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과거로 돌아간 일본 정치 편집부 2012-12-1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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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무장론자인 극우 아베
총선서 압승, 3년만에 귀환
독도·위안부 갈등 커질 듯
16일 치러진 일본 총선의 결과는 ‘보수 대약진, 진보 몰락’으로 요약된다. 아사히(朝日)신문의 예측에 따르면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모두의 당, 국민신당 등 상대적으로 우익·보수 성향 정당들의 예상 의석수가 전체 480석 중 350석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자민당이 285석 정도였고, 일본유신회가 46석, ‘모두의 당’이 18석이었다.
반면 민주당과 일본미래당, 공명당, 공산당, 사회민주당 등 리버럴 성향의 진보정당들을 모두 합쳐봐야 126석 안팎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과 일본 정치지형이 3년3개월여 만에 180도 달라진 것이다. 2009년 8월에 치러진 총선에선 민주당이 480석 중 308석을 휩쓸었다. 이 밖에 공명당과 공산당, 또 사회민주당 등 이념적으로 진보색 짙은 정당을 포함하면 모두 345석에 이르렀다. 반면 자민당은 119석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고 ‘모두의 당’도 5석에 그쳤다. 극우정당인 일본유신회는 3년 전엔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보수 우익 정당에 대한 표 쏠림’ ‘진보의 몰락’을 자초한 건 무능과 분열로 요약되는 민주당 정권 3년이었다. 중의원 해산때까지 230석을 유지했던 민주당은 그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80석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실패는 진보 정당으로서의 역할 실패이기도 했다. 3년 전 민주당은 ‘콘크리트에서 인간으로’를 모토로 자민당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자민당 정권 때와 대비되도록 복지공약들을 대폭 강화했지만, 그 공약들은 민주당 3년 동안 대부분 휴지조각이 됐다.
분열은 진보의 몰락을 부채질했다. 힘을 합쳐 자민당에 맞서도 모자랄 판에 실제론 점점 반대쪽으로만 갔다. 소비세 인상을 둘러싼 갈등으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 전대표가 민주당을 뛰쳐나갔다. 그러나 오자와 세력이 주축을 이뤄 만든 일본미래당도 이번 총선에서 낭패를 봤다. ‘반원전과 반소비세’로 표심을 자극했지만 해산 전 의석(61석)의 4분의 1 수준인 15석 안팎의 의석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도 죽고 오자와도 죽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우익의 약진은 일본 사회 우경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민주당 정권 출범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터넷은 ‘네트우익’이라 불리는 극우세력에 의해 장악됐다. 장기간의 경기침체는 우익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목소리에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묻지마 지지 문화’로 이어졌다.
이에 편승해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와 일본유신회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郎), 하시모토 도루(橋下徹)가 우익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선거전 내내 주도권을 쥔 건 공격적 성향의 이들 세 사람이었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애매한 좌표 설정때문에 애초부터 보수·우익과 진보·리버럴의 대립 축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우시로 후사오(後房雄) 나고야대 교수는 “우익부터 좌익까지 혼재돼 있는 정체성 없는 자민당, 또 현실 타파를 기조로 내건 일본유신회과 차별화하기 위해선 민주당이 ‘새로운 시대의 좌파’로 정면승부를 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오키베 마코토(五百籏頭真) 전 방위대학학장은 “일본의 슬픔은 무모한 매파와 유약한 리버럴로 정치권이 양극화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개혁에 투철한 비전을 가지면서도 외교적 수완을 겸비한 지도자가 적은 게 일본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에게 선택지가 좁아 자민당으로 표가 몰릴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들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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