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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란 일본 국뽕에 발목 잡힌 적도의 조선인 전사 / 배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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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055회 작성일 2019-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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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뽕에 발목 잡힌 적도의 조선인 전사
 
 
배동선 /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지난 11월 28일(금) 인도네시아 최대 출판사 그라메디아가 자카르타 시내 암바라 호텔 (Ambhara Hotel)에서 주최한 최준 시인의 번역시집 <Orang Suci, Pohon Kelapa>의 출판기념회에서 히스토리카 역사협회 압둘 바시드 회장을 만났습니다.
 
역사상 저평가된 독립투사들을 발굴하고 그 후손들의 생계를 후원하는 히스토리카가 활동 방향과 그리 걸맞지 않은 한인사회 문화행사에 자주 참석하게 된 것은 서로의 역사 세미나에 발제자로서 참석했던 그간의 교류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난 2년간 줄곧 추진해 왔다가 올해에도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가룻 군 내 양칠성로 명명식에 한인사회와 한국정부의 후원과 지지에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히스토리카는 공식적인 요구나 제안서를 불쑥 내밀기보단 돈독한 인간적 관계를 먼저 형성하려 노력하는 친구들입니다.
 
<사진=히스토리카 인도네시아 역사협회의 압둘 바시드 회장>

아시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양칠성은 1942년 8월경 조선을 출발해 당시 '동인도'라 불리던 인도네시아에 도착해 주로 연합군포로 감시를 맡았던 조선인 일본군 군무원 1.400명 중 한 명으로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한 후 전범색출과 귀국을 앞둔 일본군 병영에서 이탈해 당시 독립투쟁을 준비하던 가룻 지역 빠빡 왕자의 부대(Pasukan pangeran papak = PPP)에 일본인,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 합류한 인물입니다.
 
이후 그는 1948년 나포당하던 날까지 인도네시아 독립군으로서 전선 후방 적지에서 필사적인 게릴라전을 벌였고 체포된 후 자카르타의 글로독 형무소에 다른 조선인 전범혐의자들과 함께 갇혀 있다가 이듬해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간의 본격적인 휴전이 발효되기 직전 총살당합니다.

일본인 학자 우쓰미 아이꼬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양칠성이 일본군 상관이었던 아오키, 하세가와 등과 함께 가룻 공동묘지에서 처형당하는 순간 기미가요를 부르고 천황폐하 만세를 외친 후 최후를 맞았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5년차 인도네시아 독립군이었고 이슬람에 귀의해 모두 나름의 인도네시아식, 이슬람식 이름을 얻었던 양칠성과 그의 동료들이 과연 죽음을 앞둔 순간 뜬금없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는 것은 너무나 뜬금없습니다. 그 부분의 묘사는 우쓰미 교수의 '적도하의 조선인 반란' 책자 마케팅을 위해 일본내 애국심을 고취시키려 마케팅 차원으로 가미한 국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편 이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해온 현지 역사잡지 마잘라 히스토리아 (Majalah Historia)의 핸리 조하리 기자는 처형을 통보받은 양칠성과 동료들이 인도네시아 국기를 상징하는 적백색 모티브의 옷을 지어 달라는 마지막 소원을 말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옷을 입고서 가룻 외곽 찌마눅 강변에서 '머르데카'(Merdeka! = 독립!)을 외치며 네덜란드군의 총탄에 스러졌다는 현지 목격자와 후손들 탐문취재기자를 연속적으로 실었습니다. 다 지난 일이고 다시 증빙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상의 두 버젼 중 어느 쪽이 더욱 개연성이 있을까요?

"가룻 부빠티가 원하는 바가 있었는데 그동안 그걸 얘기하지 않은 거에요. 그러다가 정작 날짜가 다가오니 부빠티 측에서 성의를 보이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여러 가지를 요구했는데 그 중엔 가룻군(郡) 일부 공무원들을 한국에 보내 달라는 요구도 있었어요."

바시드 회장의 말에 난 실소를 흘렸습니다. 물론 그건 이미 예상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규정 외의 어떤 사안을 누군가 민원을 통해 요청했을 때 그걸 맨입으로 수락해 주는 공무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인니 역사상 가장 공정하고 서민적인 조코위 대통령이 재선 임기를 시작해 집권 6년 차에 돌입했지만 관료들이 부당한 대가를 비공식적으로 요구하는 현지 공직사회의 문화는 별반 개선되지 않은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일단 군청에서 뭘 원하는지 잘 파악해서 알려주세요. 말이 되는 수준이라면 대사관이든 본국 정부든, 아니면 한인회에라도 전달해 의견을 받아보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한 코멘트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양칠성에 대한 한국인들 평가는 갈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이름을 딴 도로가 인도네시아에 생긴다면 분명 영광스러운 일이니 요구사항들이 납득할 만하다면 어떡해서든 수락을 받아내 보겠지만 만약 요구가 터무니없다면 우린 여지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정부가 논란 있는 인물의 도로명을 내려고 납득할 수 없는 세금지출을 하거나 현지 지방정부에 구걸하는 모양새를 취할 사안이 아님을 가룻 군청도 이해해야 합니다."
 

