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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고똥로용(Gotong-Royong)의 모태, 인도네시아 계모임 ‘아리산’(Arisan) 문화∙스포츠 편집부 2022-02-1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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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의 식당 (사진=자카르타경제신문)
 
인도네시아 계모임 ‘아리산(arisan)’에 대해 자카르타포스트는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전통이자 사교행사이며 동시에 경제적으로 상부상조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뭔가를 함께 도모하는 즐거운 모임이라고 소개하며 그 역사와 역할에 대해 8일 보도했다.
 
오늘날 블록체인 기술의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주식이나 투자가 뜨거운 이슈이고 가상화폐의 세계가 그들을 유혹하며 온라인 뮤추얼펀드들도 넘쳐나고 있는 요즘 세상에 아직도 수십 년이나 나이를 먹은 아리산이란 경제공동체적 문화가 인도네시아 사회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그 모임이 내포하고 있는 정겨운 분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리산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남아 있는 전통으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정해진 순서나 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이 돈을 타가는 친구들 사이, 또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계모임을 뜻한다.
 
이러한 전통은 인도네시아가 도시화 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이 민간문화의 진면목이 조코 안와르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니아 디나타(Nia Dinata) 감독이 연출한 영화 <아리산!(Arisan!)>(2003)을 통해 영상으로도 남았다.
 
어떤 이들은 아리산이 중년 아줌마들이 모여 수다를 떨며 입소문을 퍼트리기나 하는 모임이란 편향된 인식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아리산을 통해 경제적 도움을 받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경제적 도움
반둥에 사는 72세의 주부 띠엔은 1982년부터 자녀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다른 학부모들을 만나 아리산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아리산은 자녀들이 학교들 모두 졸업한 후에도 지금까지 반 세기 가까이 이어져오고 있다.
 
아리산 회원들은 이제 모임에 손주들을 데리고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해를 함께 지내면서 친자매처럼 가까워진 회원들은 아리산을 통해 모은 돈으로 비싼 제품들을 공동구매하거나 함께 외국여행을 나가기도 했다.
 
그런 아리산의 성격 상 당첨자를 뽑는 추첨시스템 역시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을 겪는 회원이 있을 때 그 사람에게 먼저 곗돈을 몰아주기도 한다. 위급한 상황에 처한 회원을 먼저 당첨시켜 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 없는 아리산 모임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하다.
 
띠엔이 속한 아리산에서 그간 세 명의 회원 남편들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마다 매번 그들에게 곗돈이 먼저 배정되었다. 띠엔의 경우엔 딸이 자카르타의 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아리산 친구들이 자카르타까지 함께 동행해 주기도 했다.
 
그녀의 아리산 회원 중 누군가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될 때 아리산 회비를 추궁하며 목을 조르는 경우가 없다. 대개 요청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두 세 명의 친구들이 흔쾌히 대납해 주기 때문이다.
 
정치적 측면
인도네시아의 아리산과 같거나 유사한 전통을 많은 나라들이 공유하고 있는데 남미에서는 탄다스(tandas), 파키스탄에서는 카메티(kameti), 동남아시아 화교사회에서는 후에이(hui-會)라는 것이 있다. 아리산은 일종의 저축방식이라 볼 수도 있다.
 
역사학자 안디 아크디안(Andi Achdian)은 아리산이 농업사회의 오랜 전통 속에서 태동해 오늘날 고똥로용(Gotong-Royong 인도네시아식 품앗이,상부상조)의 모태가 되었다고 말한다. 동부자바에서 아리산의 오랜 전통을 연구한 그는 아리산의 최초 형태가 마을사람들이 함께 추수한 곡물을 한 개의 창고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네덜란드 식민지시대에 아리산이 현재의 형태로 개편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산업화, 도시화 시류에 떠밀려 도시로 흘러 들어 공장노동자나 가정부가 되었지만 예전 시골에서의 전통을 가져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구축한 일종의 사회안전망이 아리산 형태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대중에 뿌리를 둔 아리산의 특성 상 때로는 정치적 이익단체의 성격을 띄기도 하고 식민지시대에는 독립운동 조직의 기초단위가 되기도 했다.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을 조직해 모임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일부 활동가들을 보다 큰 그림을 그리며 아리산을 정치적으로 사용하려 했다.
 
당시 노동자, 농민 또는 도시빈민들에게 집단적으로 사상이나 의식을 주입하려 할 때 아리산을 통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전혀 모르는 타인들끼리 만드는 온라인 아리산이 인터넷에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요즘 아리산 시스템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이 회원들 돈을 횡령하는 일도 벌어지는데 작년 말에는 깔리만탄 꼬따와링인(Kotawaringin) 서군에서 32세 여자가 아리산 공금 2억5000만 루피아(약 2,000만 원)을 횡령한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온라인 아리산은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방식이 공동출자와 비슷한 것이어서 전통적인 아리산과는 문화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산의 전통이 새로운 세대로 이어가는 또 다른 방편일 수도 있다.
 
한 가족 여러 세대가 함께 아리산을 해온 집안에서는 아들, 손주 뻘 젊은 세대들이 자기 친구들과 또 다른 아리산을 결성해 모임을 계속해 나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남부 자카르타의 알아자르 대학교를 2018년 졸업한 티아는 30여 명의 대학동문들과 아리산 모임을 통해 아직도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티아의 동문들은 매달 오프라인으로 만날 경우 오히려 참여율이 떨어질까봐 온라인 모임을 선호한다. 그 대신 가끔 파티를 열어 직접 얼굴을 볼 기회를 만든다.
 
그들은 이윤지향적 투자 대신 아리산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아리산을 통해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또 다른 차원의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리산이 일부 사람들 생각처럼 단지 구태의연하기만 한 낡은 전통이 아니라는 것이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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