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세계 국방장관들의 회합 '샹그릴라 대화'에서 침묵한 인도네시아 정치 편집부 2025-06-1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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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한 쁘라보워 수비안또 당시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사진=인스타그램 계정@prabowo 캡처)
올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Shangri-La Dialogue)에서 인도네시아가 이례적으로 침묵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 관측통과 분석가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이는 지정학적 정세가 날로 심각해지는 시기에 인도네시아가 국방정책의 명확한 전략적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최근 인도네시아가 잇따라 여러 외국들과 방위 협정을 체결한 것과 쁘라보워 수비안또 대통령이 과거 이 연례 포럼에 참석해 거침없는 발언을 해왔던 것과 달리 올해 인도네시아는 이 포럼에서 눈에 띄는 행보나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이는 주요 강대국들의 반발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단순히 일관된 안보정책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지난주 해당 포럼에는 40개국 이상의 국방 지도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참석해 대만의 지위, 남중국해 영토 분쟁, 핵 확산 위협 증가 등 중요한 국제 문제들을 다루었다.
이번 회의는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와 일찌감치 초강대국으로 지위가 상승한 중국 때문에 세계적 불확실성이 고조된 가운데 열렸다.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그 주변국들은 이들 두 나라가 주도하는 경제와 정책 경쟁, 그리고 그로 인해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세계질서 속에서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인도네시아 대표단은 도니 에르마완 따우판또 국방차관을 대표로 하여 이 회의에 참석했다.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당시 쁘라보워 국방장관이 줄곧 참석했던 것에 비해 이번에 인도네시아 대표단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주 국방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포괄적이며 대응적인 안보질서 개발에 있어 인도네시아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전략적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이번 회의에 참석한 도니 차관과 대표단의 임무라고 밝혔다.
이틀간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도니 차관은 미국-동남아시아 국방장관 비공식 회의에 참석해 아세안의 국방협력 역량강화에 대해 논의했고 미-중 경쟁에 맞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제3의 길’ 옹호 기조연설을 하던 또 다른 회의에도 참석했다.
정부는 도니 차관의 샹그릴라 대화 참석이 인도네시아의 국방외교 강화와 권역 및 글로벌 파트너들과의 전략적 관계 구축을 희망하는 인도네시아가 적극적인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는 공식 성명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왜 침묵?
정부는 인도네시아가 샹그릴라 대화를 비롯해 주요 지역안보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분석가들은 쁘라보워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샹그릴라 대화인 올해, 인도네시아가 눈에 띄게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즉 별다른 행보나 발언을 통해 분명한 입장과 방향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쁘라보워 대통령은 국방장관 시절 아시아-태평양 권역은 물론 세계안보문제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목소리를 내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샹그릴라 대화를 활용해 왔다. 2023년에는 우크라이나 비무장지대 건설과 평화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유엔 감독 아래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가 국제사회의 격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24년에는 대통령 당선자 신분의 국방장관으로 또 다시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한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이른바 ‘두 개의 국가’ 해법을 촉구했고 의료진과 야전병원을 파견하여 유엔이 주도하는 가자지구 평화유지군 활동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전폭적 지지를 보이는 등 적극적인 입장 표명을 주저하지 않았다.
올해 인도네시아는 러시아, 터키, 프랑스 등 여러 국가들과 국방 협력을 고위급 차원으로 속속 격상시키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음에도 불구, 싱가포르 회담에서는 동남아시아 최대 인구와 영토를 가진 국가 위상에 걸맞지 않게 어떠한 주목할 만한 발언도 내놓지 않았다는 점에 전문가들은 주목했다.
물론 인도네시아가 이번 회담에서 신중한 태도를 취한 것은 트럼프 등장 이후 극단적으로 뒤집히고 있는 미국의 외교정책, 이에 완강히 저항하는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격변 등 긴장이 고조되는 두 강대국 사이의 갈등이 첨예화되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일각의 분석가들은 이러한 역학관계가 인도네시아가 주요 다자간 포럼에서 양측에 잘못된 신호를 줄 지도 모를 적극적인 발언으로 목소리를 내기보다 자국 이익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방어적인 신중한 접근 방식을 취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이 이번 샹그릴라 대화에 이례적으로 고위 관리들을 파견하지 않은 것 역시 두 강대국의 긴장고조 상황을 입증하는 또 다른 증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젠드랄 아흐맛 야니 대학교(UNJANI)의 안보분석가 요하네스 술라이만은 국제상황이 과열되면서 곤경에 처한 인도네시아로서는 현재 어떤 말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예측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쁘라보워가 국방장관으로 연설하던 작년, 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있던 시절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는 과감한 발언을 내놓는 것은 스스로 위험을 불러들이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아세안에서 인도네시아의 리더십이 약화되면서 더욱 악화되고 있다. 쁘라보워의 대통령 취임 이후 국방 중심의 외교와 교섭을 활발히 진행하면서도 정작 인도네시아의 전략적 입장 자체는 대체로 불분명하다.
다른 한 편으로 인도네시아 대표단이 이번 회담에서 눈에 띄게 침묵을 지킨 것은 인도네시아가 다자외교를 더 이상 중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그들은 쁘라보워가 대통령이 된 이후 다자 외교보다 양자 외교를 더 선호한다는 평판이 나오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쁘라보워로서는 샹그릴라 대화가 장관급 이상의 인물을 파견해야 할 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벤트라고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는 이미 미국 및 프랑스 등과 직접 1:1로 협상하고 있다.
애버리스트위스 대학교(Aberystwyth University)국제관계 전문가 아흐마드 리즈끼 M. 우마르는 쁘라보워 대통령이 외교정책에 있어 자신만의 독특한 브랜드를 가진 인물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앞으로도 ‘쁘라보워 표’ 양자외교는 이번 정권의 특징적 정책 패턴이 되어 지속될 가능성이 크며 대통령의 성향을 감안하면 안보문제를 포함한 여러 사안들이 공개무대가 아닌, 밀실에서 비공개로 논의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자카르타포스트/자카르타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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