시집 출판기념회 이틀 전인 27일(수) 자카르타를 방문 중이던 재외동포재단 한우성 이사장 일행을 한인회에서 점심식사 모시는 자리가 마침 있었고 난 한인들의 인니 진출 100년을 맞는 2020년 기념사업인 한인 100년사 편찬사업의 후반기 공동총괄위원 자격으로 참석해 재단사업 제안과 이사장님 코멘트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00년사 이벤트로서 가룻 지역 양칠성로 설치에 대해 히스토리카 역사협회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한국인 이름을 현지 도로에 붙이는 행사에 한국정부가 대체로 외면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니 가능하다면 정부나 재단차원의 후원을 요청했는데 이사장 답변은 대략 이랬습니다.

"그 문제 잘 압니다. 그 부분에 있어 양칠성씨의 성격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재단 설립취지 중 동포지위 강화에도 방점이 찍힌 만큼 양칠성로 설치는 그런 측면에서 의미 있지만 재단이 움직인다면 그건 국민세금을 쓴다는 의미이니 세금을 써 후원할 만한 사업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그 사람의 성격규정이 중요한 거죠."
 
<자카르타를 방문 중인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2019. 11. 27)>

양칠성의 성격규정이란 즉 그가 친일파가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에 반감이 드는 것은 양칠성에 대해 제기하고 있는 정부측 입장이란 것이 일제 말기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 징병, 강제 징용으로 중국, 동남아 전선이나 각지의 전쟁물자 조달사업과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태반인데 그들이 결과적으로 일본군에 협조한 것으로 보고 그들이 친일파였기 때문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당시 학도병들, 징용자들, 위안부들을, 특히 현지에서 사망하거나 돌아오지 못한 것을 그 시대를 살았던 조선인들의 불행한 운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잠정적으로 적극적 친일파 또는 전범 용의자 선상에 놓고 있는 건 아닐까요? 김창용, 노덕술 같은 이들을 버젓이 국립묘지에 눕혀 놓고서 말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양칠성 최후에 대한 우쓰미 아이꼬 교수의 기술은 그대로 전용되어 향토 사학자 김문환 선생의 '적도에 뿌리내린 한국인의 혼'에도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 모습으로, 그후 2018월 9월 16일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국가정체성이 불분명한 모습으로, 심지어 2019년 3월 4일 한국일보 기사에서는 ‘일본군의 똥개’라는 자극적인 제목까지 달면서 양칠성의 이미지는 ‘일본군 군무원 출신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에서 ‘죽는 순간까지 천황폐하 만세를 외쳐 애국심에 먹칠 한 인물’로 전락하여 각인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한국정부 측에서도 관망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올 상반기에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대사관과 전북도청으로부터 각각 구두와 이메일로 받은 외신은 ‘양칠성에 대해 공식입장이 없다는 것이 공식입장이다’와 ‘양칠성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 입장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공무원들은 기가 막히게 빠져나가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기름장어는 반기문 만이 아닌 겁니다.

이후 전주MBC가 제작한 특집 다큐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양칠성> ( https://www.youtube.com/watch?v=zliJzVAPG_I)에서 새로 취재되어 발굴된 그의 처형장면을 보도했지만 처음 새겨진 각인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MBC 특집 다큐]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조선인 양칠성[특집프로그램] 전주MBC 2019년 02월 25일www.youtube.com

2020년 인도네시아 한인역사 100년을 맞아 가장 의미있는 이벤트가 될 지도 모를 양칠성로 명명식을 한국 측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히스토리카가 혼자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물론 양칠성의 위상이 한국 독립운동가가 아닌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이므로 인도네시아인들이 추진하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영웅이 한국인인 걸 잘 알면서도 한국정부나 교민사회가 딴청을 부리며 못본 척하는 것은 분명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재인도네시아 한인회(박재한 회장)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어주고자 하지만 가룻 군청, 서부자바 주정부, 나아가 어쩌면 인도네시아군과 조코위 정부까지 개입될 개연성 큰 이 사안에 한국 정부측의 호의적인 관심표명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하여 양칠성로 명명식이 2020년 어느 시점에 반드시 이루어지고 그 도로변에 천막을 치고서 한인 100년사 출판기념회를 한다면 더욱 의미깊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20년 9월 20일 처음 인도네시아에 발을 딛은 장윤원 선생이 한인 100년사의 첫 인물이었다면, 1942년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1949년 처형되어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이 된 양칠성 역시 한인사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우리 동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를 기리는 것은 그와 함께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끝내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현지에 뼈를 묻은 국재만, 정수호 같은 빠빡부대 동료들과 전범 혐의를 받아 스러져간 여러 조선인 군무원들의 넋을 기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끝)
 
2019년 8월 UI 대학교에서 열린 양칠성 세미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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