명 이상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엔 공산당과 관계없이 무고한 국민들이 수없이 잡혀가 무죄를 소명할 기회도 없이 막무가내로 처형당했다.
공산당이 수까르노를 지키기 위해 벌인 1965년의 이른바 9.30 친위 쿠데타가 불과 며칠 만에 진압된 후 쿠데타 당시 참혹하게 살해된 반공 장군들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인도네시아 대학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국정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쿠데타 진압을 지휘했던 수하르또 소장은 그후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1967년 마침내 대통령직에 올랐고 32년간 계속된 독재 기간 동안 부패와 족벌주의의 창궐을 주도하거나 묵인했다. 마침내 폭발한 1998년 민중봉기와 경제위기로 물러날 때까지 그는 철권으로 인도네시아를 통치했고 이후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자신의 과오를 사과하지 않았다.
1965년 쿠데타의 진실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파들리 장관은 새 역사책에서 인도네시아 대학살 사건을 더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미 밑단을 깔았다. 즉 정국을 통제했어야 할 수하르또가 당시 전국에서 자행되던 무차별적인 대규모 학살을 통제하기는커녕 조장하고 방조했다는 혐의를 다루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파들리 장관이 예전에 수하르또에 반대하는 학생 운동가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은 사뭇 역설적이다. 파들리 장관은 이제 수하르또를 칭송하며 그가 빈곤 퇴치와 인플레이션 해소 등 임기 초기에 이룬 경제적 성과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수하르또가 국가영웅으로 추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고 말해 이번 역사 새로 쓰기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본의 아니게 노출한 셈이 됐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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