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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란 [영화] 익숙한 듯, 그러나 낯선 물귀신 영화 <살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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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회 작성일 2026-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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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듯, 그러나 낯선 물귀신 영화 <살목지>


배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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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월) 밤 8시30분 타임 MOI의 Flix에서 <살목지>를 관람했다. 가슴을 쫄깃하게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실감하게 하는 영화, 살목지에 들어선 사람들도, 그 영화를 보러온 사람들도 결코 용서할 마음이 없는 물귀신 영화 <살목지>.


경계를 넘어 들어간 인간을 절대로 산 채로 돌려보내지 않는 곳.

그래서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살아 있으나 이미 죽은 상태이고, 죽었더라도 결코 완전히 죽지 못하는 곳. 마치 <링>이나 <주온> 같은 인상. 그 어떤 방법으로도 풀리지 않는 저주에 휩싸인 곳.


그런데 놀랍게도 <살목지>에서 물귀신들이 판을 치며 사람을 홀리고 종국에는 물속 주민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그 어떤 악의도 느끼지 못했다. 악의는 없는데 마치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반드시 사람을 죽이는...., 그래서 더 섬뜩했다.


<살목지>에 대한 영화평론을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 난 개인적인 감상과, 이 영화가 왜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어필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글을 써보기로 한다.


결계

퇴마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호러영화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귀신영화들은 본의든 아니든 어떤 '경계'에 주목한다. 그 선을 넘지 않았다면, 어떤 특정 행위를 하거나 어떤 주문을 외지만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 그러나 이미 공간적, 물리적 선을 넘음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게 당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부조리하고 부당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을 리 없는데 그로 인한 파국을 스스로 온전히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원래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곳에 있는지도 몰랐을 지뢰를 밟으면 각오하지도 않았던 일에 황당하고 억울하기 그지 없지만 지뢰가 터지면 죽을 수밖에 없다.


살목지는 그런 공간이다. 끝없이 사람들을 끌어들이지만 일단 그곳에 들어간 인간은 결코 자의로는 나올 수 없다. 그 공간을 지배하는 존재가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에 대해, 어떤 이들은 지옥을 생각하겠지만 난 다른 걸 떠올렸다.


군대

전역하고 나서도 10년 넘게 꿈 속에서 아직도 복무하고 있던 그 곳. 나가고 싶다고 나갈 수 없는 곳은, 물론 지옥과 군대 말고도 여럿 있을 것 같다. 조직, 미로, 등등


인도네시아인들이 생각한 물귀신

공포영화의 성공 여부는 사람들이 마음 속 깊이 숨기고 있는 공포 또는 죄의식을 납득할 수 있는 형태와 방법으로 어떻게 시각화하느냐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좀 더 원초적일 수록, 생각지도 못했던 것일 수록 더욱 그 효과가 커진다.


<살목지>는 분명 무시무시한 영화지만 거기 탑재된 공포 코드는 한국인들에게는 대체로 익숙한 것이다. 수면을 누군가 큰 입으로 쪽쪽 키스하는 듯한 기괴한 소리, 물속에서 발을 잡아 끄는 물귀신의 손, 인간의 인지능력을 무력화시키는 초현실적 '홀림', 그런 홀림에 이끌려 자신의 욕망, 죄책감, 또는 복수심에 하나 둘 무너지며 미지의 존재에게 잡아 먹히는 사람들. 무섭지만 익숙하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인들에게는 어떨까?

인도네시아라고 해서 이와 비슷한 괴담과 무속이 없지 않겠지만 현지 물귀신은 주로 안뚜 반유(Antu Banyu)라 부르며 머리카락 뭉텅이, 모기장이나 카페트가 수면에 펼쳐진 형태 같은 것으로 나타나 가까이 온 사람을 휘감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존재다. 특히 머리 뭉텅이는 물 속에 꼿꼿이 선 사람 머리가 수면 가까이 올라와 머리카락이 둥둥 뜬 것 같은 모습인데 <살목지>에 그런 장면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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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물귀신 안뚜 반유


하지만 <살목지>에서 나타난 물귀신의 행태는 대체로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생소할 것 같다.


