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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인도네시아 사법체계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형제도 사회∙종교 편집부 2021-04-2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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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완토니(가운데)가 2017년 9월 13일(수) 메단 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열리기 전 그의 어머니를 끌어안고 오열하고 있다. 그는 샤부샤부로 알려진 크리스털 메탐페타민 270킬로그램 배달에 연루되어 재판정에서 유죄가 확정, 사형선고를 받았다.(Antara/IrsanMulyadi)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사형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도네시아인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2015년 인도바로미터가 실시한 조사에서 84.1%의 응답자들이 마약 관련 범죄자에게 최고형을 부과하는 것에 동의했다. 2017년 일간꼼빠스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89.3%의 응답자들이 테러 연루 범죄자들에 대한 사형에 지지를 표했다. 심지어 여러 다른 조사들에서 밝혀진 바 사형제도에 대한 선호도는 민주주의(76.2%, 2021년 인도네시아 정치지표 조사), 백신(64.8%, 2020년 11월 WHO조사), 코로나19 팬데믹이 실제인가(79%, 2020년,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 조사)에 대한 찬성의견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사형제도에 대한 이런 높은 국민적 지지가 정부 정책과 공개담론에 실제 반영되고 있다.
 
실제로 전세계적인 사형제도 실행 건수는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국제사면위원회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대비 2020년엔 사형선고와 사형집행이 각각 36%와 2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 관련 추세는 그 반대방향이다.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하면 인도네시아 법정은 2020년 한 해동안 117건의 사형선고를 내렸는데 이는 2019년에 비해 46% 늘어난 수치다.
 
실제 문제는 사형선고 건수가 늘어나는 것보다 사형집행을 축소하거나 폐지하자는 쪽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형을 집행하라는 요구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부패혐의자에 대한 사형도 자주 요청되는데 최근에도 장관 두 명이 부패 혐의로 체포되면서 다시 불거져 나왔다
 
이토록 사형에 대한 높은 열정을 보이는 인도네시아인들은 특별히 피에 굶주렸거나 원한에 사무친 사람들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국민들이 최고형을 지지하는 이유는 원천적으로 그만큼 국민들이 이 나라 형사사법체계에 정의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세계 정의프로젝트(World Justice Project)의 2020년 법률지표는 0부터 1까지를 나타내는데 인도네시아의 형사적 정의로움 지표는0.39를 나타냈다. 이는 지역평균 0.54보다 낮고 세계평균 0.47보다 낮아 조사대상 128개국 중 79번째를 차지했다.
 
128개국에서 13만 가구와 4,000명의 변호사들 대상의 조사결과를 취합한 이 지표는 인도네시아의 형사범 수사 체계가 비효율적이고(0.35), 범죄자 교정시스템이 범죄재발 방지에 비효과적이며(0,29), 형사시스템이 공정하지 못하다(0.28)는 것을 보여준다.
 
범죄자가 과연 제대로 검거되기나 할까, 응분의 처벌보다 가벼운 조치로 끝나지나 않을까 하는 불신감을 가진 국민들이 범죄자들에게 최고형 부과를 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특히 사형을 비롯해 화학적 거세 같은 다른 잔혹한 처벌이 범죄 발생을 억제할 것이란 일반의 생각을 정치인들이나 정부 관료들이 뒤집으려 할 때마다 그 반발이 매번 더 커졌다.
 
하지만 사형이 징역형보다 더 큰 범죄 억제력을 가진다고 믿을 만한 증거는 사실 없다. 여러 국내 연구나 미국을 위시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연구들이 그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1924년 미국의 저명한 변호사 클러랜스 데로우(Clarence Darrow)는 사형이란 “한 사람을 목매달면 다른 이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일견 고대로부터의 미신”에 기반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이른바 ‘억제력’ 주장의 오류를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이 제시되었다. 그간 진행된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은 형사법 전문가 대니얼 네이긴(Daniel Nagin)과 그렉 포가스키(Greg Pogarsky)의 2001년 연구결과처럼 “분명한 처벌이 가혹한 처벌보다 보다 높은 범죄 억제력을 일관적으로 보여 왔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여기에 있다. 범죄행위가 반드시 처벌된다는 확실성이 부족한 인도네시아의 형사정의체계에서 처벌의 강도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과연 효과적인 범죄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경찰들 자신이 마약거래에 연루된 것이 수시로 들통나는 상황에서 마약운반범들을 최고형으로 다스리겠다는 위협이 제대로 먹혀들 것인가? 반부패 수사기관이 거세당하고 수사요원들이 수시로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사법시스템이 과연 부패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피해자들이 사법집행기관을 신뢰하지 못해 대부분의 성폭행범들을 고발조차 하지 못하는데 과연 성폭행범죄가 억제될 가능성이 있기나 한가?
 
권력자들을 비판하는 이들은 ‘명예훼손’ 혐의로 간단히 체포되지만 정권이 자행한 비합법적인 살인사건들은 많은 세월이 지나도 수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사법체제엔 사형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개혁이 필요하다.
 
사형은 그 이유가 어쨌든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한 인간이 어떤 범죄를 지었든 그를 의도적으로 살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잔혹한 일이다. 더욱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형사사법체계에서 집행되는 사형은 그 잔혹한 본질을 더욱 끔찍한 것으로 만든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사형 그 자체만이 아니다. 긴 기다림. 그리고 감옥 속의 가혹한 상황 등이 심리적 정신적 고문이기도 하다.
 
사형제도는 인도네시아 사법제도가 가진 문제점들의 해결책이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사법체제의 실패를 얼버무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인도네시아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모든 범죄에서 사형집행을 폐기한 다른 108개 국가의 대열에 들어서야 한다.
 
1957년 알베르까뮈가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하자. “아무리 치밀하게 계산해 저지른 범죄라 하더라도 사형이란 그에 비교할 바 없는 최고의 계획 살인이다.” (Jakarta Post/Usman Ham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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