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란 <알리와 퀸즈의 여왕들>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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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와 퀸즈의 여왕들>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배동선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 2021년 7월의
일이었으니 내 리뷰가 2년 반쯤 늦은 셈이다.
아직도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에 나온 <알리와 퀸즈의 여왕들(Ali & Ratu Ratu Queens)>은 분명 팬데믹 이전에 촬영을 끝냈을 텐데 그렇다면 넷플릭스에
공개되기까지 최소 1년 반 이상 후반 작업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여러
영화제에 노미네이션만 되고 결국 편집상을 받지 못했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무리없는 깔끔한 편집이 인상적이었다.
인도네시아 영화들을 많이 보고 현지 영화산업 보고서를 8년쯤 쓰고 리뷰와 평론을 여러 번
하고 나니 이 영화가 좋은 평을 받았던 이유가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 배우들의 면면을 보고 금방 이해되었다.
<알리와 퀸스의 여왕들>은 2021년과 2022년에 다섯 군데 영화제에 출품되어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션되었는데 특히
2021년 인도네시아 영화제(FFI 2021)에서는 총
14개 부문에 노미네이션되었다가 알리를 버린 엄마로 분한 마리사 아니타(Marisa Anita)가
여우조연상을 하나 타는 것에 그쳤다.
사실 충분히 그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음에도 한 부문 수상에 그친 것은 그해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총 12개 부문을 수상한 <복사기(Penyalin
Cahaya)> 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OTT 영화를 대체로
경원했던 인도네시아 영화제가 두 넷플릭스 영화에 상을 모두 몰아주는 건 극장개봉 영화를 우선으로 치던 영화인들의 전통적 자존심을 짓밟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직전에 열린 인도네시아 기자영화제(FFWI 2021)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촬영상, 여우조연상 등 다섯 부문을 석권하며 기염을 토했고 거기에 <복사기>는 등장도 하지 않았다. <복사기>가 넷플릭스에서 개봉된 것은 2022년 1월의 일로 2021년 영화제들이 진행될 당시엔 일반인들 중엔 아직
아무도 그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유명 시나리오 작가인 기나 S. 누르(Gina S. Noer)가 각본을 썼다는 점이다.
그녀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들 중엔 <사랑의 조건(Ayat-Ayat
Cinta)>(2008), <하비비와 아이눈(Habibie & Ainun)>
1-2편(2012, 2016), <소유욕(Posesif)>(2017),
<쯔마라 가족(Keluarga Cemara)>(2019), <써니>의 리메이크 <베바스(Bebas)>(2019)
등이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았고 직접 감독한 <두 개의 파란 선(Dua Garis Biru)>(2019), <첫 번째, 두
번째 & 세 번째 사랑(Cinta Pertama, Kedua
& Ketiga)>(2022), <라이크 & 쉐어(Like & Share)>는 모두 문제작으로 꼽히며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기나 감독은 자타 공인 ‘금손’이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 면면도 심상치 않다.
주인공 알리 역의 익발 라마단(Iqbaal Ramadhan)은 1999년생의 잘생긴 젊은 배우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내리 3년간 로컬영화 흥행수위를 차지했던 <딜란(Dilan)> 3부작의 주연을 맡았다. 대략 <비트>의
정우성 포지션이라 보면 된다.
▲<딜란> 3부작 속 익발 라마단
인도네시아의 문호 쁘라무디야 아난타 뚜르의 동명 소설을 기반한 <인간의 대지(Bumi Manusia)>와 범죄 스릴러 <라덴살리 절도작전(Mencuri Raden Saleh)>에서도 전혀 다른 캐릭터의 주연을 맡았다. <알리와 퀸즈의 여왕들>에서는 아무런 구체적 계획이나
약속도 없이 무작정 뉴욕에 도착한 순진무구한 자바의 시골 청년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했다.
니리나 주비르, 아스리 웰라스, 띠까 빵가베안, 해피 살마, 마리사 아니타 등 경험 많고 연기력 좋은 여러 조연들이
열연하며 영화의 신뢰성을 더했다. 특히 띠까 빵가베안은 2022년
인도네시아 대표영화로 오스카에 출품되었던 <가장 달콤한 작전(Ngeri-Ngeri
Sedaap)>에서 장성한 아들들을 거느린 바딱 전통사회의 코믹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어머니 역을 감동적으로 소화했는데 여기서도
불만 많고 동시에 합리적이며 정의로운 안쩌(Ance) 아줌마 역을 맡았다.
한편 <과거, 현재, 그리고 그때(나나)>에서
마음 속 큰 트라우마를 앉은 채 1960년대 자바의 전통사회를 살아가는 저택의 여주인 역을 설득력 있고
절제된 연기로 구현해 2022년 인도네시아 영화제(FFI 2022)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해피 살마가 여기서는 신비주의에 빠져 어딘가 맹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적극적인 출장 마사지사를 연기했다.