인간의 장난에 반응하는 물귀신, 공격적으로 붙잡기도 하고, 죽은 이들을 내보내 마치 산 사람처럼 행동하며 다른 이들을 물속으로 이끌고, 인식과 지각을 왜곡한다. 그게 꼭 인도네시아에는 없는 개념인 것은 아니다. 귀신이 조화를 부려 어떤 사람 눈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귀신, 괴물처럼 보여 마구 주변사람들을 해친다거나 귀신에게 홀려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는 현지에서도 다들 어디선가 보고 들은 듯한 일이다.


하지만 물귀신이 그런다는 것, 그리고 뭍에 있는 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 특히 물 밖으로 나온 이들조차 끝내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인도네시아에는 없는 개념인 것 같다.


희생자의 혼이 다른 사람을 홀려 귀신에게 끌고 가는 것은 고대 한국에서 호랑이가 몰고 다니는 창귀와 비슷한 개념이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이의 원혼이 호랑이에게서 풀려나기 위해 자신의 부모형제, 친지, 친구들을 홀려내 호랑이 밥으로 내주는 잔혹하고도 패륜적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게 창귀인데 인도네시아 무속에서 창귀와 비슷한 시구루룽을 부리는 것으로 웨웨깔롱이란 존재가 있다.


'박쥐 할멈'이란 뜻의 웨웨깔롱은 웨웨곰벨, 산데깔라 등 유사한 다른 귀신들처럼 숲과 인접한 마을에 자주 출몰하며 밤늦게 노는 아이들을 잡아가는 정글 속의 존재다. 그렇게 실종된 아이가 어느날 숲 근처에서 노는 다른 아이에게 나타나 자기 따라 좋은 곳에 놀러가자고 유혹하여 웨웨깔롱에게 데려간다. 귀신의 앞잡이가 된 그런 아이들 또는 아이들 탈을 쓴 귀신을 시구루룽이라 하는데 <살목지>에도 그런 유사한 것이 나온다. 내게 늘 선의를 보였던 이의 모습을 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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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인간군상들은 저주받은 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쓰지만 마치 이런 류의 영화 속 클리셰가 그렇듯 아무리 멀리 가도 결국 처음의 그 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그러다가 가끔은 성공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영혼과 의식만 그 곳을 탈출했을 뿐 몸은 여전히 살목지에 묶인 채..., 그러니 그 영혼과 의식도 다시 살목지에 끌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 문자 그대로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런 식의 출구 없는 막장 공포영화의 스토리 전개가 요즘 인도네시아 호러영화의 트랜드다. <죽음의 문턱에서(Di Ambang Kematian)>, <돌아가는 길(Jalan Pulang)> 등이 그런 영화들인데 각각 해당 연도의 로컬영화 흥행순위 상위에 올랐다. 온갖 방법을 다 쓰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도 올 것은 필연적으로 오고야 만다는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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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위대한 알라가 언제나 승리하고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은 일반적인 인도네시아 호러영화에 지친 현지 영화팬들이 식상하지 않은 스토리 전개와 참신한(?) 귀신들에게 열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몇년 전 <파묘>가 대성공을 거둔 것일까?


개봉 5일차인 2026년 5월 5일(화) 인도네시아 누적 로컬 관객은 43만2217명. 5월 5일 하루 관객은 약 4만 명으로 개봉일에 비해 3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재 개봉된 영화들 중 일일 흥행 순위 2위. 3주 가량 상영한다면 100만 명에 근접하며 새로운 기록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가 현지에서 100만 관객을 달성한다면(또는 그 언저리까지 간다면) 그간 김고은, 송혜교,최민식, 유해진, 공유 같은 한류스타들, 도경수 같은 케이팝 아이돌 출신들이 완전히 배제된 신인 또는 생소한 배우들의 공포영화가 그 영화의 힘만으로 현지 관객들을 대거 끌어들인 첫 번째 영화로 기록될 것이다.


2026.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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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수인 역의 김혜윤 배우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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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교식 역의 김준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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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 역 장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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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태 역 이종원 배우



*배동선 작가 

- 2018년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 저자

- 2019년 소설 '막스 하벨라르' 공동 번역

- 2022 '판데르베익호의 침몰' 번역

- 2026 '시가렛 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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