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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57. 일부다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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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환의 주간포커스
작성자 jktbizdaily1 댓글 0건 조회 5,407회 작성일 2014-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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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모에게 비밀리에 결혼한 지금의 처(妻)를 포함하여 4명의 여성에게서 출생한 자녀 7명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 언론이 뜨거워지고 있다. 장 감독의 일부다처 사실과 다(多)자녀설을 놓고 네티즌 사이에서 공분을 산다는 여론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참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서로 상충하면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에서도 요즘 드라마의 주요 주제가 재벌, 또는 상류층의 축첩문제를 근간에 놓고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소재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주제일지라도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막장 드라마’라는 비판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회교국 종교관습상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어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일부다처제 논쟁은 항상 사회문제의 쟁점이 되어 왔다. 일부다처 문제로 사회를 뒤흔들었던 전례는 일찌감치 초대 대통령인 수까르노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네시아 여명기 선각자인 쬬끄로아미노또의 수제자였던 수까르노가 쬬끄로의 딸 시띠 우따리와 정략 결혼 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파국을 맞게 된다. 동부자바 끝 수라바야가 고향인 수까르노가 반둥공과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입주한 반둥 소재 하숙집 안주인인, 12세 연상의 잉깃 가르나시와 사랑에 빠지면서 다처제의 씨앗은 잉태된다. 이로 인해 수까르노는 쬬끄로와 정치적으로도 결별하게 되며, 잉깃의 헌신적인 옥바라지를 통해 수까르노는 반식민 투쟁그룹의 선두주자가 된다. 그러나 후손이 없었던 잉깃 부인과의 결혼생활도 20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되며, 일본군이 진주한 다음해에, 수마뜨라섬 벙꿀루 유배지에서 한 가족 같이 지내던 화뜨마와띠와 20년의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세번째 결혼에 골인한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독립선언을 준비하던 전 날, 화뜨마와띠는 손수 재봉틀을 돌려 ‘메라 뿌띠’국기를 제작한다. 그리고 그 국기는 1945년 8월 17일 독립선언 당일 아침 10시, 선언이 이루어진 수까르노의 자택 앞마당에 게양 된다. 그래서 그녀는 국모(國母)로 칭송되기도 한다. 그러나 스스로 ‘여성예찬론자’라고 자칭하던 수까르노의 다처제 관성은, 이후 슬하에 다섯 명의 자식을 두고 있던 하르띠니라는 이혼녀를 만나 보고르 대통령궁을 그녀에게 할애하게 된다. 이때 일부다처제를 용인하지 않는 화뜨마와띠는 아직 어린 1남 3녀는 그대로 남겨두고, 제법 성장한 장남만 데리고 대통령 궁을 박차고 나간다. 남부 자카르타 스리위자야가에 거주하는 화뜨마와띠의 좁은 자택에 위로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리고 도심지역에선 몇몇 여성단체들의 시위가 등장한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은 한결같이, ‘회교율법’을 들먹이며 자신의 행위를 옹호하고 있었다.
 
1980년대 초 어느 날 저녁, 당시 하나밖에 없던 국영텔레비전방송(TVRI)에 수하르또 대통령과 띠엔 부인이 함께 등장하였다. 대통령이 직접 발언하는 내용인즉, “최근 항간에 떠도는 모 여배우와 자신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며, 지금 옆에 앉아 있는 띠엔 부인만이 나의 유일한 사랑이다.”라고 공개적으로 해명하며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얼마 후 “국가공무원이 일부다처를 하는 경우, 공무원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대통령의 훈령이 제정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 훈령이 이직까지 유효한지는 몰라도, 요즘도 ‘일부다처’와 관련된 구설수에 오르기만 하면, 고위관리들은 영락없이 낙마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일부다처를 포함한 사회정서에 반하는 치정 문제들은 띠엔 부인 때부터 그래 왔듯이, 주로 영부인 선에서 좌지우지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수하르또 대통령의 인척이던 W 장군이 국군사령관에 등극하지 못하고 참모총장직에서 군력의 종지부를 찍었던 사례나, 부인을 세 명이나 두고 있던 부통령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결국 임기만료 후에는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예가 그것이며,현 정권에서도 구설수에 올랐던 몇몇 장관의 낙마사유가 여성문제에 기인하며, 인사권행사에는 영부인들의 영향력이 가해졌다는 설이 간간히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도 총선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본격적인 선거철이 시작되면, 인신공격성 비방이 기승을 부리게 되며, 그 단골메뉴가 바로 일부다처, 또는 축첩문제로 귀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였다. 지난 대선에서도 모 대선후보를 향해 미혼자만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들어, 그 후보 의 여성편력 운운하며 황당한 인신공격까지 감행할 정도였다. 선거 캠페인이 시작되면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양태가 판을 치게 되는 악습은 한국이나 인도네시아나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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