▲띠까 빵가베안의 <아주 달콤한 작전>(왼쪽)과 해피 살마의 <나나>
영화 속 스토리는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다.
꿈을 찾아 미국으로 떠난 엄마. 돌아오지 않는 아내에게 실망하고 이혼한 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다가 엄마가 아직 미국에 살아있고 자기를 데려가려고 비행기표를 보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알리는 집을 세 놓아 받은 돈으로 무작정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다.
엄마를 만나는 과정이 순탄치 않지만 뉴욕에서 만난 네 명의 아줌마들로부터 동정과 관심, 그리고
도움과 격려를 받아 그 사이 주소를 옮긴 엄마를 우여곡절 끝에 결국 만나게 되지만 이미 미국인 남자와 결혼해 두 자녀를 낳고 가정을 이룬 상태.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침내 엄마를 찾았지만 그래서 그제서야 진정으로 버려지는 알리가 아줌마들과 연인의 도움으로
아픔을 극복하는 이야기.
이미 어디서 열 번쯤 봤음직한 내용이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좋은 연기로 인해 감동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중간에 끊고 냉장고에 한 번 다녀올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재미와 흡입력이 있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인도네시아 재외국민들의 애환, 미국인과 결혼해 부촌에 정착한
사연 많은 여인의 불안한 지위, 시골청년의 선의와 순진함이 세상의 진실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무거운
아픔, 퀸즈의 허름한 아파트를 나누어 쓰며 밑바닥 일을 하지만 의외의 모성애와 우정이 철철 넘쳐 흐르는
여인들.
이런 것들이 녹아 든 시나리오를 룩키 꾸스완디 감독이 영상 속에 너무 과하지 않게 잘 담아냈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고 넷플릭스 전국 네트워크에 올라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단계부터 인도네시아 드라마 영화의
세계화를 목표로 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시골에서 수도로 상경한 엄마가 부유한 다른 남자와 새살림을 차린 것으로 해도 될 만한 스토리,
그래서 싱가포르나 중국, 유럽 어딘가여도 상관없을 공간적 배경을 굳이 넷플릭스의 본진이
있는 미국, 그것도 뉴욕으로 잡은 것이나 영화 속 1세대
이민자들인 아줌마들이 자기들끼리 또는 인도네시아에서 방금 온 사람들과 대화할 때 절반쯤은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인도네시아 음식들, 특히 어떤 매체가 세계 최고 맛있는 음식으로 선정했던 빠당(Padang)식 소고기 조림 요리 른당(Rendang)을 여러 차례
반복해 소개하는 것에서 그런 점을 느낄 수 있다.
인도네시아 영화가 해외에 소개된 것은 좀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의 이목을 끈 것은 영화 러닝타임 내내
경찰 특공대와 지역 마피아 조직과의 전투를 그린 2011년작 <레이드: 첫번째 습격(The Raid)>가 사실상 처음이라 볼 수 있다.
이후
<레이드>의 이코 우웨이스, <존윅 3>에 출연한 아얀 루히안과 쩨쩹, 장혁 주연의 <검객>, 헐리우드 작
<모털 컴뱃 2> 등 외화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조 타슬림 등이 출연하는 액션영화들이
해외에 많이 알려졌다. 넷플릭스의 첫 인도네시아 오리지널 영화도
<밤이 온다(The Night Comes For Us)>라는 액션영화였다.
그 기조가 결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인 2022년 1월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복사기>였고 이후 앞서 언급한
프라임비디오의 <나나>, 2023년 하반기를 뜨겁게
달군 넷플릭스 5부작 미니시리즈 <시가레 걸> 등 수준 높은 드라마 장르의 영화들이 나왔지만 사실 이 전환기의 선두에는 2021년 7월 공개된 이 <알리와
퀸즈의 여왕들>이 있었다.
그만큼 작품성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영화사 측면에서도 나름 의미가 큰 영화라 하겠다.
꼭 뭔가 지적해야 한다면 인도네시아인들의 뉴욕 생활을 너무 밝고 만만하게 묘사했다는 정도? 텃세와
인종차별, 밤거리의 위험 같은 것들이 모두 생략된 <알리와
퀸스의 여왕들>은 느낌 상 확실히 따뜻한 성인용 동화에 가깝다.
퀸즈의 여왕(Ratu Ratu Queens)은 뉴욕 퀸스 아파트에 동거하는 네 명의 아줌마들을
뜻하기도 하고 그들이 함께 연 식당의 이름이기도 하다.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년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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